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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Way Nov 13. 2024

첫 문화센터 입성기

생후 26, 27개월 육아 & 놀이(교육)

이 시기, 12월생인 울 아들은 겨우 두 돌이 지났지만, 우리나라 나이로 계산하면 4살이 되어버려 슬슬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직 어리긴 하지만, 언제까지나 집에서 이렇게 어른들 틈에서만 시간을 보낼 순 없었다. 

하지만, 당시 아는 게 별로 없던 엄마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 고민이 많았었던 시기였다. 더군다나 본격적으로 박사학위 논문심사 일정이 결정되면서 정보를 모을 시간이 없다 보니 괜히 마음만 더 바쁜 나날이었다. 


그래도 이 문제는 마냥 시간을 흘러 보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울 신랑과 의논 끝에 영유아문화센터부터 슬슬 적응시켜 보기로 결정했다. 울아들의 경우, 4살이긴 하지만 개월수로 따지면 두 돌 겨우 지난 경우라, 어린이집에 바로 보내기엔 너무 어린것 같아 조금씩 사회생활을 늘려가는 의미로 문화센터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나는 3월부터 빡빡한 일정이 예정되어 있어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낮동안 아이를 케어해 주시는 친정엄마께 문화센터 수강을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집에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1주일에 한 번이라도 정기적으로 밖에 데리고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시간도 잘 가고 좋을 것 같다고 해주셨다. 


그래서 생후 27개월부터 문화센터를 다니기 시작했다. 

문화센터는 경산시에서 운영하는 것이었고, 한 과목당 3개월 정도 기간이 소요되었다. 일단, 아이 생애 첫 문화센터니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할 듯하여, 1과목, 체육활동을 주로 하는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친정엄마의 말씀에 따르면, 첫날 문화센터는 70%의 성공이었다고 하셨다. 

문화센터까지는 잘 갔는데, 가서는 적응하느라 그랬는지 40분짜리 수업 중 20분은 관망, 20분은 대충 따라 하면서 시간을 때우고 왔다고 하셨다. 

처음엔 영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해서 좀 걱정이 되었는데, 선생님께서 "이름표 받으러 오세요." 하니까 슬금슬금 나갔다 왔단다. 그리고는 또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구경만 하더니, "모두, 참 잘했어요." 하면서 도장을 찍어주시니까 또 손을 쑥 내밀었단다. 

외할머니와 문화센터를 다녀온 저녁에, "OO이는 문화센터 어땠어?" 하고 물었더니, "문화센터 좋아."라고 대답했다.

첫날 문화센터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제대로 된 수업을 받진 못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반응은 괜찮은 걸로 보아 일단은 성공한 것 같았다. 

이후 1주일에 한번 외할머니와 함께 문화센터를 별 탈 없이 잘 다녔다. 


말이 급격하게 늘면서, 발음도 좋아졌고 언어구사능력도 뛰어났다. 긴 문장도 잘 만들었고, 상황설명도 잘했다. 전화로도 의사소통이 거의 다 가능했고, "미안해요.", "고맙습니다." 같은 인사도 제법 잘했다. 

노래는 리듬과 음은 살아있는, 그러나 가사는 못 붙이는 흥얼거림 정도에서 발전해 도레미파솔라시도 계이름을 말하기 시작하면서 노래다운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당시 내 기록에 따르면, "현재로서는 음치 같다."란다.


그렇게나 잘하던 (고양이) 세수를 이젠 너무 하기 싫어했고, 낮동안 활동이 좀 저조한 날엔 이유는 모르겠지만, 외할머니집 계단 오르내리기라도 해서 체력을 소모한 후, 밤잠을 쿨쿨 잤다. 


제법 도움이 될 만큼 청소하는 걸, 청소기 사용하는 걸 좋아했고, 마트에 가면 반드시 자동차 카트를 타야 하는 루틴이 생겼다. 자동차 카트는 수량이 적어 매번 누구 한 사람은 자동차 카트를 찜하러 뛰어다녀야 했고, 자동차 카트를 타더라도 원하는 시간만큼 타야 스스로 카트를 반납했다.


자기주장은 여전히 강해, "좋다, 싫다."를 명확하게 표현했고, 패션에 관한 한, 타협은 없었다. 


여전히 쓸데없는, 말도 안 되는 생떼도 가끔 썼지만, 의사소통이 되니 점점 줄어들고 있긴 했다. 

하지만, 아이가 생떼를 쓸 때마다 감정을 절제하고 일관성 있게 아이를 대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특히, 이 시기엔 학위 논문 심사 일정이 정해져서 그런지 마음이 여유롭지 못해 감정 절제가 더 안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별일도 아닌 일에 아이에게 화를 버럭내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다짐하고, 또 화를 내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즈음, 아이의 성향이 "강함"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아이가 화를 내거나 떼를 쓸 경우, 꼭 안아서 아이를 진정시킨 후, 차근차근 이야길 하면 금방 평온해지는데, 같이 화를 내고 크게 야단을 치면 악을 쓰고 대드는 경향을 보였다. 


'울 아들은 생각보다 고집이 세고, 자존심도 센 편이라 "강"으로 대응하면 안 되겠구나.'

이렇게 아이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일상이 버거운 날들이 늘어나자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릴 지르곤 해, 평온했던 육아현장이 간혹 전쟁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날에는 정말 궁금해졌다. 

'이런 날은 정말 일부고, 나머진 정말 나름 최선을 다해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고 있는데, 이 사랑이 아이에게 잘 전달되고 있긴 한 걸까?' 하고 말이다.

이 시기 아이에게 오롯이 집중을 하진 못했지만,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해, 가끔 아이가 삐딱하게 반응하면 '혹시 나의 육아가 일관성을 잃은 건 아닐까?', '엄마의 화가 아이의 마음에 상처로 남은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곤 했었다. 

실제로 강성이었던 아이에 비해, 그 당시 난 강한척하는 소심한 엄마였던 것 같다. 


한 두어 달 열심히 낱말카드놀이를 하더니, 낱말카드 속 단어를 다 알아 그런지 이젠  그것도 시들해졌다. 새로운 자극이 무언가 더 필요한 것 같긴 한데, 너무 바빠 약간 방치(?)를 했던 시기였다. 


내가 아이와의 놀이(교육) 활동에 약간 텀을 두는 동안, 아이는 또 다른 놀이들을 찾아나갔다. 두 돌 생일 선물로 받은 전자 키보드를 앞세워 아빠와 작은 밴드(?)를 결성해 일요일마다 공연을 했고(음치...인 것 같은데...), 요리하는 큰 이모 옆에서 실제 채소를 다듬으며 소꿉놀이를 했다. 

인형들과 함께하는 병원놀이, 소꿉놀이는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처럼 재미가 쏠쏠했다. 혼자 어찌나 잘 노는지 다양한 얼굴 표정으로 인형 친구들과 대화를 하며 상상놀이를 즐겼다.


이 시기 미술놀이도 업그레이드되었다. 

문화센터 갈 때 사용하라고 색연필과 사인펜을 사줬는데, 다양한 색상이 마음에 드는지, 자주 가지고 놀았다. 단, 색연필을 쓸 때 하나하나 순서대로 꺼내서 처음부터 끝까지 꼭 한 번씩 색칠을 해야 한 작품이 완성되는 것 같았다. 

'혹시, 강박인가?' 싶으면서도, '하는 짓이 나랑 같군.' 싶었다.


나도 어릴 때 부모님이 사주신 전집을 1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적이 있었다. 중간쯤에 있는 책이 제일 읽고 싶어도 처음부터 읽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울 아들을 키우면서 그런 환경 자체를 되도록이면 만들어주고 싶지 않아 책을 전집으로 사 준 적이 없다. 

그리고 강박 증세를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만류하지 않고 지켜만 봤다. 내 경험상, 자신만의 룰에 따르는 행동은 너무 과하지만 않으면 스스로 답을 찾아갈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나친 간섭으로 자신도 모르게 한 행동을 자신의 습관인양 인지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아이는 그냥 재미로 그랬을 수도 있는데, "넌 순서대로 색을 쓰는 거야?"라든가, 아이만의 놀이에 끼어들어 "이젠 색깔을 써보자."라든가 하는 행동은 지양했다.


다행히, 색연필과 사인펜에 익숙해지고 난 후, 색을 순서대로 써야 하는 "강박"은 사라졌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아이의 행동은 어쩌면 "강박"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저 어른들 눈에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니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잘 관찰하되, 어른들 판단에 좀 이상하게 보이더라도 너무 의미 부여하지 말고, 너무 간섭하지 말고, 일단은 지켜볼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색연필과 사인펜 놀이 외, 물감놀이도 즐겨했다. 물감놀이는 하기 전에 방수포 깔기, 물감놀이 가운 입기, 물감 준비하기, 물 준비하기 등 준비과정이 번거로웠지만, 한번 시작하면 꽤 오랜 시간 밑그림 그려 놓은 곳에 다양한 색을 칠하면서 재미있게 놀았다.


가위질을 잘하니 종이를 오려서 하는 만들기 놀이도 가능해졌다. 나비 모양으로 종이를 자르고, 데칼코마니 기법을 이용해 문양을  만드는 놀이 같은 것도 가능해졌다.

그 외 시간엔 하루종일 둠칫둠칫 춤을 추는 흥겨운 아이였다. 


울 아들은 주로 동적인 활동을 많이 했지만, 또 얌전히 앉아 있을 때는 집중력이 엄청 좋았다. 

여전히 책 읽는 걸 좋아했는데, 말이 늘면서 책을 소리 내서 읽는 척을 했고, 어설프긴 했지만, 읽고 있는 동화들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창작 이야길 만들어 들려주기도 했다. 


집에 있는 직소퍼즐과 블록들은 이제 너무 쉽게 맞췄고, 최애 TV 프로그램은 방귀대장 뿡뿡이에서 벗어나 EBS 교육방송에서 하는 "뽀로로"와 "토마스 기차"로 바뀌었다.  


컴퓨터로 하는 학습 프로그램은 하루에 한 시간 정도 꼭 챙겨서 했고, 마트에 가면 반드시 서점 코너에 들러 책을 읽거나 읽고 싶은 책을 사달라고 했다. 

특히, 이 시기 스티커가 포함된 한글이나 수학 학습책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았는데, 아이가 골라온 책들은 샘플이 있을 경우, 그 자리에서 함께 읽어보거나 해 보고 나서 살지 말지를 결정했다. 


그 당시 나는 아이가 아직 너무 어리다 싶어 "학습"을 시키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원한다면 낱말카드놀이처럼 "학습" 보다는 "놀이"에 가까운 방법으로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시켜 주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가 원하는 학습책도 사주었다. 서점에서는 그렇게 갖고 싶다고, 해보고 싶다고 했던 책들도 집에 오면 정작 찬밥신세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학습책을 가지고 놀지 않는 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아이가 스스로 관심을 보일 때까지 기다렸고, 그러다 아이가 학습책을 함께 하길 원하면 적극적으로 열심히 놀아주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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