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23개월 육아 & 놀이(교육)
제법 쌀쌀해진 날씨 덕분(?)인지 생후 23개월, 아침마다 하던 루틴들에 변화가 생겼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아빠와 나의 출근의식이 간소화된 것이었다. 아침마다 아빠를 따라나서서 아빠 차를 타고 아파트 단지 한 바퀴를 돌고 나서야 아빠의 출근을 허락해 왔는데, 갑자기 춥다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질 않았다. 그래서 매일 아침 하던 루틴에서 벗어나 그냥 현관 앞에서 아빠를 배웅했고, 그 덕에 나와 함께 하던 아침 산책도 생략하게 되었다. 3개월 가까이했던 루틴이라 그랬는지 갑작스러운 간소함에 우리 둘 다 약간의 서운함과 약간의 해방감이 뒤섞인 마음이 들어 조금 혼란스러웠다.
몸무게는 또 제자리걸음인데, 키는 자꾸 자랐다.
이젠 혼자 베개나 책을 쌓아놓고 올라가서 방의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이 가능해졌고, 작은 발판을 딛고 올라서면 세면대에서 세수가 가능할 정도로 키가 컸다.
그래서, 아침 식사 후, 이를 닦이고 나서, 세수를 직접 하게 했더니, 눈을 감은 채 어찌나 조심스럽게 고양이 세수를 하는지. 얼굴은 가만히 있고, 손을 움직여 씻어야 하는데, 손은 가만히 있고, 얼굴을 돌리며 씻는 모습에 매번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뭐 어떤가. 직접 하는 게 중요하지.
"아이고, 잘했어. OO이 멋지다, 최고다."
오랜 시간 옹알이로 공들인 후 입이 트여 그런지, 매달 말이 빨리 늘었다.
생후 23개월엔 신발, 컵, 물, 베개, 밥, 바지, 양말, 안경 등 점점 많은 단어들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정확한 발음이 아닌 것도 있었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만큼 말했다.
하루는, 아이가 인형들이랑 혼자 놀면서, "오빠" 어쩌고 하며 말하는 걸 듣게 되었다. 그래서, "오빠가 누구야?"라고 물었더니 "내 아빠, 오빠."라고 대답했다.
아이 아빠를 신혼 초까지 "오빠"라 부르다, 입에 붙어버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도 "오빠"라고 불렀더니 그걸 캐치해 따라 하다니... 그래서, 이 시기 어른들도 최대한 말을 조심히 가려서 하려고 더욱 노력했다.
뭔가를 하고 싶으면 본인 이름을 또렷하게 말하며 의사를 전달(3인칭 화법)했고, 싫은 일이면 "아니"라고 정확하게 의사를 표현했다.
새끼손가락만 세워 약속하기도 가능해졌고, 가위, 바위, 보를 흉내 낼 수 있게 되었으며, 나이를 물으면 손가락 3개를 들고 "세 살"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본인 생각에 멋지거나 잘한다 싶으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우와"하면서 감탄사를 날리기도 했다.
식습관도 거의 자리 잡았고, 숟가락질도 제법 잘해서 혼자 밥을 먹었다. 23개월에 즐겨 먹었던 건 콩(특히 완두콩), 오이, 귤 등이었다.
신발 혼자 신기, 바지 혼자 입기는 이제 거의 스스로 했고, 양말은 아직 좀 어려운지 힘들어하긴 했지만, 끝까지 혼자 해보려고 애쓰는 시기였다.
자다가 갑작스럽게 울던 야경증 증세도 개월수가 늘어갈수록 점점 줄어들었다.
생후 23개월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자기주장"이 매우 강해졌다는 점이었다.
원래 의사표현이 확실한 편이어서 말도 통하지 않을 때(10개월 무렵)부터 "내가 할 거야 병(?)"에 걸렸고, 19개월엔 거의 절정에 이르렀지만, 그땐 그저 떼쓰는 형태였는데, 이 시기엔 의사소통이 되다 보니, 좋은 것과 싫은 것,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 등을 명확하게 말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특히, 패션 쪽에 있어서의 "자기주장"이 가장 강했던 것 같다.
날이 춥다고 밖에 잘 안 나가려고 해서 망정이었지, 지난달처럼 밖을 수시로 드나들었다면 정말 힘들 뻔했다. 그날그날 입고 싶은 옷, 쓰고 싶은 모자, 신고 싶은 신발이 정해져 있어, 외출을 할 때마다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했다. 어른들 기준에서 보면, 날씨에 맞지 않는 옷,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이었으니 매번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니야, 이건 지금 입기엔 너무 추워."
"아니야, 이 모자는 지금 쓰기엔 안 어울려."
"아니야, 이 신발은 여름에 신는 신발이야."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애가 좋다는데. 본인이 선택한 건데. 처음 몇 번은 설득을 해보고, 설명을 해봤지만, 안 통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날엔 아이가 원하는 스타일대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혹시 밖에서 마주친 아이의 패션 센스가 정말 엉망이다 싶으면, 그건 아이의 "자기주장"이 강해져서 그런 거지, 절대 엄마, 아빠의 탓이 아님을 알아주시길...
그밖에, 아이 전용 샴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들 샴푸로 머리를 감겨달라고 요구하거나, 좋아하는 색은 "초록색"이라서 뭐든 "초록색" 물건만 갖겠다고 하거나, 발에 꽉 끼는 신발은 "아야" 한다며 좀 큰 신발을 원한다거나, 외할머니 집은 13층인데 굳이 12층에서 내려 1층은 걸어 올라가야 한다거나 하는 그런 주장을 했다. 도저히 어른들로서는 이해가 잘 안 가는 행동들도 있었지만, 특별히 남에게 민폐가 되는 행동이 아니라면 그냥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참말로 독특한 아이로세..." 정도로만 생각하고.
생후 15개월 육아일기에 언급했던 것처럼, 울 아들은 흥이 많아 아이의 놀이활동에 "춤"이 빠지지 않았다.
엄마, 아빠와는 달리 몸치가 아니었는지 한두 번 본 춤은 웬만해선 다 따라 했고, 심지어는 새로운 노래(동요)를 듣고 난 후, 그 노래가 마음에 들면 노래에 맞춘 안무를 직접 짜서 그 노래가 나올 때마다 똑같은 춤을 췄다. 몸을 움직이는 춤동작에서 벗어나 얼굴과 몸에 감정을 실어 춤을 췄는데, 진짜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였다(모자이크 처리를 해야 해서 아쉽다.).
거의 김연아급 표현력이었다고 생각...
크... 죄송함다...
방귀대장 뿡뿡이 테이프 1탄은 테이프가 늘어날 정도로, 어른들조차도 다 외울 정도로 보고 나서야 좀 시시해했다. 그래서 2탄을 사줬다. 2탄은 생활습관 기르기가 주된 내용이라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일부 내용 중에 뿡뿡이가 다치거나 짜잔형이 인상을 쓰고 있는 내용이 있는지 볼 때마다 우울해하거나 울고 있었다.
'이런, 감수성도 예민하네.'
어릴 땐 정말 그랬다. 눈물이 많아 '마음이 참 많이 여리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 그리고 방귀대장 뿡뿡이의 캐릭터 중 최애 캐릭터가 분명 뿡뿡이였는데, 짜잔형으로 갈아탔다. 그래서 짜잔형이 쓰는 모자, 짜잔형이 입고 있는 멜빵바지, 짜잔형의 줄무늬 티셔츠와 비슷한 옷을 입고 짜잔형 흉내 내는 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자동차 타는 놀이는 좀 시들해진 것 같았고, 풍선놀이, 블록 높이 쌓기 등을 즐겨하는 중이었다.
생후 10개월, 외할머니의 주방에 침입(?)해서 잽싸게 소쿠리 들고 도망치기, 바가지 들고 튀기 등을 하더니, 생후 23개월엔 외할머니 부엌에 침입(?)해 쌀이랑 콩을 들고 튀다가 외할머니께 들켜 혼이 나기도 했다.
숫자는 어느새 30까지 알게 되었고, 생일이 며칠이냐고 물으면, "십이, OO"이라고 정확하게 대답했다.
시간 개념도 약간 생겼는지, 내가 집을 나서려고 하면, 시계를 가리키며 "엄마, 30" 등과 같은 말도 했다. 생후 3개월부터 시작된 출근의식 때, 내가 시계를 가리키며 "큰 바늘이 12, 작은 바늘이 7에 오기 전에 다시 집으로 돌아올게."라고 했던 것처럼 돌아올 시간을 정해줬다.
지난달에 사준 보드판에 글 쓰는 흉내를 내기 시작했고, 사물을 의인화해서 집에 있는 인형들, 뿡뿡이 인형, 끼끼(EBS 프로그램 캐릭터 고릴라 인형), 냉냉이라 이름 붙인 꼬마 강아지 등에게 밥을 먹이고, 공부도 시키고 책을 읽어주는 활동들도 했다. 물뿌리개를 들고 화분에 물을 뿌리면서 식물과도 이야길 나눴다.
20개월부터 보던 컴퓨터 학습동화와 노래교실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어서, 이젠 직접 마우스를 클릭해 동화와 동요를 선택했다. 시간은 여전히 30분 ~ 1시간을 넘지 않게 보여줬고, 다른 프로그램에도 관심을 보이길래 색칠하는 프로그램을 시켜봤는데, 직접 색깔을 선택하고 그걸 드래그해 색을 입히는 활동이 가능했다. 역시, 손재주가 좋았다.
생후 23개월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던 시기였지만, 울 아들의 경우 주변에 어른들이 많아 자아 형성과 욕구 해소에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참 복이 많은 아이였다.
1박 2일 일정 부부동반 모임이 있어서 처음으로 아이를 떼놓고 가보려고 하다 실패했다.
1주일 전부터 여행 계획을 미리 알렸는데,
"할부지야, 할머니야, 아빠, 이모야, 붕붕. 엄마, 으으으." 란다.
해석하자면, 엄마만 빼고 다 갔다 오라고...
그래도 출발 이틀 전에 다시 한번 엄마랑 아빠만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이야길 했는데, 잠시 후 애가 사라져 찾았더니 혼자 숨죽여 울고 있는 거였다.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안쓰러워서, 결국 논의 끝에 지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이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어찌나 좋아하는지...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밥도 잘 먹고, 대소변도 잘 가리고, 잘 놀고, 우릴 엄청 편하게 해 줬다.
딱 한번 사소한 고집으로 인해 아빠와 둘이 좀 투닥거리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어찌나 다정한 아빠와 아들인 척, 친한 척을 하는지...
어른들 틈에서 예의 바르고 예쁘게 행동을 해 칭찬을 많이 들었고, 사람들이 예뻐한다는 걸 알고는 우쭐거리며 더 말을 잘 들어, 걱정과 달리 큰 민폐를 끼치지 않은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