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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이 Dec 27. 2023

전역하는 작은 아들

 -'전격'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어제, 아들이 1년 6개월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포천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진주로.  오후 1시 차를 타고 내려왔다. 항상 휴가를 나오면 고속버스터미널에 마중을 갔었는데 그날은 오지 말라고 했다. 함께 입대한 친구랑 같이 나온다며 버스를 타고 오겠다고 했다. 


 전역이라. 

 사고 없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서 기쁘다. 이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정작 입대할 때에는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집으로 와서 ’전격‘ 하면서 인사를 하니 실감이 났다. 의무가 끝났구나. 탈 없이 왔구나. 


 입대할 때나 훈련병에서 수료식을 할 때 나는 울지 않았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그리 슬프지 않았고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있었다. 

 ’울면 안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밝고 기분 좋게 보내줘야지.‘ 


 나에겐 남동생이 두 명 있다. 큰 남동생은 공군으로, 막내는 육군으로 복무를 마쳤다. 

 동생들이 군대에 갈 때는 마음이 약간 먹먹한 정도였다. 

 큰 남동생이 입대하는 날, 동생이 좋아하는 노래가 라디오로 나왔다. 

 입대하기 전에 둘이서 자주 불렀던 노래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동생이 입대하고 나서 내 눈에는 군복만 보였다. 

 군복 입은 그들을 바라보는 내 눈엔 연민이 가득했다. 

 동생은 금산에서 훈련을 마치고 안양으로 배치되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한 달에 한 번씩 휴가를 나오는 동생이 처음엔 신기했고 나중엔 그러려니 했다. 

 동생은 휴가를 나와 부모님께 용돈을 받으면 쓸데가 없다며 내게 주었다. 

 받을 때는 좋았다. 

그러더니 말년이 되니 내게 준 돈을 다 가져갔다. 

이등병 때는 휴가 나와서 그냥 들어갔지만 상병이나 병장이 되었을 때는 두 손이 무겁게 해서 들어가야 했다.


 막내 동생은 두 번이나 돌아왔다. 허리가 좋지 않아서 계속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뱀술을 구해와서 동생에게 먹였다. 그렇게 입대하고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닌가 염려했는데  다행히 무사히 마쳤다.

 

 아들이 군대에 가니 기분이 그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군 복무기간은 짧아졌는데 길게만 느껴졌다. 

 긴 시간을 어찌 보낼지 걱정이 되면서 잘할 수 있을지, 불미스러운 일을 당하는 건 아닐지 온갖 걱정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입대를 하고, 중간중간 휴가를 나올 때도 나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도 모르게 혹 사고가 나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다고. 


 아들이 입대하고 나는 군대와 관련된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도 볼 수 없었다. 

 원래 전쟁영화를 좋아하지 않기도 했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누군가 다치거나 죽는 장면을 보게 되면 마음이 곱빼기로 아플 것 같았다. 


 아들이 전역을 했다고 멋지게 경례를 하니 남편은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보였다. 

 항상 통화에서 ’ 안전‘을 말했는데 건강하게 돌아와서 인사를 하니 반가웠던 것이다. 


 “이제 두 다리 편하게 뻗고 잘 수 있으려나? … 아니구나. 큰 놈이 남았네. 아이고….”


 그렇다. 나에겐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큰아들이 있다. 

 어떤 일은 자주 하면 익숙해지지만 어떤 일은 아니다. 

 군대에 아들을 보내는 일이 그러하다. 

 모든 부모가 그럴 것이다. 

 다시 큰아들을 보낼 생각을 하니 아득하다. 

 아들이 많은 집 부모는 어떨지 헤아리기 힘들다. 

 일단은 무사히 돌아온 아들만 생각하자. 

 우리는 모두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니까. 


 “밤톨, 힘든 과정을 잘 이겨내고 무사히 우리 곁에 와서 장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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