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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Way Nov 12. 2024

한글공부? NO! 낱말카드놀이

생후 24, 25개월 육아 & 놀이(교육) 

드디어 두 돌이 되었다. 

이 시기부터는 확실히 신체적인 성장이 둔화되긴 했지만, 의사소통이 잘 되었고, 행동에 제약이 없다 보니, 육아에 있어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던 것 같다. 


생후 24개월, 아이에게 둘 도 없는 중요한 이벤트가 있었다. 그 첫 번째는 아이의 두 번째 생일이었고, 두 번째는 크리스마스였다. 


두 돌맞이 생일파티는 가족이 모두 모여 축하해 주었는데, 비눗방울 불던 솜씨로 촛불도 스스로 끄고 생일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생일 선물은 장난감 가게에 함께 가서 골랐다. 사실 우리는 책상을 사주고 싶어 갔건만, 책상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망설임 없이 유아용 전자 키보드를 사달라고 해서, 책상은 잠시 미뤄두고 아이가 원하는 것으로 사주었다.


크리스마스는 동화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사실, 친정은 내가 어릴 적부터 크리스마스를 따로 챙기지 않았는데, 외손자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다 보니, 잠시 크리스마스 이벤트가 허용되었다. 그래서, 12월이 되자마자 크리스마스트리도 준비하고 내가 자라면서 보지 못한 집안 풍경이 펼쳐졌다. 

아이가 산타할아버지 이야길 좋아해서 여러 번 읽어주면서, 산타할아버지로부터 선물을 받으려면 울어서도 안되고, 짜증을 내서도 안된다고 했더니, 그 이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기 위해 떼쓰던 것도 잠시 멈추고 짜증도 참아내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다. 덕분에 크리스마스 시즌은 우리에게 참 평안한 달이 되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날, 착한(?) 아이에게만 준다는 산타할아버지의 선물, 기차 블록을 받았다.      


이제 두 글자 단어를 벗어나 문장을 구사하기 시작해 웬만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예를 들면, 낮에 집에서 놀다가 식탁에 머리를 부딪혔었는데, 저녁 무렵 퇴근이 늦어질 것 같다는 아빠의 전화를 받더니 "아빠, OOO(본인 이름) 식탁 쾅이야." 라면서,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을 아빠에게 전화로 알릴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아빠와의 전화통화를 끝낼 때에는, "아빠 끊어."라든지, "보고 싶어, 사랑해."라든지, "마니 좋아, 사랑해."같은 말들을 배워 즐겨 사용했다.

혼잣말로 "신문에 뭐가 있을까?" 중얼거리며 외할아버지의 신문을 들춰보기도 했고, "엄마, 도와주세요." 같은 말들을 상황에 맞게 잘 구사하기도 했다.

전화를 통해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재미있는지, 집전화(그 당시 친정에 설치되어 있던 전화)가 울리면 식구들 중 제일 먼저 달려가서 수화기를 들고 "네"라고 대답해, 전화건 사람들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여전히 "방귀대장 뿡뿡이"는 최애 프로그램이라 보고, 듣고, 따라 하는 활동들이 이어졌는데, 이전까지는 주로 몸으로 하는 활동들을 따라 했다면, 이 시기부터는 "대사"와 "노래"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특히, 혼자 놀 때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해, 곧 노래를 따라 부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나쁜 일, 더러운 일에 대한 개념이 없어, 가르쳐야 할 것들이 많았지만, 일상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생활 습관들을 체득해 나갔던 시기였다.


그리고, 25개월 무렵엔 아이의 건강에 2가지 문제가 생겼다.


일단은 임파선 비대증 증상이 있어 종합병원엘 다녀왔었다. 

목에 임파선이 부은 것 같아 만져보다가 아주 작은 콩알만 한 것에서부터 1cm 정도 크기까지 다양한 크기의 덩어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깜짝 놀라 다음 날 동네 소아과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 보였더니 그럴 수도 있다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다. 하지만, '한두 개도 아니고, 내 손에 만져지는 것만 해도 10개가 넘는데...' 싶어, 신경이 너무 쓰였다. 

그래서 결국 큰 병원에 다녀왔다. 

초음파 검사 결과 양이 많긴 하지만, 크기나 모양이 다 괜찮다는 소견을 들었다. 다만, 아이가 자라는 동안 잘 관찰했다가 크기가 너무 커지거나 하면 그때 다시 검사를 받으면 된다고 했다. 

이후 종종 관심 있게 지켜봤는데, 아이가 크면서 작아지거나 사라진 것들도 있고, 일부 남아 있는 것도 있지만, 아직은 이것들로 인한 문제는 없었다.  


두 번째는 알레르기성 천식이 생겼다. 

감기에 걸리면 비염이 끝까지 남아 아이를 괴롭혔는데, 이 시기 알레르기성 천식도 진단받아 기관지 확장을 위한 흡입기를 한동안 사용했었다. 

하지만, 이 또한 아이가 자라면서 흡입기 사용 횟수가 줄더니 다 자란 지금은 알레르기성 천식 증상은 없다.     


생후 24개월과 25개월의 가장 큰 이슈는 아이가 한글을 깨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난 육아를 되짚어 보면, 한글 공부를 따로 시킨 건 아니었는데, 일상생활과 놀이과정에서 한글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참 많긴 했었던 것 같다. 

우선, 생후 6개월부터 밤잠 수면의식으로 책 읽기를 시작했고, 생후 12개월, 사물 인지 놀이에 관심을 보이길래 아기 관찰 카드를 사주고, 벽에 동물 포스터와 과일 포스터를 붙여두었었다. 그리고, 생후 21개월 스티커놀이를 시작하면서 캐릭터 스티커가 아닌, 한글, 숫자, 사물놀이책의 스티커 등을 이용해 아이와 함께 놀았었다. 그리고 두 돌이 되면서부터는 우리만의 낱말카드놀이를 시작했다.


처음엔, 초급 단계.

일단, 100장의 낱말카드를 그림이 보이도록 바닥에 펼친 다음, 아이 외 어른 1~2명이 함께 놀이에 참여해 그림 찾기를 시작했다. 심판이 카드 중 하나의 이름을 이야기하면 먼저 찾는 놀이였다. 이때 중요한 것은 10번의 놀이 중 1~2번 정도는 어른이 찾고, 나머지는 아이가 찾을 수 있게 시간을 주는 거였다.

"지금부터 바나나를 찾습니다. 시작."

심판이 놀이의 시작을 알리면, 놀이에 참여한 어른들은 분주하게 찾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아, 바나나가 어디 있더라? 아, 안 보이네. 아, 노란 거 그게 안 보이는데?"

아이가 찾을 때까지 티 나지 않는 힌트를 주면서 기다렸다가 아이가 찾으면 대단하다는 듯이 칭찬을 해 주었다.


중급 단계.

이번에는 100장의 낱말 카드를 글자가 보이도록 바닥에 펼친 다음 기억력 테스트 놀이를 했다. 아직 글자를 잘 모르는 상태라, 카드를 한 번씩 뒤집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지금부터 사과를 찾습니다. 시작."

그러면, "사과" 카드가 나올 때까지 카드를 하나씩 뒤집어 보면서 찾았다. 어른들은 글자를 아니까, 당연히 "사과" 카드가 어디 있는지 알았지만, 모르는 척하면서 아이가 카드를 뒤집어 찾을 수 있게 유도했다. 

아이가 모두 다 찾게 되면 당연히 시시해할 테니, 아주 스릴 있게, 아이가 찾으려는 순간 어른들이 찾아 버리는 식으로 약간의 긴장감을 주는 게 포인트. 단, 적절한 밀당으로 놀이를 하되, 절대 울리지 않았다.


고급 단계.

고급 단계는 100장의 낱말 카드를 글자가 보이도록 바닥에 펼쳐 놓은 후, 초급 단계처럼 단어를 찾는 놀이였다. 이젠 기억력 테스트가 아니어서 카드를 뒤집어 볼 수 없고, 선택한 카드가 맞는지 확인만 가능하게 했다. 역시나 어른들은 찾는 시늉만 하면서 아이에게 적당한 긴장감을 제공했고, 아이가 찾아낼 수 있게 유도했다가 찾아내면 "멋지다.", "최고다.", "대단하다." 등의 칭찬을 해줬다.


이 놀이가 재미있었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한 번 하면 꽤 오랜 시간 놀았고, 어른들이 지루해 지쳐갈 때쯤 단계들을 클리어하더니, 결국 25개월 차 끝날 무렵엔 집에 있는 낱말카드 100장의 글자를 모두 알아버렸다.

"ㄱ, ㄴ, ㄷ, ㄹ"을 가르친 게 아니라 찾기 놀이를 한 거였는데, 하다 보니 한글을 익히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이후, 책을 읽으면 알고 있는 단어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이 시기엔 혼자 노는 시간도 꽤 늘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흥얼거리기도 하고 종알거리기도 하며, 열심히 상상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혼자 색종이나 신문지를 자르고 있기도 했고, 블록을 쌓고, 직소퍼즐을 끼우는 놀이를 하고 있기도 했다. 노래를 틀어달라고 하고선 혼자만의 흥에 취해 춤을 추는 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래도, 아직은 혼자 노는 것보다는 함께 노는 걸 더 좋아해, 아빠와 함께 스트레칭하기, 엄마와 함께 공놀이하기, 이모와 함께 숫자놀이 하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다도 놀이하는 걸 즐겨하는 시기였다.     



[에필로그] 

울 아들이 태어난 날, 첫 손자를 만나러 병원에 오셨던 시어머니께서 내게 축하 인사를 건네며 하신 첫 말씀은, "이제, 둘째는 딸 낳으면 되겠다."였다. 

그땐 당연히 농담으로 받아들였지만, 이후 둘째에 대한 기대감을 틈틈이 내비치셨다. 물론, 신랑이 중간 역할을 잘해주어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의 압박감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아이가 두 돌이 되고 나니, 진짜 "둘째"에 대한 결정을 하긴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울 신랑과 대화를 나눴다. 

"당신은 둘째 생각 있어?"

"아니. 난 OO이만 있으면 돼."

"왜?"

"지금은 우리 둘 다 학위논문부터 통과하는 게 먼저인 것 같고, 네 건강을 생각해도 둘째는 무리인 것 같아. 그냥 OO이 하나만 잘 키우자."

건강상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잔병치레가 많고 체력이 약했던 나를 배려해 준 신랑의 결정에 결국 나도 동의를 하긴 했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아이가 외롭진 않을까?'

그래서, 동생이라는 단어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아이에게 동생에 대해 의견을 물어보았다. 

"OO이는 동생이 있으면 좋겠어?"

"아니, OOO(3인칭 화법) 동생 싫어."

알고 그러는 건지, 모르는 건지, 이후 며칠에 걸쳐 똑같은 질문을 여러 사람이 번갈아 가며 해봤는데, 대답은 한결같았다.

"동생, 싫어."

아직도 아이가 왜 그런 대답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이의 대답을 핑개삼아, 우린 둘째 계획을 완전히 접었다. 

그리고 그 이후, 아이가 "동생"에 대한 개념을 이해할 정도의 나이가 되었을 때도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대답은 늘 똑같았다. 

"동생,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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