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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Jan 16. 2020

모두가 기분 나쁜 대답, “일단” 알겠습니다.

상대방이 어떤 일을 확인하거나 물어보는 경우, 다행히 내가 그 일을 잘 알고 있거나, 혹은 상황이 모두 종료되어 결과에 대해 확실한 일일 경우는  서로가 만족하여 대화를 마무리 지을 수가 있다. 문제는 그렇지 못한 경우이다. 나에게 물어봤지만 내가 잘 모르는 일이거나, 혹은 내 담당은 맞지만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아 정확히 대답할 수 없는 경우 말이다. 이러한 경우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최대한 성실하게 답변을 하거나, 혹은 현재까지 만의 진행상황을 얘기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물어온 상대방도 속이 시원하지가 않다. 정확한 답변을 듣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찾거나, 혹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물어봐야 하기 때문이리라. 여기까지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 누구도 기분이 딱히 나쁘지는 않다.


문제는 마무리하는 말이다. “알겠다”라고 하면 그만이고, “다음에 다시 연락하겠다”, 혹은 “담당자에게 물어보겠다”라고 하면 그만일 것을. 꼭 앞에 두 글자가 더해져야 속이 시원했을까. “ ‘일단’ 알겠다”라는 대답을 듣고야 만다. “일단”=“대답에 만족하지 못한다, 대답이 속 시원하지가 않다, 다시 연락이 필요하다” 정도의 느낌으로 말하는 입에서는 나왔을지 모르겠으나 듣는 입장에서는 “너는 그것도 모르냐, 내가 나중에 또 연락을 하게 만드냐, 너랑 얘기해봤자 아무 소득도 없네” 등의 뉘앙스로 느껴지고야 만다. 일단 알겠다? 그럼 이단은 뭐야, 다음은 뭐야, 내가 뭘 잘못했나? 이렇게 느껴져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심지어 경제적이지도 못하다. “알겠다”라고만 하면 3글자만 입에서 나오면 될 것을 굳이 “일단 알겠다”라고 발음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 입도 더 고생이다.


“알겠다”라고 했을 때와 “일단 알겠다”라고 말했을 때 차이는 있는 것인가? “알겠다”라고만 하면 상대방이 더 이상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일까? 반대로 “일단 알겠다”라고 하면 알아보지 않으려던 사람이 더 적극적으로 알아보게 되는 것일까? 오히려 반대일 것이다. 일을 더 알아보고 연락을 해야지 했던 사람은  “일단 알겠다”라는 대답을 통해 빈정이 상해 앞으로 이 사람과 연락을 할 상황이 없기만 바라게  될 뿐이다. 그렇다고 물어보는 입장에서 반드시 확인이 필요할 일이었다면 또다시 안 할 수가 없다. “알겠다”라고 대답하든 “일단 알겠다”라고 대답을 하든 물어볼 일이라면 또다시 물어봐야 되고, 확인해야 될 일이라면 또다시 확인할 수밖에 없다.


일의 처리가 어차피 똑같이 이루어진다면 기분이라도 좋아야 한다. “일단 알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기분은 어떤가. “나는 지금 만족하지 못한다”, “네가 이렇게밖에 대답하지 못하는 게 썩 마음에 들진 않는다”, “지금 너랑 더 얘기해봤자 나에게 별 소득이 없을 것 같다” 등의 여러 가지 감정을 함축적으로 상대방에게 표현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왜 이걸 모르지? 왜 대답이 그 정도밖에 안되지?”라 고 화를 내기에는 용기가 부족하다. “일단”이라는 말로 이 상황이 만족스럽지 못함을 표현한 것이다. 직접적으로 핀잔을 못주어 속 시원하지도 않다. 듣는 사람 입장은 어떠한가. 기분이 찝찝하다. 기분이 나쁘다. 핀잔을 들은 것 같고, 무시를 당한 것 같다. 기분이 별로다. 둘 중 하나라도 속 시원하고 둘 중 하나라도 기분이 그럭저럭 괜찮다면 썩 나쁘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둘 다 찝찝하고 둘 다 시원하지 못하고 둘 다 기분이 묘해진다. 감정상으로도 소득이 없다.


결과적으로  “일단”이라는 말은 그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고,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말이 너무 적은 것도 때론 문제가 있지만 대부분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불필요한 말이 덧붙여져서, 말이 길어져서일 때이다. “알겠다”라고 세 글자만 말하면 충분할 것을 “일단 알겠다”라고 말이 길어져버려서 결국 문제가 생기고야 마는 것이다. 어차피 해야 될 일이고, 어차피 다시 물어봐야 될 일이라면 그냥 “알겠다”로 마무리하는 것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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