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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이 Oct 11. 2024

산후 우울증

- 주체할 수 없는 눈물


 나는 지금 위스키를 한 잔 마셨다. 이 위스키는 제주도 면세점에서 산 것이다. 주류코너에서 제일 저렴했다. 물론 남편이 샀다. 남편과 아들은 한 잔씩 마셨지만 나는 아직 마시지 못했기에 오늘 마셨다. 


 마시면서 방구석 1열을 보게 되었다. ‘툴리’라는 영화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세 명의 아이를 돌보는 마를로. 육아에 지친 그녀에게 구세주 같은 툴리가 나타난다. 툴리에 나오는 배우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이다. 그녀의 사실감 넘치는 연기도 멋지지만 현실 육아는 예전의 나를 생각하게 했다. 


 첫째를 낳고 엄마집에서 몸조리를 하고 있었다. 엄마가 해 주는 미역국을 먹으며 편히 잘 지내고 있었다. 젖을 먹이고, 재우고, 분유를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 갈아주는 단순한 일상이었다. 나는 그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고 엄마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던 편한 사람이었다.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이 끝나가는 시점에 잠시 외출을 하여 아기를 위한 흔들침대를 보러 갔다. 흔들침대의 가격은 제법 되었다. 그러나 그곳에 아이를 누워 놓으면 저절로 잠이 든다니 얼마나 좋은가. 내가 안지 않아도 되고, 업지 않아도 되니 이 얼마나 좋은가. 


 흔들침대를 보고 왔다고 말했다. 좋아 보이더라고. 부모님은 그저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 눈물이 주르르 흐르며 나 스스로 통제가 되지 않았다. 엄마는 왜 우느냐고 물었다. 나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난다고 했다. 할머니가 물었다. 왜 그러냐고. 모르겠다고 하며 울었다. 저녁이 되어 남편이 왔지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부모님은 자신들이 뭘 잘못했는지 물었다. 없었다. 그렇게 며칠 울었다. 내 감정을 내가 어찌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다. 흔들침대 사줄게. 나는 그것 때문에 운 건 아니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나 보다. 


 그렇게 나는 흔들침대를 얻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와서는 그때처럼 우는 일은 없었다. 아이는 흔들침대에서 잘 잤다. 고마운 존재였다. 흔들침대는 둘째가 사용하고, 여동생에게 갔다가 다시 막내 동생에게 넘어갔다. 


 흔들침대를 보면 그때의 눈물이 생각난다. 그때는 몰랐는데 그게 나의 산후 우울증이었다. 나도 몰랐던 우울증. 흔들침대가 내 우울증을 구해 준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내 눈물에 가족이 걱정해 주고, 뭔가를 제공함으로써 해소해 주려고 노력해서 우울증이 가라앉은 것이었을까. 


 아이를 배에서 키우고, 낳고, 다시 키우는 과정은 아름답지만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이다. 아기를 낳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듯, 키우는 과정 역시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일은 함께 해야 수고가 덜어진다.


 왜  여성들이 임신을 두려워하겠는가. 그 지난한 과정을 알기 때문이다. 산후 우울증.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넘어가면 안 되는 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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