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일을 시작하고부터 늘 프리랜서는 무얼까 생각했다. 요새는 이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주부인가 아니면 강사인가?'라는 질문에 도달하였고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누가 프리랜서를 '일정한 소속이 없이 자유 계약으로 일하는 사람'이라는 정의 대신 365일 중 며칠 이상을 일해야 하고 얼마 이상을 벌어야 한다고 기준을 만들어 놨으면 머릿속을 휘젓는 질문에 답하기 쉬웠을 것 같다. 타인에겐 관대하고 나 자신에겐 엄격한 나는 요즘 들어 나를 강사라고 소개해도 될지 답하기 어려워 난감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모 도서관에서 수업을 하고 있으면 자연스레 다음번 수업 제안 문의가 왔다. 여러 건의 수업 제의가 한꺼번 오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수업 문의가 눈에 띄게 준 것이다. 새 메일이 없는 메일함을 보며 자책했다. '내 강의가 별로였나?'
곤두박질하는 자존감을 추켜 세울 갖가지 이유를 생각해 봤다. 먼저 수업 말미에 학생들에게 받은 강의만족도 지를 떠올렸다. (나는 매 수업 마지막 시간에 익명으로 만족도 조사를 한다. 부족한 것은 개선하고 잘한 것은 발전시켜 나가기 위함이다.) 대부분 평균 이상이었다. 수업 문의가 없는 것이 도서관 사정 때문인지 나의 강의 스킬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일의 속성은 불확실하고 불연속적이라는 것은 명백했다. 정체성을 고민하는 시기에 지인은 진로를 변경했다. 공공기관에서 수업 제안을 받아 요리 수업을 진행하던 그녀는 초등학교로 자리를 옮겨 방과 후 강사가 되었다. 계약은 1년이었다.
일을 안 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딸은 "엄마는 요즘 왜 수업 안 해?"라고 물었다. 수업 문의가 줄자 자연스레 기대 급여도 줄었다. 작년 같으면 거절했을 텐데 상황이 달라져 원래 받던 강의료에 반도 못 미치는 돈을 수락하고 있다. 격주에 한 번이라는 강의 제안도 받는다.
프리랜서란 원래 이런 것인가 생각하던 찰나 <필경사 바틀비>를 읽었다. 월가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 필경사로 고용된 바틀비는 단정하고 침착한 용모를 했으며 밤낮으로 엄청난 양의 필사를 소화한다. 어느 날 변호사로부터 동료들과 필사본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는데 바틀비는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고 답변한다. 그 이후로 그는 그 말을 수십 번은 더 하는데 그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속이 후련해졌다. 그의 저항은 여리고 소극적이지만, 그 마저도 못하는 나를 보니 그가 부러운 느낌이 들었다.
이 쪽에 몸 담은 지 20년쯤 된 선배 강사분은 고무줄 같이 늘어났다 줄었다 하는 강의료와 몇몇 담당자의 무례함을 비난하며 나에게 생존 기술을 귀띔해 줬다. 바로 주식이었다. 남편의 끈질긴 요청에서 주식을 시작하지 않았던 나는 그녀의 조언에 당장 주식을 시작했다. '본업은 주식, 부업은 강의'라는 말을 곱씹으면서.
바틀비는 우직하게 저항하다 유치장에서 아사(餓死)한다. 나의 주식 계좌는 온통 파란불이다. 나는 먹고살아야 하므로 바틀비의 끈질긴 저항을 부러워만 하겠지만 나도 언젠간 대차게 말해보고야 말 테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