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기획에 대한 아이디어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여러 의견들이 나왔지만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건물들, 특히 종교적인 건축물에 대한 의미를 담아보는 건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사찰, 성당, 교회가 담고 있는 이미지와 의미를 차례로 탐구해 보는 의도가 좋아 보였다. 부장도 나와 생각이 비슷했는지 동의를 했다.
어디부터 시작할지 고민이 되었다. 강원도에서 쭉 내려오느냐, 아니면 제주도에서 위로 올라오느냐……. 고민 끝에 경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경주를 기점으로 주변을 살펴보고,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사진 담당인 민지랑 시간을 맞추어 내려가기로 했다.
“어쩌니, 애써 잡아 놓은 일정을 이번 일로 바꾸게 되어서…….”
나는 미안한 마음으로 말했지만 민지는 덤덤했다.
“아이, 괜찮아요. 뭐 한두 번 그런 것도 아니라 남편도 그러려니 해요. … 다녀와서 다시 잡으면 돼요.”
괜찮다고 말해주니 고맙다. 내가 민지를 선택한 것은 사진을 잘 찍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달이 6월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시간은 항상 제 속도로 가고, 세월은 나 자신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가고 있지만 6월이 주는 아픔은 언제나 똑같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 사람이 죽고 없는데 가능할까?
재희 언니에게 오늘 내려간다고 말은 했지만 시간은 말해주지 않았다. 그건 우선 일부터 하고 저녁에 언니를 만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경주역에 내려서 택시를 잡으려고 서성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야, 뭘 그리 두리번거리니. 이리 와.”
“어?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안단 말이야?”
통화를 하면서 눈으로 주변을 살피니 저만치에서 언니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못 말린다. 우리는 웃으면서 언니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아니, 우리가 이 시간에 올지 어떻게 알았데?”
“너희가 아무리 그래봐야 내 손바닥 안이야.”
우리는 오랜만의 반가움에 포옹을 격하게 했다. 언니의 차에 타자 바로 출발했다.
“아니, 언니, 목적지를 말하지 않았는데 그냥 가는 거야?”
“내 차를 탔으니 나한테 맡기셔.”
“하… 누가 울 언니를 말릴 수 있으려고.”
차는 음식점 앞에 섰다. 아담하면서 정갈한 한정식집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허기가 지기도 했지만 깔끔하면서 먹음직스러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파란 오이를 얇게 깎아서 돌돌 말았는데, 그 안에 든 갖가지의 야채가 아삭하면서 시원했다. 노란색의 계란옷을 입은 명태포는 입에 들어가자 사르르 녹아버렸다. 고동을 넣은 가래장은 입안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은 맛이었다. 이 음식은 내가 좋아하지만 못하기에 더 맛있었다. 우리는 먹으면서 ‘음’하는 소리만 연발했다. 언니는 그런 우리를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배부르게 먹고 차에 타니 눈이 저절로 감겼다. 목적지에 왔다는 언니의 말에 눈을 떴다.
불국사에 도착했다. 나와 언니는 나란히 걷고 민지는 조금 떨어져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으로 가는 길에 ‘반야연지’라는 연못이 있고 반야교를 지나면 자하문이 나왔다. 자하문을 통과하면 석가탑과 다보탑이 보이고 대웅전이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관음전, 극락전, 비로전, 나한전까지 차분히 둘러보았다.
적당한 바람과 햇살이 눈과 몸을 감쌌다. 가까이에 있는 찻집으로 들어가 음료를 주문하고 지친 다리를 쉬었다. 음료로 몸을 적시자 기운이 조금 나는 듯했다. 우리는 석굴암을 향해 걸었다. 석굴암으로 가는 길은 차가 다니지 않아 주변의 나무들과 길이 잘 어울려 제법 시원했다. 오르막길이 있지만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고향으로 내려와 보석점을 하는 재희 언니는 사업 수단도 좋지만, 디자인을 잘하기에 이제는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꽤 늘었다며 자랑했다. 생기발랄한 언니의 딸을 본 지도 꽤 된 것 같다. 궁금해하니 지금 남편과 유럽 여행 중이라고 했다. 매사에 걱정이 없는 딸과 염려증이 심한 남편이 함께 하는 여행이라 어떨지 걱정되기는 하지만 이번 기회에 서로를 아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함께 갈 것을 권유했단다. 두 사람이 여행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재미있게 느껴졌다. 재희 언니는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자라 다정한 남편을 원했고, 딸에게 다정한 아버지이길 바랐다.
두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민호 오빠가 생각났다. ‘내 곁에 없는 그의 존재가 왜 이렇게 큰 것일까. 그 사람이 내 곁에 있다면……’ 부질없는 생각을 털어내려고 머리를 흔들었다.
다리가 지칠 때쯤 석굴암에 도착했다. 숨을 가다듬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멀리 보이는 경치가 아름다웠다. 계단을 조금 오르는 자리에 작은 건물이 있었다. 나와 언니가 먼저 입구로 들어갔다. 입구는 생각보다 좁았고 어두웠다.
좁은 통로와 어두움을 느낀 순간, 몸에서 땀이 나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앞서 걷던 언니의 손을 더듬어 잡았다. 내 손이 축축하니 언니가 놀라서 나를 봤다. ‘어둠에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야. 그래 괜찮아.’ 호흡이 가빠지는 나를 다독였다. 그렇게 통로를 힘겹게 가다가 드디어 불상이 보였다. 칸막이에 갇힌 불상을 보자 더는 참을 수 없는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나는 언니에게 거의 안기다시피 하여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공기와 뚫린 들판을 보니 거칠던 내 호흡이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감고 숨쉬기를 계속했다. 언니는 내 손을 잡고 등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민지가 조용히 곁에 앉을 즈음 내 상태가 진정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이만큼이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단계를 더 지나면 기절인데……, 그런 모습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물을 마시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내려올 때는 다들 말없이 조용히 내려왔다. 언니 집에 도착하여 샤워하고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다.
언니 집은 고향집을 리모델링했다. 기본은 그대로 두고 생활공간을 편하게 고쳤다. 독립된 아래채는 딸의 공간이며, 윗채에는 방 2개와 거실, 부엌, 작은 서재가 있었다. 거실에서 술을 마시며 내일은 어떻게 할지 얘기를 나누었다.
“민호에게 술 한잔 올릴 수 있는 조용한 곳이 있어. … 내가 자주 가는 곳이기도 하니, 그기 가자.”
언니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언니는 걱정되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지아야. 병원에 안 간 지 좀 되었지?”
언니의 말에 나는 최대한 밝게 대꾸했다.
“요즘은 괜찮았거든. … 원래 6월이 되면 약간 예민해지기는 하는데, 오늘처럼 이런 적은 여태 없었거든. ……있어 보고 계속 이러면 병원에 가야지.”
“민지는 어때?”
“……저는 다행히 견딜 만… 해요.”
언니는 민지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금 뜬금없는 말이기는 한데, … 지아야. … 아직도 누군가를 만나는 게 힘들어?”
언니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안다. 그가 떠난 후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있는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다.
“솔직하게 말할게. 이제는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네가 계속 혼자 있는 게 걱정이 돼. …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언니, 나도 가끔은 누군가를 만나고 싶기는 해. … 외로우니까. 그러나 그게 내 생각보다 잘 안돼. 그이의 자리를 누군가 차지하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지아야, 민호 자리는 그냥 그대로 두고, … 새로운 자리를 만들면 되잖아. 민호도 혼자인 너를 그리 바라지는 않을 것 같은데.”
“새로운 자리? ……가능할까? … 생각해 볼게.”
생각해 본다는 내 말에 언니는 눈을 동그랗게 하며 나를 봤다.
“진짜? 정말로?”
생각해 본다는 내 말이 그렇게나 놀랄 일인가. 언니는 우리 잔에 술을 부으며 축하의 건배를 하자며 야단법석이었다. 우리는 언니의 행동에 웃으며 건배를 외쳤다.
“만약에 네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좋은 관계로 발전하면, … 내가 우리 가게에서 제일 멋진 보석으로 목걸이 해 줄게. 아주 아주 비싼 걸로. …… 이제는 사람에 대한 욕심을 좀 냈으면 해”
“언니, 그런 제안은 좀 과한 거 아냐? 내가 진짜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어쩌려고 그래?”
“야. 제발 그래라. 제발. 내 소원이다.”
언니의 뜬금없는 제안에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술이 어느 정도 되면서 나는 노래를 불렀다. 예전에는 아니었는데 그가 죽고 나서 나도 모르게 나오는 술버릇이었다.
“어젯밤에, 한밤중에 깨어나~ 꿈꾸고 난 뒤 밀려오는 서글픔 때문에, 또 한 번 너의 사진 밤새껏 쳐다보았었지. 나는 지금 하늘 보고 있어. 네가 멀리 떠나버린 하늘. 라디오에선 귀 익은 음악 소리~ 네가 너무나 좋아하던 노래인데, 둘이서 같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선 소용없어. 사랑해~ 사랑해~ 아직도 너를 사랑해.”
그 사람은 노래를 잘 불렀다. 노래방에 가면 발라드를 감미롭게 불렀다. 여러 노래 들 중에서 항상 이상은의 ‘사랑해 사랑해’는 빠지지 않고 불렀다. 노래를 부르며 나를 향하던 손짓이나 동작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흥얼거리듯 부르는 노래에 두 사람도 함께 불렀다.
“이제 제법 들을 만하다. 하도 들어서 ……이제 나도 외우겠지만….”
언니의 그 말에 약간 미안하기도 하고 멋쩍어서 웃었다.
“언니가 그런 말을 하니까 그때가 생각난다. … 있잖아. 기억나? 포차에서 진탕 취했을 때 내기를 했잖아. 언니가 모르는 손님에게 가서 사귀자고 했을 때, 상대방이 ‘오케이’를 하면 사장이 한 턱 내고, 아니면 언니가 술값 계산하기로 했던 거.”
“아 맞아. 그런 적이 있었지. ……그때는 내가 지금보다 잘 나가던 때였지 아마?”
우리는 지난 일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어들었다. 가만히 술을 마시던 민지는 어찌 되었는지 재촉했다. 그러자 언니는 민지에게,
“내가 대시하는데 안 넘어올 남자가 있었겠어?”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 그때, 우리는 젊었고, 힘이 넘쳤지. 민호가 일했던 포차에서 많이 놀았지.”
민호 오빠는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을 하면서 전공을 바꾸었다. 음식을 잘 만들고 관심이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전공까지 바꿀 줄은 몰랐다. 요리에 진심이었다.
나는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다가 3학년 때 재희 언니가 살고 있는 자취방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는 우리를 위해 갖가지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따뜻한 잔치국수로 위장을 데워 주었고, 바싹바싹한 두부 탕수육은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언니를 위한 것이었고, 매콤한 마파두부는 막걸리 안주로 제격이었다. 그는 여러 종류의 술 중에서 막걸리를 유난히 좋아했다. 날이 더울 때는 덥다고 한 잔, 추울 때는 춥다며 막걸리를 사 왔다. 막걸리 안주로 어울리지 않는 게 있었던가. 김치전, 호박전, 고추 튀김, 두부 김치, 삼겹살, 순대 등으로 우리는 자주 마셨다. 술이 엉망으로 취해 있는 중에도 그이는 다음 날 아침에 먹을 수 있는 해장국을 만들어 놓고 집에 갔다. 특히 그가 만들어 주는 따뜻한 감자 수프는 별미였다. 오빠의 수고로움과 우리를 향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요리였다. 나는 아직도 그이만큼 잘 만든 감자 수프를 먹어 본 적이 없다.
우리는 이미 그의 요리를 맛보았기에 취업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다. 멋진 호텔에서 근무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는 한식과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은 양식이 더 좋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첫 직장으로 아는 형이 하는 포차를 선택했다. 의외였다.
“아니, 왜 포차야?”
나는 뜬금없는 그의 선택에 약간 불만이었다.
“길게는 아니고 잠시 일하는 거야. …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이 갑자기 그만두어서 힘든 모양이야. 그래서 잠시 봐주기로 했어.”
포차에서의 일이 경력으로 인정될지는 의문이었다. 일단 본인이 선택한 것이니 내가 어쩌라는 말을 하기는 어려웠다. 우리가 하는 일이 예상과 다르게 가고,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사람의 일이듯 잠시만 하려고 한 곳에서 그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포차의 형은 좋은 사람이었다. 그를 보기 위해 포차에 들리면 우리가 얘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애썼다. 뭐라도 하나 더 주려고 하는 마음이 보였다. 우리가 놀러 가는 걸 언제나 환영해 주었다. 물론 공짜로 먹은 건 아니지만 그런 배려가 우리를 편하게 했다. 그가 우리를 위해 만든 특별한 요리가 어느새 ‘그날의 요리’로 포차의 인기 메뉴가 되었다. 장사가 잘되고 인기가 있는 건 좋았지만 그가 그곳에 계속 있는 건 신경이 쓰였다. 그건 그이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포차에서 일한 지 2년이 되어갈 즈음, 우리가 만난 지 5년이 되었다. 우리는 기념일이 될 때마다 작은 선물을 나누어 가졌다. 작고 소소한 것이지만 우리에겐 특별한 시간이었다. 그날, 우리는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은 후 내 자취방으로 왔다. 나는 그를 위해 시계를 선물로 주었다. 그이는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보랏빛 상자를 열자, 반짝반짝 작은 실반지가 빛나고 있었다.
“이건, 비록 작지만 우리를 연결해 주는 의미로 여겼으면 해.”
그이는 반지를 주면서 오히려 미안해했다.
“아냐. 작지 않아. 아주 예뻐. 마음에 들어. … 고마워.”
반지를 나누어 끼고 나서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있잖아, 몇 군데 서류를 넣었거든. 어쩌면 백화점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갈 수도 있어.”
“어? 레스토랑? 오빠가 원했던 곳이잖아.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 아직 결정이 난 건 아니야. 백화점으로 가서 자리를 잡으면 그때, … 우리 결혼하자.”
3주 후, 그는 삼풍백화점 5층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부주방장으로 갔다. 첫 월급을 받고 재희 언니랑 함께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의 앞날엔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았다.
오빠는 백화점의 좋은 환경과 주방장의 실력에 감탄하며 칭찬을 엄청나게 했다. 새로 배울 게 많고, 일이 많아서 바빴지만 그는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자주 만나지 못하니 퇴근 후 통화를 하는 일이 많아졌다. 9시가 퇴근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에 퇴근하는 일은 없었다. 그가 집에 도착하여 전화를 하는 시간은 11시가 넘는 게 다반사였다. 일을 좋아하는 것도 좋지만 그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몸을 생각하면서 일을 하라고 하면 괜찮다는 말만 했다.
오래된 만남이 그렇듯 우리도 그런 관계로 나아가고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통화를 덜 하게 되고,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고 있었다. 내 마음에 자리 잡았던 그의 자리가 줄어들고 있었다. 허전함을 일로 메웠다. 섭섭한 마음을 갖지 않으려고 했다. 쉽지 않았다. 만나자는 약속을 해 놓고 잊어버리고, 전화한다고 하고선 하지 않았다. 일에 빠져 바쁘다는 그를 나무랄 수 없었다. 그게 더 짜증이었다. 그렇게 섭섭함이 극에 달할 즈음, 전화가 왔다. 예상치 못한 전화라 놀랐다.
6월 29일 오후 3시. 그는 점심 손님이 잠시 뜸한 틈을 이용해 사무실로 전화했다.
“어. 오빠. 어쩐 일이야. 이 시간에?”
“그게 … 지금 5층에 공사가 있어서 일부는 영업을 하고, 일부는 영업 정지 상태거든. 근데, 우리 식당도 상태가 안 좋아서 일을 마치려고. … 우리 못 본 지 한참 되었잖아. 혹시 2층으로 올래?”
“2층? … 왜?”
“지금 여성의류 세일기간이거든. 너한테 어울리는 웃 사 주려고. … 올 수 있겠어?”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원고 마감이 끝나서 조금은 한가한 상태였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5시까지는 가겠다고 했다. 오랜만의 데이트에 가슴이 설레었다. 지하철을 타고 백화점에 내렸다. 시계를 보니 5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1층에 도착하여 들어가는 문을 여는데 더운 기운이 느껴졌다. 바깥 날씨가 그리 덥지는 않지만 백화점이 더 더운 건 이상했다. 예전에 비해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고장이 나서 수리 중이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뭐야 무슨 백화점이 이래! 에어컨은 고장이고, 엘리베이터는 수리 중이라고? 이래도 되나? 삼풍백화점인데?’
백화점의 상태에 의아스러우면서 더운 열기에 짜증이 났다. 2층으로 가는 계단을 향해 가려는데 1층에 있는 매장에 전시된 물건이 내 눈에 띄었다. 화장품이었다. 그이가 옷을 사 준다고 하는데 나도 뭔가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품 매장에 들어가서 스킨과 로션을 골랐다. 향에 민감한 오빠를 위한 선물이었기에 고르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선물을 포장해서 가방에 넣었다.
그때 갑자기 매장의 불이 꺼졌다 켜졌다 하면서 깜박거렸다. 그러면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이게 뭔 소리인지 몰라 모두 어리둥절해 있었다. 나는 2층으로 올라가려고 매장을 나왔다. 다시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서 건물이 흔들렸다. 일순간 불은 꺼지고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었다. 사람들이 한쪽으로 달려가는 게 보였다. 2층에 그가 있으니 빨리 가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향해 걷는데 또 건물이 흔들렸다.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흔들거림은 괜찮아졌기에 다시 몇 발짝 움직였다.
그때 뭔가 쿵 하고 떨어졌다. 나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는 뭔가가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를 덮고 있는 건 거대한 샹들리에였다. 선명하지는 않지만 밖에 있는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두드리며 소리쳤다. “여기 사람 있어요.” 그렇게 얼마나 외쳤을까,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샹들리에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내가 나갈 수 있는 공간이 조금 확보되면서 나왔다. 샹들리에를 들어 올린 사람 중에 민지가 있었다. 물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민지는 1층에서 손님들의 물건을 맡아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밖으로 도망치려고 할 때 샹들리에가 나를 덮치는 걸 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서 나를 나오게 했다. 그렇게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내 팔과 어깨에서는 피가 나왔다. 민지도 머리와 팔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우리는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집으로 갔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민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병원에는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복잡한 시장 마냥 시끌벅적했다. 치료를 받으면서도 정신이 없었다.
집에 도착하니 그가 생각났다. 나는 뭐부터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재희 언니였다.
“얘 민호랑 통화했어?”
“언니, 어떡해.”
통화를 하면서 나는 계속 울었다. 울음 때문에 당시의 상황이 언니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언니는 내 자취방으로 왔다. 언니도 나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텔레비전을 보며 상황을 지켜보는데 건물이 폭삭 내려앉은 건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멀쩡한 백화점이 갑자기 무너졌다는 게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저곳에서 오빠가 살아 나올 수 있을까?’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마음으로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발, 제발 무사하게 해 주세요.’ 내 기도를 들을 수 있는 신이 누구이든 상관없었다. 들어만 준다면 그가 요구하는 건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출근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회사에 상황을 말하고 백화점 근처에 있는 텐트에서 오빠 부모님과 함께 기다리면서 신원을 확인했다. 건물에서 사람을 찾을 때마다 우리는 초조하게 지켜보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날 즈음 그를 찾았다. 그의 상태는 처참했지만 알아볼 수는 있었다. 시계는 깨져 있었고, 반지는 슬프게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찾았음에 감격했고, 비참한 모습에 오열했다. 장례를 치렀지만 내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그때 좀 더 일찍 도착했더라면 그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아냐. 선물을 사지 말았어야 했어. 그냥 바로 2층으로 갔더라면 괜찮지 않았을까.’
그를 만나지 못한 내 잘못이 오빠를 죽인 것만 같아 미칠 것 같았다. 밤마다 악몽이었다. 출근했지만 멍한 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역시 나를 힘들게 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러나 악몽은 계속되고 몸은 점점 여위어 갔다. 결국 휴직을 신청하고 병원에 다녔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바로 나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고, 약을 먹으면서 악몽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잠을 자게 되니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병원에 다닌 지 1년이 조금 지나 다시 출근했다.
복직을 하니 새로 온 직원이 몇 명 있었다. 인사를 나누는데 낯이 익은 사람이 있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녀도 내가 그런 모양이었다. 그렇게 기억을 더듬다가 알게 되었다. 이민지. 사고가 났을 때 나를 구해준 사람이었다. 나는 새삼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나에게 그녀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친해지지 않았다. 가까이 가기엔 뭔가 어색함이 있었다. 더 잘해줘야 하는데…….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양재에 있는 추모공원이었다. 6월 29일 오후 6시. 조금 이른 퇴근을 하고 공원에 갔다. 재희 언니는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하게 묵념하고 그를 생각했다. 공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있을 때쯤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민지였다. 쓸쓸한 뒷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재희 언니에게 민지를 소개하고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날만큼은 취하도록 마시는 날이었다. 모두 어느 정도 취했을 때 언니가 민지에게 물었다.
“민지 씨는 추모공원에 어쩐 일이에요?”
민지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한참 있다가,
“그때 저는 친구랑 함께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물품 보관소에 같이 일하다가 친구는 여성 의류매장에 자리가 생겼다는 말에 옮겼어요. 시급을 더 준다고 했거든요. ……누구보다 열심히 산 친구인데…….”
“그랬군요. ……민지 씨는 백화점에서 얼마나 일했어요?”
“음…6개월 정도 했어요. 왜요?”
“그럼 백화점이 이상하다고 느낀 건 언제쯤이었어요?”
“글쎄요. 처음엔 시급이 좋은 백화점에서 일한다는데 들떠서 잘 몰랐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이상한 점이 있기는 했어요. 지하에 심부름을 가면 이상한 냄새가 날 때가 많았어요. 뭐라고 해야 하지… 음식물 냄새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게 아무튼 묘한 냄새가 났어요. 지하에 갈 때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아 우리는 서로 미루기도 했어요. 그리고 … 5층 식당가에는 사고가 나기 한참 전부터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어요. 수도가 나가고, 전기가 나가는 게 잦았어요.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무슨 백화점이 이러냐고. 이러다 망하는 거 아니냐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그때는 그냥 웃자고 한 얘기였는데…….”
민지는 차분하게 당시 상황을 말하고 있었지만 듣는 나는 힘들었다. 5층에서 일한 그는, 그 힘든 환경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백화점에서 일하게 되었다며 좋아한 내가 미웠다.
“민지 씨는 사고 이후 괜찮았어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민지는 한참 말이 없었다. 나는 괜히 물었다는 생각에 미안해졌다.
“미안해요. 괜히 물었죠?”
“아니에요. … 처음엔 제가 아픈 줄 모르고 있었어요. 친구가 꿈에 나오고, 잠을 잘 못 자기는 했지만 제 상태가 어떤지 잘 몰랐어요. 근데 정신을 차리면 제가 이상한 장소에 가 있는 거예요. 모르는 장소인데 제가 왜 여기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그런 일이 반복되어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었어요. ……근데 쉰다고 좋아지지는 않았어요. 뭘 먹을 수가 없어서 병원에 갔다가…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어요.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사람들이 뭐라 할까 봐 말하기 겁났어요. 약을 먹으면서 조금씩 나아져서 지금은 그때만큼 힘들지는 않아요. ……가끔 그런 생각은 들어요. 열심히 사는 게 뭔 의미가 있을까. 친구가 저와 함께 1층에서 근무했다면 살았을 수도 있는데……. 저만 살아서 친구한테 … 미안해요.”
민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네요. 미안하고 미안해요. 그래도 되는지 …… 그럴 가치가 있는지 …….”
“야, 뭔 소리야. 너희 둘 다 살 가치 충분히 있어. 아니지.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살아야지. 그래야 나중에 만나면 말할 수 있잖아. ……열심히 살다가 왔다고. 안 그래?”
언니의 말에 맞장구칠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기는 한데, 속이 쓰렸다.
우리는 조용히 술잔을 들었다. 마시고 또 마셨다. 취하여 내 정신이 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셨다. 그러나 취하지 않았다. 몸은 알코올에 젖어 취하는데 정신은 또렷해지고 있었다. 그때 그 순간을 잊고 싶은 마음으로 마셨다. 잊을 수 있을까. 그를 잊을 수 있을까.
언니가 안내한 곳은 문무대왕릉 무덤이었다. 동해의 바닷가. 아직 이른 아침이라서 파도가 제법 치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암석. 우리는 작은 돗자리를 펴고 술을 바닷물에 뿌렸다.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는 바닷가는 묘한 위안을 주었다. 각자의 생각에 빠져 얼마나 있었던가. 바람이 불었다.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타고 날아가고 싶었다. 그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줄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멈추었으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