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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Nov 19. 2021

아직 쓸 수 있어요

"5년 넘은 컴퓨터를 누가 고쳐 써요! 중고로 팔아도 못써요. "


AS센터의 수리기사는 아직 쓸만하다는 나의 말은 한쪽 귀로 흘리며 무시해버리고 자신의 이야기만 하고 있다. 20년 가까이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살아온 내가 보기에 액정만 교체하거나 접지 부분만 수리한다면 글쓰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을 텐데, 수리기사의 눈에는 내가 지질하게 억지 부리는 진상 아줌마로 보이고 있었나 보다.



 

  첫째와 둘째를 차례로 거치고 5년 만에 내게 다시 돌아온 노트북은 요즘 광고하는, 전자펜이 적용된 초기 모델이었다. 동일한 모델번호가 지금도 팔리는 걸 보면 아직 부품도 출시되고 있고, 성능도 전혀 딸리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전원을 켜면 하얀 줄이 듬성듬성 있는 까만 화면만 나오곤 했다. 그런 화면을 보면서 몇 번을 끄고 켜기를 반복하면 다시 정상 동작했었는데, 이번에는 반나절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글도 써야 하고, 숙제처럼 하고 있는 그림책 필사 글도 올려야 하는데 화면이 먹통이 되어 버렸다.


 물론 휴대전화가 있으니 브런치 앱이나 블로그 앱에서 직접 글을 쓰면 되지만 작년부터 오른 손가락에서 엘보에 이르는 팔이 전체적으로 엉망이 되어 휴대전화의 작은 자판에서 긴 시간 작업하는 게 힘들어졌다.

 십수 년 동안 컴퓨터를 밥벌이 도구로 쓰면서 오른팔은 계속 문제였다. 직업병이었다. 주위에는 터널 증후군으로 수술을 받는 사람도 있었다. 그나마 왼손으로 마우스를 사용하고 물리치료를 적절히 받으면서 그럭저럭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코로나 시대에 운동은 안 하고, 삼시세끼 집밥 먹는 아이들과 칼퇴근해서 밥 달라는 남편을 먹이기 위해서 요리한다고 손목을 쉼 없이 썼더니 점점 무리가 갔다. 결국은 젓가락질 조차도 힘들어졌다. 다시 물리치료와 침 치료를 병행하면서 보호대를 장착하고 키보드를 사용하는 작업은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부분적으로 손가락을 오랫동안 움직이고 나면 여전히 손가락 사이 근육부터 팔꿈치까지 저려와서 휴대전화로 긴 글 쓰기는 꺼려지는 일이었다.

 어쨌든 컴퓨터가 그렇게 되었으니 잠깐잠깐 보는 SNS의 짧은 글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글쓰기가 올 스톱되었다. 당장 당일 마감이었던 그림책 서평만 겨우 휴대전화로 한참을 입력해서 등록했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 팔에 저주파 마사기를 붙이고는 쉬어야 했다.




"화면에 줄이 생겨요. 예전부터 가끔 그러긴 했었는데 어제부터는 계속 그러네요."

서비스센터에 가서 나는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액정이 나갔잖아요. 모니터랑 보드의 접촉하는 부분이 불량이라 차가울 때 잘 안되다가 열 받으면 전기가 흘러서 작동했을 거예요. 부품의 온도가 올라가면 작동하는 거예요.


 수리 기사는 액정 나간 걸 보면 모르냐는 듯이 훈계조로 말을 이어나가다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거 5년이나 되었네요? 이런 걸 누가 고쳐 써요? 부품값만 30만 원이 넘어요."


 계속 무시하는 듯한 수리기사의 말투에 불편해하고 있던 나는 마지막 그 말에 완전히 기분이 상했다.


"지금 똑같은 모델이 아직도 팔리고 있고, 120만 원이 넘던데요. 아직 괜찮아요. 중고로 팔아도 부품값은 나오지 않을까요?"

"그거야 그거고, 5년 넘은 컴퓨터는 아무도 안 써요. 이거 중고로 팔아도 못써요."

 

 생각해보면 나도 컴퓨터 칩이 들어 있는 장비(휴대전화, 노트북, 태블릿)는 모두 2년 이내 제품만 쓰고 있었다. 20년 넘게 유지해온 나의 작업 환경은 두 개의 모니터와 최고 사양의 컴퓨터였다. 컴퓨터에서 동시에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띄워놓고 일을 하다 보니 프로그램이 느리게 동작하거나 화면이 멈추면 그 순간을 못 견뎌했다. 그런데 이젠 그런 작업들을 하지 않으니 퇴사한 이후로는 가성비에 맞지 않는 환경에서 겉멋만 부린 셈이었다.

 



"5년 넘은 컴퓨터는 아무도 안 써요."


수리기사의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맴돌았다. 물건을 더 써도 되는데 무조건 바꾸라는 뉘앙스도, 아직 멀쩡하고 부품도 있는 컴퓨터를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도 듣기 싫었다. 그리고 주 사용자인 나의 판단은 모두 한쪽 귀로 흘려버리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수리기사의 '어유 아줌마! 뭘 안다고...... 쪼잔하게 굴지 말고 그냥 새로 사요'라는 속마음이 들리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 내가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낡아서 아무도 안 쓴다는 그 말이 나이 많고 오른팔도 불편해진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이 노트북처럼 너도 이제 쓸모없는 거야. 다시 일하기는 글렀어.'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었을 때 어떤 심적 변화도 없었다. 서른을 넘기는 시기에는 일하기에 바빴고, 마흔을 넘기던 시기에는 전업주부라는 전혀 새로운 직업에 적응하기 바빴다. 그래서 ‘쉰이 되어도 별일 없이 흘려보내겠지’라고 기대했었지만 그 시기가 가까워질수록 종종 별것 아닌 말과 상황에 나를 대입하는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어쩌면 나는 조직에 속해서 부품처럼 일 할 때가 편하고 좋아서 지금이라도 다시 취직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 나이에 IT계열 회사에 재입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나도 덮어두었던 생각이 수리기사의 ‘쓸모없다’는 말에 들켜버려서 더 화가 났을지도.


 나는 얼굴에 드러나는 언짢음을 숨기고는 수리기사에서 마이크도 제대로 동작을 안 하니 메인보드까지 확인한 다음에 수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수리기사의 확인 후 연락하겠다는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오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액정은 나갔고, 보드도 확인해 달라고 했어."

"어떻게 하려고? 그냥 새로 사."

"고쳐 쓸 거야. 아직 잘 쓸 수 있는데 왜 새 걸로 사. 아직 10년은 더 쓸 수 있어."

통화를 하고 있는데 수리기사가 옆으로 지나간다. 난 살짝 째려보면서 속으로 소심하게 외쳐본다.


‘나도 아직 쓸 수 있다고. 오히려 쓸 만하다고!
100세 인생 절반도 못살았는데 왜 버리냐고!  
두고 봐, 고쳐서 딱 어울리는 곳에 제대로 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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