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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이 May 12. 2024

급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여기, 또 있네.


  나는 계획을 세워서 그것을 실현하는 걸 좋아한다. 계획이 세워져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기쁨이 있다. 계획이 세워져 있으면 내가 나아갈 방향이 보여 편하다. 일주일의 계획을 세우고 내가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를 알면 안정이 된다. 


 아주 어릴 때 방학 숙제가 나오면 매일 얼마큼 해야 하는지 확인하고 그것보다 많은 양을 하면서 가능한 빨리 끝냈다. 숙제는 미루는 것이 아니라 빨리 해 버려야 할 일이었다. 과제이든 리포트이든 일이든 내게 주어진 것은 빨리 했다. 해야 할 일이 보이고 그것이 나나 우리가 해야 할 것이라면 재빨리 했다. 


 나의 이런 급한 성격으로 인해 남편이나 아이들이 가끔 화를 냈다. 어디를 가게 되면 가야 할 시간보다 일찍 서두르고 준비를 다 한 상태에서 가족들을 재촉하거나 미리 준비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마음이 급하여 나를 탓한다. 

 ”왜 이리 서두르냐고. 우리가 힘들잖아.“

 

 엄마 생신이 있었다. 엄마집에서 하기로 했는데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 일찍 왔으면 좋겠다는 전화가 왔다. 큰아들은 자고 있었다. 나는 자고 있는 아들을 깨우며 일찍 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들은 눈을 감고 알겠다고만 했다. 그렇게 시간이 가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화를 내고 말았다. 

”일어 나든 자든 니 맘대로 해.“ 

그렇게 말하고 나는 엄마집으로 갔다. 아들은 결국 오지 않았다. 엄마는 왜 안 오느냐고 물었다. 사실대로 말했다. 

 ”아들, 할머니 집에 좀 일찍 가야 하거든. 엄마가 먼저 가 있을 테니까 일어나서 씻고 와. 조금 서둘러.“ 

 이랬으면 좋지 않았을까. 


 이미 지난 일이다. 그때 이후 나는 어딘가로 가야 할 때 그렇게 닦달하거나 서두르지 않으려고 한다. 내 급함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상처받으면 안 되니까. 그렇게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음을 알기에.

      

 이번에 교육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분도 있었고, 처음으로 같이 하는 분도 있었다. 그중에서 두 분은 나 못지않게 급했다. 교육이 진행될 때는 잘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생기면 그들이 먼저 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함께 하면 되니까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교육 이틀째, 간식과 물을 차에 실어야 했다. 차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 같이 있던 한 분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한참 후 나타났다. 그는 차에 물과 간식을 운반했다고 했다. 예? 아직 차가 오지 않았는데? 차는 저 멀리 있는데? 그러자 그분은 말했다. 마음이 급해서 그냥 갖다 놨어요. 우리는 함께 웃었다. 


 나보다 급한 분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자신들의 급한 성격으로 인해 생긴 여러 가지 일을 말하며 잘 안 고쳐진다며 토로했다.

      

 급한 성격을 가진 나는 뭔가를 진득하게 기다리는 걸 가장 힘들어한다. 약속에 늦게 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도 힘들고 어떤 결과를 기다리는 것 역시 어렵다. 그러나 기다려야 한다. 달리 다른 방법은 없다. 어떤 일을 해 놓고 일정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 시간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 독서모임에서 ‘부모교육’이라는 책을 가지고 토론을 하면서 우리들 스스로를 공부한 적이 있었다. 큰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였다. 

 처음엔 배가 아프다고 하여 병원에 갔었다. 초음파를 한 결과 긴장하여 그렇다는 진단이었다. 뭔가에 예민하게 신경을 쓰고 아이가 힘들어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결석하고 하루 쉬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갈 준비를 하지 않았다. 아직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렇게 사흘을 결석했다. 

 어떤 이유로 배가 아프고 학교에 가지 싫은 지 아이는 말하지 않았다. 큰아들은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을 금방 말하지 않는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 툭 던지듯이 말한다. 그러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여러 가지 경로로 알아봐야 하고 아이가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일정한 시간을 견디는 건 쉽지 않다. 말하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나 스스로 숨쉬기를 해야 했다. 지켜보는 자세를 유지하려고 엄청 노력했다. 아이가 집에서 쉬고 있을 때 힘든 나는 목욕탕으로 향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고 있었다. 


 시간은 어찌 보면 만병통치약처럼 많은 걸 치료해 준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이 되고 아이 역시 괜찮아졌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그때 만약 조급하게 굴고,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를 닦달하고 혼내고 야단쳤다면 어떠했을까. 아마 모두 힘들었을 것이다. 잘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급한 성질을 드러내지 않고 진득하게 기다리면서 아이를 지켜본 나를 대견하게 여기며 그 과정을 잘 극복해 준 아이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잘 자라주고 있다.


 급한 성격의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아마 모든 성격이 그러할 것이다. 자신에게 적용될 때는 괜찮지만 타인과 함께 있을 때는 혹시 힘들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나이가 든다고 급한 성격이 고쳐지는 건 아니다. 자꾸 인지하고 느긋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숨쉬기를 하자. 나에게 말한다. 느긋해 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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