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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2-4 [연작시] 눈의 시체

'크리스마스의 악몽' 프로젝트

by 오로지오롯이


'크리스마스의 악몽' - 연작시 네 번째



눈의 시체


누군지 모를 장갑 낀 손들이 나를 빚는다

차가운 눈송이가 겹겹이 쌓이고

그들이 웃을 때마다

입안에서 하얀 김이 부서져 나온다

그때 나는 나를 의식하기 시작한다


아스팔트 부스러기를 눈동자라 부르고

부러진 당근 조각을 코로 세운다

가장자리의 가지를 잘라

웃음 모양을 만들어 붙인다

그 웃음은 붙이는 순간부터 녹기 시작한다


햇살은 이마에 가장 먼저 닿는다

얼음 속의 공기가 마른 피처럼 갈라지고

빛은 균열을 따라 스며든다

사라짐은 그렇게 언제나 조용하게 시작된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사진을 찍고

짧은 웃음소리를 남기고 떠난다

눈 위의 발자국이 많아질 수록

그 온도가 나를 무너뜨린다

내가 사라질 때쯤

그들은 이미 집 안에 있다

눈의 흔적 따위는 기억되지 않는다


물이 천천히 땅으로 스며들고

돌 눈동자는 움푹 팬 자리만 남긴다

입은 사라지고, 코는 부러져

흐릿한 얼룩만 바닥에 남는다

그렇게 내 자리는,

젖은 흙과 섞여 더럽혀진

나를 꾸며낸 찌꺼기 조각으로 남는다


누구도 그것이 시체였다고 말하지 않는다

선의로 만들어졌고, 선의로 버려졌으니까

나는 기억이 아니다

크리스마스라는 단 하루를 보낸 짧은 그림자일 뿐

축제는 나 없이도 계속된다


이제 곧 내 잔해가

또 다른 눈의 형체로 빚어질 차례다

그렇다면

나는 몇 번이나 태어나고

몇 번이나 사라졌단 말인가





* 연작시 해설


눈사람은 축제의 가장 순수한 상징 중 하나다. 아이들이 손으로 쌓고, 웃음을 붙이고, 함께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 가지 않는다. 따뜻함은 곧 녹음이고, 선의는 곧 소멸이다. 햇살이 이마에 닿는 순간 균열은 시작되고,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는 젖은 얼룩만 남는다. 누구도 그것이 시체였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애초에 기억될 대상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를 통해 선의라는 말의 가벼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축제를 구성하는 많은 것들이 아름다운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그만큼 쉽게 잊힌다. 잊히는 것이 숙명이 된 존재들, 그들을 나는 눈사람의 몸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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