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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지기 Dec 11. 2021

좋아도 말도 못 하는데

절실했던 청약 당첨, 그 이후

 올해 여름, 내가 살고 있는 신도시에 한 유명 건설사가 대단지의 아파트를 신규 분양했다. 이번 청약은 전국에서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했고,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어 분양가가 주위 시세의 절반이라 당첨만 되면 수억을 벌 수 있는 로또 청약이라며 전국적인 관심을 받는 부동산 이슈가 되었다. 부동산 관련 유튜브 방송에서는 우리 지역의 로또 청약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청약 결과 1순위 평균 200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고,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유형은 2475대 1의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기록했다.




 우리 가족은 5년 전 수도권에서 이곳으로 전세를 얻어서 이사를 왔다. 이사 올 동네를 고를 때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했음에도 불구하고 5억에 가까운 큰돈을 써야 하는 내 생애 가장 비싼 소비이니 만큼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동네 분위기도 잘 모른다고 핑계 대며 일단 살아보다가 집을 사기로 결정했다.

 생각해보면 항상 그런 식이었다. 기회가 있어도 망설이다가 놓치고 나서야 후회했다.


 결혼 전 지방 사무실에 있을 때 같이 일하던 부장님과 동료 대리는 2000만 원을 투자해서 경쟁률이 거의 1:1이었던 아파트의 분양권을 사고는 1년 뒤 4000만 원 피를 덧붙여서 다시 팔았다. 처음에 부장님이 나에게도 투자를 권했지만 '혹시나 분양권이 안 팔리면 어쩌나' 걱정하던 난 모아둔 돈을 부모님 집을 수리하는데 써버렸다.

 결혼 후에는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면서 분당의 지하철역이 가까운 20년이 넘은 작은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갔다. 매수가와 전세가의 차이가 크지 않아서 약간의 대출을 더하면 같은 평수의 집을 살 수 있었지만 역시 남편과 나는 계속 여기서 살지 지방으로 갈지 모른다며 집을 사는 것을 미뤘다. 2년 뒤 회사를 그만두고 신도시로 이사 올 때 즈음 우리가 살까 했던 그 집의 시세는 4배 가까이 올라있었다.


 신도시로 이사 온 3년 뒤, 전세로 살고 있던 집의 주인이 시세보다 몇천만 원 싸게 우리에게 집을 팔려고 했지만 그때도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그 단지의 집값은 이사 온 뒤로 거의 오르지 않았고, 신도시 내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였기 때문에 더 이상 크게 오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번 더 전세를 하면서 그 기간 동안 나오는 청약에 계속 응모해보고 그게 실패하면 그때 사면 될 거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다시 전세를 구해서 2년을 사는 동안 집값은 수직 상승했고 이제는 이 도시에 처음 이사 올 때 시세의 3배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미 집값은 내가 살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버렸다.


 주변에는 우리처럼 주택 구매를 망설이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이사 와서 간 보다가 집값이 턱없이 올라버렸거나 아직까지 신도시 생활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매수하지 못하는 사람들. 혹은 작은 평수를 매수해서 신도시로 왔지만 가족 구성원이 늘어나거나 아이들이 커가면서 조금 더 큰 평수가 필요해서 망설이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 가격이 터무니없이 올라버린 구축 아파트를 사는 것보다 새로 짓는 아파트의 청약을 신청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 도시는 아직 개발 중이어서 새로 지어서 분양하는 아파트가 많다. 5년을 사는 동안 이 동네의 많은 사람들이 청약에 당첨되어 새로 생긴 동네로 이사를 갔고, 큰아이와 같이 입학을 했던 친구들의 절반 이상이 전학을 갔다.

 상황이 그러다 보니 은근히 '우리도 어쩌면..'이라는 핑크빛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계속 청약에 떨어지고 새로 분양될 아파트의 수가 줄어들수록 조급해지고 간절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청약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유명한 부동산 전문가에게 문의도 해보고, 유투버들의 영상강의를 보며 한참을 공부한 끝에 원하는 범위에서 가장 가능성 높아 보이는 타입을 정해 응모하였다.




 청약 당첨자 발표일. 밤 12시가 되자마자 남편과 함께 홈페이지에서 결과를 확인했다. 항상 비어있던 결과창에 이번에는 동호수가 기록되어 있었다. 믿어지지 않아서 몇 번을 다시 확인했다. 꿈이 아니었다. 새벽에 소리는 지를 수도 없고 좋아 죽겠는데 야밤에 티를 낼 수도 없으니 실제 상황임을 확인한 후에 우리가 살 집이 어디인지 배치도에서 찾아봤다. '저층이지만 뭐 어때. 택배 때문에 엘리베이터 기다릴 일도 없고 앞이 트여서 저층이라도 볕 잘 들고 좋네.'  잠 못 드는 우리는 밤새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제 터만 닦은 아파트를 순식간에 다 짓고는 벌써 각 방의 역할과 인테리어를 끝내고 있었다.


 당첨자 발표가 나자마자 빠르게 대형 포털에 온라인 입주예정자 카페가 만들어지고, 오픈 채팅방이 열렸다. 첫 집이다 보니 기대에 들뜨기도 했고 남들도 다 하는 것 같아서 적극적으로 카페며 오픈 채팅방에 가입했다. 전국구 청약이었던 만큼 채팅방에 모인 사람들의 거주지는 전국 각지에 퍼져있었다. 초반이라 당첨 소감만 나누어도 수십, 수백 개의 메시지가 들어왔다. 다른 일을 하다가 문득 메시지함을 보면 순식간에 안 읽은 메시지의 개수가 수백 개라는 것을 알려주는 배지가 떠 있었다. 너무 정신없어서 채팅방을 나갈까도 생각해봤지만 계약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와 경험들이 공유되고 있어서 나갈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 며칠이 지나는 사이에 단톡방에도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모델하우스에 있는 욕실 수납장이 맘에 안 든다, 바닥재가 구리다, 아파트의 문주가 왜 없냐 이런 소소한 불만들이었다. 그러다 이런저런 나누는 얘기들이 많아지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강남에서 유명한 고깃집을 운영하고 이사 오면 세종에 가게를 내겠다는 사람, 홍성에 살면서 세종에 미리 이사오려고 한다는 사람, 청주나 인근 대전에 살면서 당첨되면 이사 오겠다는 사람들. 그런데 듣다 보니 정말 타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타 지역 거주자들 중에는 이사 올 계획을 하고 있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 청약을 넣긴 했는데 가서 살 형편은 안돼요. 운 좋게 예비자가 돼서 당첨되었어요."

"예비자는 타 지역이 훨씬 유리하죠. 가점이 높아서"

"전 거기서는 못 살 것 같아요. 그냥 전세 주고 서울에서 계속 살다가 1년 있다가 팔려고요."

"저두 그런데요. 전 부산인데 잠깐 가봤는데 어차피 대출 없이 자비로 다 낼 거라서 실거주 의무도 없고 1년 있다가 바로 팔 거예요."


'어라!'


뒤늦게 그런 이야기들을 본 나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자유경제주의 사회에서 내가 산 집을 내가 판다는데 무슨 죄가 있으련만 간절함이 있었던 난, 나처럼 간절함이 있었던 다른 이들의 마음이 가진 자들의 투기 앞에서 무시되는 것 같아서 상당히 불쾌했다.


 청약 결과가 발표되면서 언론에서는 이 도시의 청약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을 때였다. 실제로 약 1300세대 중에서 타 지역 거주자가 당첨될 수 있는 물량은 절반인 650세대였지만 예비당첨자는 지원자들을 모두 합쳐서 지역 상관없이 가점 순으로 줄을 세워서 번호를 줬다. 추첨 과정이 복잡해서 해당 지역의 1년 이상 거주한 무주택자는 가점을 시작으로 여러 번의 추첨 기회가 주어지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타 지역 거주자의 가점이 월등하게 높았다. 그래서 전체 물량의 20%였던 예비 당첨자는 타 지역 거주자가 대부분이었다.


 주위에는 이번 청약에 신청했다가 떨어진 사람이 많았다. 청약 통장을 가진 이들은 대부분 도전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니 처음부터 같이 청약을 공부했던 몇몇을 제외하고는 너무 좋다고 자랑을 하고 싶어도 선뜻 그럴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서 축하를 전하긴 해도 받는 입장에서는 괜히 미안한 감정이 드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채팅방에서는 단순히 투기를 목적으로 집을 산 사람들이 투기의 성공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집은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괜히 그런 사람들 때문에 정말 '사는 곳'이 필요했던 이들은 좌절을 겪어야 했다. 너무 불공정했다.

 


이번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는 집은 '사는 곳'이어야 하므로 한 채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에는 동의했지만 실제로 펼친 정책의 면면을 보면 여러 가지 예외를 위해 구멍을 만들고 다시 메꾸기 위해 임시로 반창고를 붙이는 식의 정책들 뿐이었다. 국민들은 혼란해지고 부동산 세력들은 더욱 투기에 열을 올려서 정부의 예측을 비껴가게 만들었다.


 내가 사는 동네만 해도 그렇다. 10년 전, 공무원들과 이전 기관 종사자들의 이주를 위해 특별공급 청약 자격을 주었지만 실제로 이주한 세대는 얼마 되지 않고 많은 세대가 혜택을 받아서 싸게 구입한 집을 비싸게 팔아 버렸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실거주 의무를 확대하고 전국구 분양을 폐지하자는 주장이 커지고 있었다. 그렇게 빈틈 많은 정책을 만들어놓은 정부는 모든 책임을 이전기관 종사자들의 도덕성에 씌우면서 공무원과 이전기관 종사자의 특별공급 자격을 폐지했다. 그랬더니 이미 이곳으로 이주해서 특공 당첨을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피해를 보게 되었다.


 이 불공정을 완벽하게 해소할 수도 없고 타 지역에서 인구를 계속 유입시켜야 한다면 타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이 당첨만 되면 팔고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구조로 만들게 아니라 실거주 의무 기간을 길게 두어서 당첨되면 자리 잡고 살게 만들어야 했다. 그나마 타 지역 당첨자의 비율을 줄이고, 실거주 의무 기간과 전매제한 기간을 늘리는 것이 논의되어서 내년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다. 여기에 하나만 더 있으면 좋겠다. 최소한 예비당첨은 지금 살고 있는 이 지역 무주택자들에게 우선으로 주면 어떨까?


 여전히 단톡방에는 여러 가지 작은 불만이 흘러 다니고 있었다. 놓치지 말아야 할 계약 정보들도 훅 지나갔다. 옵션 선택하면서 내 취향이 옳고 다른 것들은 구리다는 식의 의견들도 종종 올라왔다. 중도금을 내기 시작하면 그때 다른 집을 사도 되냐는 질문도 있었다. 어떤 이는 다른 지역 아파트와 오피스텔의 분양 정보와 청약 일정을 채팅창에 전달하면서 이것도 구매할 거라고 자랑하며 노골적으로 또 다른 투기 할 거리를 공유하는 이도 있었다. 누군가가 청약 당첨이 몇 년간 제한되었다 했더니 오피스텔은 상관없다고 괜찮다며 부추긴다. 불법과 편법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떳떳한, 참 이상한 곳이다. 젠장. 배알이 꼴리니 입 다물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그럴 용기도 없다. 그냥 불편하면 내가 채팅방에서 나가야지. 아직은 필요한 정보들이 올라올 때가 있어서 버틴다. 그나마 저런 무례한 투기꾼들이 이사오지는 않겠다니 채팅방 이웃으로 끝나서 얼마나 다행이냐 위로 삼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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