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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별 Jan 11. 2022

당일치기 여행과 강박

학창 시절 선생님께 받은 생활 통지표에 단골처럼 등장하던 단어는 '성실'과 '근면'이었다. 삼 남매 중 맏딸로 태어나서였을까 나는 맡은 바 일은 성실히 수행했다. 무슨 일이든 계획하기 좋아했으며, 마음먹은 일을 이루기 위해 부지런히 힘썼다. 그런데 마흔이 다 되어서야 깨달았다. 무의식 중 버릇처럼 하던 '계획'이 나의 발목을 잡고 있었음을 말이다. 나는 고백컨데 계획하지 않은 일은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친구들과의 약속은 한 두 달의 여유를 두고 날을 정한다. 주말에 가족들과 보낼 시간도 평일에 미리 계획을 짠다. 나는 그날그날 해야 할 일을 미리 정하고, 미션을 수행하듯이 목록을 하나씩 지워 나가며 희열을 느낀다. 그것이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일지라도 상관없다. 나는 세상 모든 사람이 나 같은 줄 알았다. 내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는 밖에서 에너지를 얻는 외향형으로 친구와의 약속은 외출 몇 시간 전에 잡는, 그야말로 무계획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신혼 초에는 나와 다른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아 자주 다퉜다. 그는 그럴 때마다 "남자들은 원래 이래."라고 항변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각자의 생활에 바빠지자 그는 친구 모임에 나가는 일이 뜸해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무계획으로 나와 부딪쳤다. 바로 '여행'이다.


나는 계획하지 않은 일은 즐길 수 있는 융통성이 없다. 빼곡하고 들어찬 스케줄을 다 뒤엎고 아무 생각 없이 홀연히 어디론 가 떠날 배짱도 없다. 언젠가 이것이 내게 꽤 슬픈 일이라는 걸 깨달은 적이 있다. 아무 계획 없이, 어쩌다 발걸음이 다다른 곳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과 남편을 무표정하게 쳐다보는 나를 알아차리고 나서다. 남편은 나와 성격이 완전히 반대다. 며칠 전 그는 그간 고요하게 유지되던 나의 계획성을 뒤흔들었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내일 우리 반차 쓰고 바다 보러 갈까?"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이 시국에? 바다? 이 추운 날씨에?' 라며 미간을 찌푸리다 아이들과 눈이 마주쳤다. 맛조개를 캐겠다며 들뜬 첫째와 이유 없이 신난 둘째를 바라보며 지금 이 순간이 마음에 안 드는 건 나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계획에도 없던 여행을 다음날 오후에 가게 되었다. 바다로. 이건 목요일 밤에 정해졌다. 도무지 믿을 수 없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바다로 떠나기로 한 그날은 알고 보니 둘째의 안과 검진, 그리고 첫째의 방과 후 수업이 잡혀 있는 날이었다.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세차게 불어오는 바다 바람을 맞으며 얼어붙은 모래 위를 걸어가야 할 이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바다야 주말에도 갈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번만큼은 남편에게 '이 추운 겨울에 바다는 무슨 바다야?'라고 쏘아붙이지 않고 묵묵히 초록창에 '당일 여행 바다'를 검색했다. 남편이 무심결에 던진 한마디 "나 너무 답답해. 바다 보러 가고 싶어."라는 말 때문이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살면서 한 번쯤은 내가 규정한 틀을 깨 보도 싶었다. 정여울 작가는 <상처조차 아름다운 당신에게>에서 알을 깨고 나온다는 것은 '에고'의 단단한 껍데기를 깨뜨리고 나와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에고를 깨뜨려야만 우리가 진정한 셀프로 갈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에고는 내가 나라고 믿는 이미지를 말하는데 나에게 에고는 '성실 근면하며 계획적인 나'였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커튼을 열어젖히니 날이 잔뜩 흐렸다. 하나 둘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니 다시 마음이 흔들렸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라고, 이 날씨에 왜 사서 고생을 해야 하지나 싶었다. 영종도의 날씨를 검색해봤다. 강수확률 70%. 나는 남편을 꾀어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할 작정으로 카톡에 일기예보 캡처 사진을 보냈다. 그는 내 예상과는 달리 비가 와도 괜찮다면서 바람 쐴 생각으로 다녀오자고 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안 넘어왔다. 그날 오후 우리는 정말로 영종도의 왕산 해수욕장으로 떠났다.


평일 오후의 서해 바다는 한산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웠다. 너른 바다에 관광객 대 다섯 명과 굴을 캐는 아주머니 서너 분이 다였다. 그러나 이제 막 굽이쳐 들어오기 시작한 물은 반짝였고, 저 멀리 펼쳐진 수평선은 가슴이 뻥 뚫리게 했다. 나와 둘째는 고둥 껍데기를 모았다. 커다란 뿔이 멋진 하얀색의 고둥이었다. 첫째와 남편은 큰 통에 소라게, 새우, 조개 등을 집어 모았다. 자연에서 생명체를 수집하고 관찰하는 것은 나에게나 아이에게나 소중한 경험이었다. 서해 바다에서의 경험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꽤 괜찮았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 그날의 기억은 강제 재생되고 있다. 고둥 껍데기 속에 우연히 딸려 온 소라게 3마리와 게 두 마리를 키우게 되면서부터다. 어항 속 소라게와 게를 보면서 그날의 바다, 그날의 경험을 머릿속에 떠올려 본다. 소라껍데기를 이고 다니는 게를 보면서 틀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를 마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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