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3, 4세(5, 6살) 육아 & 놀이(교육) (2)
어린이집이냐, 유치원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세 돌이 지나 우리나라 나이로 다섯 살이 된 울 아들도 이젠 어린이집을 가야 할 때가 되었다. 그래서 친정 근처 어린이집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유치원도 염두에 뒀지만, 정보를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아직은 보육이 우선시되는 어린이집을 보내는 게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홈페이지 등을 통해 몇 군데 괜찮아 보이는 곳을 찾아 아이와 함께 방문 상담도 받고, 시설도 둘러보면서 아이의 반응을 살펴봤지만, 어디가 좋은 곳인지, 어디가 아이에게 적당한 곳인지 도대체가 판단이 서질 않아서 계속 망설이게 되었다.
아이가 유치원을 가기 전까지 적어도 2년은 다녀야 할 곳인 데다가 아이에게 중요한 선택이다 보니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아이가 문화센터 다닐 때 좋아했던 "레고닥타베이비" 선생님을 길에서 우연히 만나 안부를 묻다 시지에 레고 교육센터가 있다는 이야길 듣게 되었다. 안 그래도 아이가 레고를 무척이나 좋아했어서 어린이집 프로그램에 레고교육이 있는지 등도 알아보고 다니던 중이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새로운 정보를 얻어 레고 교육센터에 아이와 함께 상담을 받으러 가게 되었다.
아이가 다녔던 레고 교육센터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곳이다. 하지만, 그 당시엔 꽤 괜찮은 시스템을 갖춘 교육센터였다. 모든 유아 교육에 레고 교육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고, 선생님 한 분이 최대 7~8명 정도를 케어한다는 점, 원장선생님께서 직접 요리한 음식으로 점심과 간식을 제공한다는 점, 그리고 시설이 깨끗하다는 점 등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레고센터의 커리큘럼이 유아교육을 기반으로 하되 레고놀이를 접목함으로써 "창의력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 가장 솔깃했다.
교육비는 그 당시 일반 어린이집과 크게 차이가 나진 않았는데, 입학 시에 개인 레고 교구 구입비가 추가로 들기는 했다. 하지만, 개인 레고 교구는 집에 가져가서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이라 손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이도 꽤나 좋아했다.
내가 원장선생님과 상담을 하던 약 1시간 동안 선생님과 레고 놀이를 했다는데, 돌아오는 길에 "내일 또 레고센터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아이가 좋아하니,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하지만, 교육비 문제도 있고,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 가족들과 의논을 했다.
일단, 보육교사 자격증이 있던 동생이 찬성을 했다. 소수정예고, 시설도 괜찮고, 교육비도 적정해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울 신랑도 아이가 좋아했다고 하니, 찬성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 같았다.
다만, 가난한 대학원생 부부가 감당할 수 있는 교육비인가라는 부분에 발목을 잡혀 선뜻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월 교육비 자체는 주변과 비교해 차이가 나지 않는다지만, 교구비 같은 초기비용에 목돈이 드는 상황이라 '우리 능력에 비해 과한 소비인가? 아님, 아이를 위한 투자인가?', '내 아이에게 좋은 걸 먹이고 싶고, 좋은 걸 시키고 싶은 건데, 우리 형편에 너무 과한 욕심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정말 며칠간 아주 깊게 고민했고, 그 고민 끝에 "아이가 좋아하는 것, 아이가 흥미를 보이는 것"이라는 이유를 최우선으로 하여 레고 교육센터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 당시 우리 형편을 생각해 봤을 때, 아이의 어린이집 선택은 정말 여러모로 "도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돌이켜봤을 때, 그때 그 결정은 "신의 한 수" 였다고 생각한다.
3월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로 결정한 이후, 레고센터 원장선생님의 권유로 워밍업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지금 보면, 울 아들은 나와 달리 낯선 환경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은 편이고, 새로운 사람들과도 쉽게 친해지는 것 같지만, 어릴 땐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이 필요한 아이였다. 그래서 항상 아이가 적응할 때까지, 아이가 스스로 마음을 낼 때까지 기다려주는 편이었기 때문에, 원장선생님의 워밍업 수업 제안은 꽤나 도움이 되었다.
1월.
첫 달은 아이와 함께 부모님들도 수업에 참여해 한 시간 정도 아이가 수업하는 모습을 교실 뒤에 앉아 지켜봤다. 워밍업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가 3명 있었는데, 2명은 엄마와 1명은 할머니와 함께 왔다.
워밍업 수업이 너무 재미있다고 하면서도 울 아들은 수업 틈틈이 내 품에 파고들었고, 선생님이 부르셔서 자리에 앉더라도 계속 뒤돌아보며 나를 찾았다.
2월.
수업이 막 시작되는데, 원장선생님께서 교실로 들어오시더니 갑자기 차를 한잔 하자며 엄마들을 불러냈다. 일부러 그러신 것 같았는데, 엉겁결에 엄마와 떨어진 아이들은 선생님의 재미있는 수업에 푹 빠져서 그랬는지, 아니면 엄마를 찾을 타이밍을 놓쳤는지 1시간 수업을 별 탈 없이 잘 마쳤다.
그리고 그날 원장선생님께 칭찬을 듬뿍 받고 나서는 "다음 시간부터는 혼자 수업을 듣겠다."는 약속을 원장선생님과 했다. 실제로 그다음 시간에는 혼자 수업을 받았는데, 선생님께 집중하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대견했다.
하지만, 아직은 적응 단계라 그런지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어떤 날은 잘 적응했다가 어떤 날은 불안해했다가 편차가 좀 컸다.
하루는 레고에 일찍 도착해 친구들을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었는데, 원장 선생님께서 오시더니, 아이와 눈을 맞추시고는 "OO이, 오늘 수업 혼자 들을 수 있지?" 하고 물으셨다. 그랬더니 씩씩하게 "네"라고 대답했는데, 정작 수업이 시작되자 갑자기 엄마와 함께 수업을 듣겠다고 떼를 썼다.
선생님께서 "OO이, 아까 선생님이랑 혼자 수업을 듣기로 약속했지? 그러니, 엄마는 밖에서 기다리시고, OO이는 수업하자."라고 하셔서 교실밖으로 나왔는데, 잠시 후 아이가 대성통곡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원장선생님께서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너무 귀 기울이지 말고 아이가 스스로 적응할 때까지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보자고 하셨지만, 울음이 너무 길게 이어지자, 다른 아이들의 수업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결국 데리고 나왔다. 사실, 이럴 땐 모른 척을 했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안정될 때까지 함께 있어줬어야 하는 건지... 정말 헷갈렸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 어느덧 2월 마지막 주가 되었다.
원장선생님께서 "이제 워밍업은 끝났습니다. 정식 수업을 하기 전에 오전 수업만 두 번 정도 해볼 테니 이제부터 레고 버스에는 아이들만 태워서 보내세요."라고 하셨다. 레고센터에서도 선생님들께서 수업 시간에 계속 말씀을 하시는지, 어느 날엔 "OO이 혼자 레고 갈 거예요."라고 말했다가 또 어떤 날엔 "OO이 혼자 못 갈 것 같아요."라고 하면서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듯했다.
혼자 레고센터에 가야 하는 첫날.
아이와 함께 일찍부터 레고에 갈 준비를 했고, 아파트 입구에서 레고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선생님들의 안내를 받으며 레고 버스에 잘 올라탔다. 그런데, 엄마와 인사를 할 사이도 없이 선생님이 아이를 자리에 앉히고는 레고 버스가 출발을 해 버렸다. 아이도 당황했겠지만, 나도 좀 당황스러워 레고 버스가 멀어지는 모습을 한참 쳐다봤다.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뭔가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몸은 학교 세미나에 참석해 있으면서 마음은 아이한테 가 있었다.
'잘 놀고 있는지, 울고 있는 건 아닌지...'
집에 돌아왔더니, 그날 레고센터에서 있었던 일들을 종알종알, 재잘재잘, 이것저것 이야길 해줬다. 좀 울었다는 이야기, 기차를 만들어 엄마를 만나러 가는 놀이를 했다는 이야기, 간식 메뉴 이야기, 오늘 수업을 담당해 주신 선생님 이야기 등을 제법 맛깔나게 해 줬다.
아이 말을 들었을 때는 '괜한 걱정을 했네.' 싶었는데, 저녁 늦게 원장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셔서 그날 아이의 행동을 들은 결과, 좀 운 게 아니라 레고센터에 들어서자마자 울기 시작해 30분 넘게 원장선생님 품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실컷 울었단다. 하지만, 그렇게 울고 난 뒤에는 간식도 잘 먹고 수업도 잘 받고 했단다.
혼자 레고센터에 가야 하는 두 번째 날.
결국 아침부터 레고에 혼자 가고 싶지 않다고 울기 시작했다.
"레고는 가고 싶은데, 엄마와 함께 가고 싶어요." 하면서 울었는데, 겨우 달래가면서 준비를 시켜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그냥 오늘은 포기할까?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과 '그래도 어린이집을 안 보낼 거 아니면, 이 순간을 이겨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나도 혼란스러웠다.
그러는 사이 레고 버스가 도착했는데, 아이가 선생님과 인사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나에게 안기려고 했다. 그 순간, 나도 '아, 아무래도 오늘은 안되려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아이를 안아주려고 손을 뻗었는데, 갑자기 선생님께서 아이를 낚아채듯이 차에 태우더니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차가 출발해 버렸다. 사실, 아이가 계속 우니까 마음이 아파서 따라 울고 싶은 마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찰나였는데, 머쓱타드...
아이가 하원할 때까지 기다리는 그 시간이 어찌나 길던지 그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아이가 하교한다는 문자를 받고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렸는데, 버스에서 얌전히 내려서는 "안녕히 가세요." 하면서 선생님께 배꼽인사를 했다.
"오늘은 어땠어?" 하고 물었더니 아주 쪼금 울었고, 다른 친구들도 조금씩만 울었단다. 그러면서, "내일도 레고 가고 싶은데, 진짜 엄마랑 같이 가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받긴 했던 것 같다.
그날 저녁, 식사를 하다 말고 갑자기 레고 이야길 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아무도 레고 이야길 하지 않았는데, 뜬금없이 "레고 혼자 가기 너무 싫어요. 엄마랑 같이 가면 좋겠어요." 하면서 밥을 먹다 우는 거였다. 그리고 밤에 자다가도 갑자기 깨더니 "내일 레고 혼자 가기 싫어요." 하면서 펑펑 울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잠꼬대인 건지, 아니면 실제상황인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아직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무리였던 것일까?'
원장선생님 말씀으로는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하셨으니, 가서는 잘 놀았다는 이야기인데,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건지... 계속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가능하면 아이의 기질을 존중하며 키우되, 당연히 해야 할 일에 있어서는 예외를 뒀었다. 그러니 지금은 "예외상황"인 거다. 그런데 아이가 힘들어하니,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나? 아직은 좀 이른 상태였나?' 하는 생각이 들어 밤새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이제 다섯 살이라 다른 아이들처럼 친구도 사귀고, 엄마가 가르쳐줄 수 없는 것들, 공부가 아닌 삶을 살아가는 방식들을 배우러 가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아이도 나도 이 시기를 잘 견뎌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들, 우리 이 시기를 잘 이겨내 보자."
생후 39개월을 며칠 앞둔 2월 마지막 밤, 참 마음이 힘들었던 기억과 기록이 남아 있다.
아이의 어린이집 선택과 더불어 나에게도 선택의 시간이 돌아왔다.
논문을 마무리하고 제출한 후 벌써 한 학기가 흘러버려, 나의 경력에 대한 고민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육아"와 "경력" 두 가지를 모두 놓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선택의 범위가 제한적이었지만, 연구소 위주로 몇 군데 원서를 냈고, 한 곳에서 1년 후 정규직 전환 조건의 위촉연구원 자리를 제안받았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을 위해서는 위촉연구원으로 일하는 1년 동안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고 해, 그 자리를 놓고 며칠째 고민을 했다.
그런데, 아이가 어른들끼리 하는 이야길 들은 건지, 잠자리에 누워 책을 읽어주는데,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엄마, OO이는 엄마가 OO이 옆에 많이 많이 있으면 좋겠어요. OO이는 엄마가 돈 안 벌어와도 좋아요."
그 순간, 엄마를 필요로 하는 아이의 마음이 너무 잘 전달되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 내게도 아이가 안정되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것이 큰 행복인 것 맞는데, 지금 여기서 관두면 경력 단절이 되는 건 너무 자명한 일이라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아이를 택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