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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이 Oct 06. 2024

결혼기념일 여행

- 제주도 2박 3일

  

 여행을 하다 보면 계획대로 잘될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이번 여행은, 기본 계획이 어그러지면서 그때그때 생각나서 다닌 여행이 되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했지만 또 가면 되니 아쉬움은 없다. 뭔가 남겨 두고 와야 또 가게 되지 않을까. 


 이번 여행은 치밀하게 짠 여행이 아니었다. 9월 달력을 보다가 10월에 동그라미가 쳐진 날을 보게 되었고, 그럼 이번엔 뭐 하지? 하다가 가게 된 여행이었다. 두 아들이 함께 가면 좋겠지만 싫다는 바람에 둘이 가게 되었다. 


 제주도로 가는 건 비행기가 날짜를 좌우한다. 남편의 쉬는 날도 맞춰야 하니 날짜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2박 3일의 일정이지만 김해에서 저녁 7시에 가는 비행기라 하루는 저녁을 먹으며 술 한잔 하면 지나가는 날이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택시로 10분 거리였다. 호텔에 도착하니 오래된 건물에서 나는 쿰쿰한 냄새가 복도를 따라다녔다. 4성급 호텔이지만 오래되어 다른 호텔보다 저렴했다. 조식까지 포함하여 괜찮은 가격이라 예약한 것인데 쿰쿰한 냄새에 남편이 반응을 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침대는 넓었고 이불은 괜찮았다. 아침을 먹을 때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조식 뷔페로 쿰쿰함은 날아갔다. 


 다음 날 일정은 올레 6코스를 돌고, 성박물관에 가고, 마지막 아침에 비자림 숲에 가는 것으로 잡았다. 


 그러나 올레 6코스를 돌면서 우리는 헤매기 시작했다. 오렌지색 표지가 보이는 곳으로 따라가면 된다고 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지도를 켜고 겨우 겨우 가다 보니 이중섭 미술관이 있었다. 그 주변으로는 화랑과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햇살은 뜨겁고 가야 할 길은 보이지 않고……. 우리는 그냥 차를 주차한 곳으로 돌아가 올레 6코스의 한 지점인 꺽쇠다리로 가기로 했다. 가다 보니 정방폭포가 보였다. 


 “정방폭포에 갈까?” “그래, 그러자.”


 차를 주차하고 나오니 칼국수집이 보였다. 제주에 왔으니 ‘성게보말칼국수’를 시켰다. 보말을 직접 본 적이 없기에 궁금했다. 콩나물 무침, 김치, 부추무침과 함께 나왔다. 국물은 담백하고 시원했다. 노란 성게 알이 있고, 고동처럼 생긴 보말이 보였다. 딱 고동맛이었다. 배부르게 먹고 폭포로 갔다. 정방폭포는 해안으로 떨어지는 동방 유일 폭포라는 설명이 있었다. 폭포로 내려가는 계단은 가파르고 많았다. 떨어지는 폭포를 보며 멍 때리기 딱이었다. 남편은 발을 물에 담갔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건강과 성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이 박물관은 19세 미만인 미성년자는 들어갈 수 없는 유일한 박물관이다. 나는 아직 성에 대해 궁금한 것이 남아 있나. 그렇지는 않은데 박물관에서는 무엇을 보여주는지 궁금했다. 입장료가 무려 만삼천 원이었다. 1층부터 관람했다. 성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과 역사에 대해 알려 주고 있었다. 시각, 미각, 후각, 청각, 촉각 등 오감을 자극하는 것과 실제로 느낄 수 있게 전시되어 있었다. ‘첫날밤’이라는 곳에는 옛날 문지방에 구멍을 내어 신혼부부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해 놓고 야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많은 조각과 그림, 삽화, 전시제품들은 다양한 체위와 각국의 문화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자위 기구를 광고하는 영상과 기구들은 처음 보는 것이라 흥미로웠다. 젊은 연인은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보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이 더 재미있었다. 2층에도 많은 그림과 조각들이 있었지만 너무 많아서 머리가 띵했다.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니 1층에 각종 기구들과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남편은 신비의 도로인 도깨비 도로에 가 보자고 했다. 직접 갔지만 도깨비 도로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느껴보지는 못했다. 도깨비 도로에 대한 설명을 다시 읽어보고 실험을 해 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지막 날 아침엔 비자림 숲에 갔다가 공항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숙소에서 너무 멀었다. 안타깝지만 다음에 가는 걸로 하고 접었다. 아침을 먹고 가까이에 있는 용두암에 들리고, 그 옆에 있는 김만덕 기념관에 갔다. 조선시대에 여성의 몸으로 객주를 차리고 장사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자신의 재산을 가난하고 헐벗은 제주도민을 위해 기꺼이 내놓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의 업적을 보며 위대함을 느꼈다. 당시 제주도에 태어난 사람은 그곳을 벗어날 수 없었는데 그녀는 한양으로 올라왔고, 금강산을 유람했다. 김만덕 기념관 1층에 제주신화에 대한 책 전시를 하고 있었다. 제주 신화에도 할망이 땅을 만들고 건물을 빚었다고 나온다. 바다와 함께 살고 있는 곳은 여성의 노력과 희생이 따른다. 남편을 잃고 혼자 자식들을 키워내야 하니까. 김만덕이 제주의 새로운 할망처럼 보였다. 


 계획을 세웠지만 다 헝클어진 여행, 그러나 그랬기에 새로운 기념이 되었다. 바다를 실컷 봤고, 헐거워진 일정에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너무 빨리 가서 아쉬웠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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