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들이 나에게 한 말이다.
자신을 화분처럼 대해 달라는 말은, 그냥 바라보고 지켜보기만 해 달라는 뜻이다.
이 말에 내 기분은 복잡해졌다.
내 과한 애정 표현이 이제 귀찮아졌구나.
우리 아들이 변했네. 왜 우리 아들이 변했지.
아니야, 이제 내 애정표현은 접어야 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고, 한편으로는 이해하기 싫어졌다.
내가 하는 표현이 정말 과한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끔 아들에게 안아 달라고 할 때가 있다. 나는 가끔이고 받아들이는 아들은 자주 느껴지고 귀찮은 것이다. 우리 둘의 입장차이는 분명 있다. 아들이 싫어하니 접어야 하는 건 맞다.
엄마, 나는 이제 성인이야. 저 사진에 있는 갓난쟁이가 아니라고.
누가 모르나. 나도 안다. 안다고. 그러나 귀엽고 사랑스러운걸 어쩌라고. 그냥 가끔 안아줄 때 받아들이면 안 되나.
아빠 있잖아. 아빠한테 하라고.
아마 모든 엄마들이 공감할 것이다. 남편을 안았을 때의 느낌과 아들을 안았을 때의 기분이 다른걸. 남편이 이 말을 들으면 기분은 좋지 않겠지만 사실인걸 어쩌랴.
며칠 전 유등축제를 보러 가게 되었다.
일단 가기 전에 주의사항 말할게. 손 잡지 말고 그냥 가는 거야.
왜?
그냥 걷자고.
구경하면서 손 잡는 건 괜찮지 않아?
안돼. 그냥 다니자고.
팔짱은?
안 되지.
치사해.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주차를 하고 남강변에 있는 유등을 구경했다. 해가 있는 상태의 유등과 불이 켜진 상태의 유등은 다르게 보였다. 진주의 마스코트인 ‘하모’가 커다랗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진주 사투리 중에서 다른 사람들의 말에 동의하는 뜻으로 하모를 많이 쓴다. 그래서 하모가 탄생했다. 하모가 있기 전에는 논개를 캐릭터로 만들어 사용했었다.
유등을 보면서 다양한 먹거리를 구경했다. 먹거리의 종류는 많았지만 선뜻 손이 가는 건 많지 않았다. 아들이 먹고 싶은 걸 몇 가지 먹었다. 케밥과 철판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했는데 재료가 다 되어 못 먹었다. 십 원짜리 빵, 오코노미야끼, 어묵을 먹었다. 홍게 세 마리를 포장하여 집에서 먹었지만 살이 많이 빠진 상태였다. 예전에 영덕에서 먹었던 그 홍게가 그리웠다.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들이 성장하고 있다. 벌써 스물하고 한 살이 되었다. 아이를 키울 때 어느 시점부터는 예뻐서 그만 자랐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바람은 부질없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잘 자라서 자신이 원하는 길을 향해 잘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바라보고 지켜보는 일뿐이다. 아이가 자라고 우리는 늙어가고 있다. 모든 건 시간의 섭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