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3, 4세(5, 6살) 육아 & 놀이(교육) (1)
드디어 세 돌이 되었다.
학계에서도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것 같긴 하지만, 36개월, 즉 만 3세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유아기로 분류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더불어 내가 생각하는 울 아들의 유아기는 어린이집을 다닌 시기(만 3, 4세)와 유치원을 다닌 시기(만 5세)로 구분된다. 나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보육과 교육으로 구분되는 시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아기에 내가 가장 집중적으로 했던 것 2가지는 아이의 건강을 케어하는 것과 아이의 기질 및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일단 아이의 건강관리는 전적으로 주 양육자인 엄마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예방접종 등 기본적인 것들을 신경 썼었고, 틈틈이 잔병치레를 할 때마다 소아과를 방문해 아이의 발육상태 등을 체크해 왔었다.
거기에 더해 이 시기에는 치과와 안과를 정기적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의 마지막 유치 4개는 22개월 무렵부터 나기 시작해 23개월 때 총 20개가 되었다.
어찌나 촘촘하고 가지런하게 났는지... 듣기론, 유치가 촘촘하게 나면 영구치 날 자리가 좁아 덧니가 된다고 하던데,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만 3세가 되자마자 치과 검진을 시작했다.
그 당시 차로 10분 거리에 새로 개원한 소아치과가 있어 방문했는데, 진료 결과 "치아 관리가 잘되고 있지만, 철분제로 인한 치아변색이 약간 보이니 불소 코팅을 해주는 게 좋겠다.", 그리고 "두고 봐야 알겠지만, 이가 너무 촘촘하게 나서, 아무래도 교정을 해야 할 것 같다."라는 소견을 받았다.
이후, 초등학생 때까지는 정기적으로 소아치과에서 진료를 받아가며 치아관리를 했다. 특히, 유치가 빠질 무렵 이가 흔들릴 때도 나는 치과에 갔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빠지는 이조차도 혹시나 실수할까 봐, 피가 너무 많이 날까 봐, 내가 겁을 먹어서 집에서 뺄 수가 없었다.
반면, 아이는 의외로 치과진료를 잘 받았다. 치과는 어른들도 싫어하는 병원인지라 처음 데리고 갈 때부터 설명을 열심히 하고 갔는데, 소아치과의 분위기가 아이의 흥미를 유발했는지 큰 거부감이 없었다. 어쩌면 검진만 하고 딱히 치료할만한 이가 없어서 괜찮았을지도 모르겠다.
자랑을 좀 하자면, 유치일 때까지는 충치 하나 없이 치아관리를 해줬다.
아마도 단 음식을 많이 안 먹이고 이를 열심히 닦여서 그랬던 것 같긴 하다.
안과는 생후 19개월 무렵 "가성내사시" 진단을 받았을 때, 시력, 난시, 근시, 약시까지 확인을 했었고, 이후 1년에 한 번꼴로 정기적으로 가서 시력 검사를 받았다. 덕분에 대학 입시를 치르기 전까지는 좋은 시력을 유지했다.
사실, 엄마, 아빠가 모두 안경을 쓰고 있어서 아이만은 안경을 씌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볼 때, TV를 볼 때, 바른 자세로 멀리 떨어져서 볼 수 있게끔 신경을 많이 썼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는 동안 스마트폰이 생기고,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면서 결국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안경을 쓰게 되었다. 물론, 많이 나쁜 건 아니라서 가끔 쓰는 정도인 것 같긴 하지만.
지금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2년 정도의 주기로 안과를 방문해 시력 검사를 받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유아기에 접어들면서부터 했던 건강관리 중 하나가 아이에게 나타난 두드러기 원인 물질을 찾는 것이었다. 두 돌이 지난 이후부터 간헐적으로 조금씩 나타났는데, 세 돌이 되면서부터는 음식에 제한이 없어서 그랬는지 두드러기가 자주 올라왔고, 한번 올라올 때마다 아주 심해서 응급실에 가야 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병원에서 알레르기 검사를 받았는데, 그 당시 검사로는 "음식으로 인한 것 같다." 정도였지 구체적인 음식을 특정하진 못했었다. 그래서 집에서 하나씩 확인하는 방법을 통해 알레르기 케어를 시작했다.
우리가 찾은 음식은 2가지였다.
첫 번째는 플레인 요구르트. 아이의 장에 좋다길래 사 먹였더니 두드러기가 아주 심하게 올라왔다. 그런데, 또 치즈 같은 건 괜찮았다.
두 번째 음식은 들깨였다. 들깨는 알레르기 음식으로 확정하기까지 기간이 좀 오래 걸렸다. 집에서도 친정엄마께서 가끔 들깨가 들어간 국을 끓여주셨지만, 먹는 양이 적어서 그랬는지 들깨와 두드러기를 연결 짓지 못했다. 들깨가 아이에게 두드러기를 일으킨다는 사실은 좀 더 커서 아이가 심한 감기로 병원에 며칠간 입원하면서, 병원에서 제공된 환자식을 먹다 발견했다.
이후 아이는 지금도 들깨가 들어간 음식과 플레인 요구르트는 기피하는 중이다.
건강관리 외, 이 시기 내가 집중적으로 했던 두 번째 일은 아이의 기질과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기질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 성격은 기질에 환경이 더해져 만들어진 결과라고 하는데, 요즘 육아엔 이 둘을 잘 구별해서 키워야 한다는 코칭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키울 당시엔 "기질"이라는 단어 자체도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를 키우는 내내 울 아들이 어떤 아이인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어떤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지 등, 아이의 "기질"을 알아보기 위해 참 열심히 관찰했던 것 같다.
생후 30, 31개월 무렵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어떨 때는 대담한 것 같다가도 어떨 때는 신중한 것 같아 어떤 성격인지, 어떤 기질을 가진 아이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유아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조금씩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는 행동들이 눈에 보였고, 그걸 캐치해 육아에 접목해 보려고 애썼다.
일단, 울 아들은 승부욕이 강한 아이였다.
지는 걸 싫어해, 질 것 같으면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뭔가를 실패하는 것도 싫어했다. 그래서 뭔가를 실패했을 경우, 다시 해보기보다는 아예 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였다.
아주 간단한 놀이에서조차 그런 행동이 보여, '자존감이 낮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실패하지 않을 만한 일들을 많이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성공의 경험을 축적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일은 함께 해서 혼자 감당하지 않게 했다.
"네가 잘못한 게 아니라 엄마의 실수로 실패한 거야."라고 다독이며 한 번 더 해 볼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주곤 했다. 그러면서 내가 자주 해주었던 말은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였다. 덧붙여,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 "이만큼 한 것도 너무 잘한 거야."라는 말로 아이가 스스로를 평가절하하지 않도록 도왔다.
두 번째, 울 아들은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이 성향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해 본 것만 믿는 경향으로 발전했는데, 이건 아빠와 너무 닮은 부분이었는다. 세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좋은 게 좋다."라고 생각하는 나와 달리, 현실을 직시하고 원인을 찾고 이면을 찾아내려고 하는 성향이 크면 클수록 두드러졌다.
유아기 때는 이런 기질이 고집으로 보여 실랑이를 제법 했는데, 아이와 다투지 않는 방법은 변수를 줄이고, 설명과 설득을 한 후, 직접 경험하게 해서 스스로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추운 겨울인데 얇은 봄옷을 입고 싶어 하는 경우, 일단 아이와 함께 옷장을 열어보고 아직 봄옷이 준비되지 않았음을 눈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물론 이 경우, 변수를 줄이기 위해 내가 미리 봄옷을 치운 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기억하는 봄옷이 입고 싶다고 찾아달라고 한다면, "지금은 겨울이라 그 옷을 입으면 추울 거야. 그러면 감기에 걸리게 될 거고, 그러면 병원에 가야 할 테고. 그러면 약을 먹고 아픈 동안엔 OO이가 하고 싶어 하던 OO 놀이도 못하고, 좋아하는 OO도 못 먹게 될 거야. 그래도 입을 거야?"라고 물었다. 그래도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별 수 없이 원하는 대로 해줬다. 그리고 밖에 데리고 나가서 직접 겪어보게 한 후, 다시 설득해 보되 옷을 갈아입을지 말지를 스스로 결정하게끔 했다.
마지막으로, 울 아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는 하되, 신중하게 하는 편이었다.
문화센터를 다닐 때 이미 느낀 거였지만,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되면 선뜻 나서기보다 일단은 관망을 한 후, 합류했다. 새로운 음식에 대해서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는데, 바로 맛보기보다는 일단 관찰했고, 맛을 본 후 그 음식에 꽂히면 길게는 몇 년간 같은 메뉴만 먹기도 했다(피자헛의 슈퍼슈프림... 그 메뉴로부터 벗어나는 데 자그마치 10년이 걸렸다.).
나는 아이의 이런 성향을 존중했다. 일단 권해보기는 하되, 싫다고 하면 한발 뒤로 물러섰다. 물론 모든 걸 그렇게 한 건 아니었다. 반드시 겪고 넘어가야 하는 경우엔 예외를 뒀지만, 미룰 수 있는 일이거나 선택의 문제라면 아이의 의사를 존중했다.
아이가 만 3세, 우리나라 나이로 5살쯤 되었을 때, 동네 친구들이 태권도장을 다닌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울 아들에게도 의향을 물었는데, 일단은 싫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는 걸 믿는 성향의 아이니 실제로 보여주고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OO이 친구가 다닌다는 곳 한 번 구경 가 볼까?" 하고 동네 태권도장에 일일 체험을 하러 간 적이 있다. 한 30분 정도 형들이 태권도하는 모습을 보고 난 후 집에 돌아왔는데, 어땠냐는 내 물음에 "태권도장, 무서웠어요."라고 대답했다. 아마 기합 넣는 소리, 뛰어다니는 우당탕탕 소리가 아이에겐 익숙하지 않은 소리라 그랬던 것 같았다.
그래서 포기했다. 아이가 보고 듣고 경험해 보고 결정한 거라서 아이의 의견을 존중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한번 더 권해 볼 생각은 했다. 남자 아이라 태권도든 합기도든 검도든 내 몸 하나 지킬만한 운동은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단은 보류하되 시간을 두고 기회를 엿보기로 했다.
내가 그 당시 육아책에서는 코칭해주지 않았던, 아이의 성향(기질)을 파악하려고 애썼던 이유는 내 어릴 적 경험 때문이었다.
나는 꽤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순종적인 아이였는데, 장녀였다는 이유만으로,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내 성격을 바꿔보겠다는 어른들(부모님 외 친척들, 선생님 등)이 주변에 있었다. 그래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참아내야 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특히, 초등학생 때 어른들 없이 동생들만 데리고 고속버스로 2시간 넘는 친척집을 다녀와야 했다거나 내 의사와 상관없이 큰 대회에 나가야 했던 일들은 그 당시에 느꼈던 불안감, 초초함, 무서움 등의 감정들과 뒤섞여 고스란히 기억에 남아 있다.
물론 지금은 그 당시 내가 겪어야 했던 상황들을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나중에 엄마가 되면 아이가 어떤 성향의 아이인지부터 파악해서 절대 내 아이가 싫다는 걸 억지로 시키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었고, 가능하면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렇게 궁금했었나 보다. 가끔 아이와 부딪힐 때마다 내 육아로 인해 아이가 상처를 받는 건 아닌지, 아이에게 트라우마로 남을 만한 무언가를 내가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고 말이다.
어쨌든,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웠다고 자부하지만, 그건 내 입장인 거고, 아이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하긴 하다.
유아기 때 파악한 아이의 기질은 육아, 교육, 성격에 기반한 행동 교정 등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기본 지침이 되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