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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까 Oct 12. 2024

서석대의 노을

발트해의 붉은 숲 4

 

강은 광주가 고향이다. 강의 할아버지는 한국 전쟁이 터지기 전 할머니만 남겨놓고 월북을 하셨다. 할아버지가 왜 북한에서의 삶을 선택했는지는 강은 잘 모른다. 그러나 그의 월북은 할아버지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자란 아버지의 인생에 평생토록 꼬리표처럼 달려있었다. 강의 아버지가 당신의 아버지를 모르고 살았듯, 강도 아버지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강이 어린 시절 아버지는 가끔 며칠 동안 집에 들어오시지 않는 일이 있었다. 그렇게 아무런 예고 없이 집을 비우셨다가도, 어느 날 아침 어린 강이 잠에서 깨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수척한 얼굴로 아침을 먹고 있곤 했다. 강이 다섯 살이 되던 1980년, 그의 식구는 무등산 근처에 살고 있었다. 


유독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찾아온 봄. 그 해 어린이날 강의 가족은 남해안 어딘가로 벚꽃놀이를 갔었다. 하늘에서 꽃눈처럼 내리는 벚꽃의 꽃송이들과 그 향기. 그러나 그 아름다운 사물들은 분리되지 못한 채 강의 기억 속에서 그냥 수줍은 불그스레한 빛깔로 한데 뭉뚱그려져 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지금 아버지를 떠올리면 자꾸 벚꽃 모습이 떠오른다. 


며칠 후 아버지는 다시 사라졌다. 그 후 무등산 노을 속으로 전에 없이 까마귀 떼들이 많이 날아다녔다. 무등산과 광주 시내 사이를 떼지어 날아다니던 검은 무리. 귀가 멀 것 같은 날갯짓 소리. 까마귀라면 손사래를 치며 싫어하던 동네 할머니들도 그 검은 무리들에게는 어떠한 저항도 포기하고 한숨만 폭폭 쉬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어린 강은 어머니 손에 이끌려 전장에 끌려가듯 집에 들어와 억지로 자리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텔레비전도 볼 수 없었고 그냥 망연히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창을 통해 방으로 밀려드는 해거름의 붉은 그림자가 천장을 할짝할짝 핥고 지나가는 모습이 왠지 무서워 두려움에 떨다가 끼무룩 잠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며칠 동안 창밖을 지나는, 둥근 모자를 뒤집어 쓴 사람들의 실루엣만 보고 두려움에 떨면서 며칠을 지냈다. 


엿새쯤 지나서야 강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잠시 시내에 다녀올 수 있었다. 그곳의 풍경은 항상 보던 것이었지만 공기는 이미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했다. 꾸덕꾸덕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곳에 혼자 남겨진 강은 왠지 모를 공포에 휩싸인 채 덜덜 떨며 기다리다가 비참한 표정으로 나오시는 어머니를 보았다. 


수척한 표정으로 식사를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 듯 들어 어린 강은 이유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불그스레한 기억만을 남기고 사라진 아버지, 그러나 아버지의 이야기는 아무 상관도 없는 어린 강과 어머니의 어깨 위에 눈덩이처럼 내려앉았다. 그리고 가끔 무등산의 벚꽃과 함께 강의 어깨에 눈송이처럼 살포시 주저않기도 한다.  


아버지의 실종 후 고모는, 아버지에는 다른 애인이 있었고 광주에서의 일을 빌미로 해서 새살림을 차리기 위해 집을 떠났다는 말을 지어내어 어린 강의 어머니를 괴롭혔다. 아마도 이상한 꼬리표를 남겨준 할아버지와 시대에 대한 분풀이를 공연히 어머니에게 해댔는지도 모른다. 바보 같은 어머니는 친척들에게 한마디 말도 않고 그냥 굳어버린 피딱지처럼 꾸덕꾸덕 살다가 강이 3학년에 올라가기 전 광주를 떠나 낯선 서울로 자리를 옮기는 것으로 자신에 대한 변호를 대신했다. 서석대의 웅장한 바위처럼 노을빛을 뚫고 언제라도 아버지가 다시 오실 것만 같은데...... 


무등산 자락을 떠나 서울로 옮기고 난 후, 어린 강에게 서울의 학교생활은 마치 우리 동네가 서울이라는 도시에 지배를 당하기 시작한 것처럼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강은 자루 속에 담겨진 동물처럼 그냥 그들 사이에 던져진 것 같았다.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학 온 지 몇 주 지나지 않아 반공교육이 진행되고 있던 도덕 시간. 그리고 담임선생님의 훈육.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 않지만 전쟁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요, 그러니까 우린 언제나 조심을 해야 해요. 제일 조심을 해야 할 게 뭐죠?”


또랑또랑한 아이들의 외침. 


“간첩이요!”

“그래요. 간첩도 우리 사이에 살면서 자신의 정체를 잘 드러내지 않지만, 그와 비슷한 사람이 또 있어요, 바로 빨갱이에요. 간첩도 아니면서 북한의 이야기를 듣고 따라하는 사람들이요. 은철이 아버지처럼 말이에요.”


마치 벼락을 맞은 듯, 난데없이 머리 위로 폭포수 물이 떨어진 듯한 엄청난 충격. 선생님이 말하는 빨갱이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강은 선생님이 자기 아버지에 대해서 무언가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선생님을 더욱 또랑또랑하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강의 아버지에 대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강의 가족이 광주에서 온 것을 알고 있었고, 아버지가 시민군에 들어갔던 것 역시 누군가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혼자 머릿속에 정리한 정보를 그대로 사실이라 가르치던 그 선생, 강은 평생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빨갱이가 무엇인지 하나도 모르는 핏덩이 아이들은 노처녀 선생님이 건네준 정보에 기대어 틈만 나면 어린 강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였다. 마치 수십 만 마리의 말벌들이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것처럼 괴로웠지만, 강과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어머니도 수호천사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그 말벌소리는 아직까지 강의 가슴 속에서 윙윙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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