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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Jan 16. 2020

팀장님 안 계신가요?

팀장님을 찾는 전화가 왔다. 그런데 팀장님은 회의를 하러 가셔서 안 계신다.  그래서 내가 전화를 당겨 받았다. 그러자 상대방이 “팀장님 계신가요?”라고 물어본다. 팀장님이 계시냐고 물어봤기 때문에 “팀장님은 회의를 가셨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팀장님을 찾는 전화가 왔다. 그런데 팀장님이 화장실에 가셔서 안 계신다.  그래서 또 내가 전화를 당겨 받았다. 그러자 상대방은 “팀장님 안 계신가요?”라고 물어본다. “안 계시니 제가 받았지요”라고 말이 튀어나와버렸다. “계시면 제가 받았겠습니까?”라는 말도 하려다가 꾹 참았다. 팀장님은 왜 이렇게 자리에 없으신 경우가 많으며, 왜 하필 또 팀장님 안 계실 때 팀장님을 찾는 사람은 왜 이리 많은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팀장님 계신가요?”라고 물어보는 것은 긍정적 의문문이며  “팀장님 안 계신가요?”라고 물어보는 것은 부정적 의문문이다. 긍정적 의미의 의문에 긍정적으로 대답이 나오고, 부정적 의미의 의문문에 부정적인 대답이 나와버렸다. 팀장님이 계셔도 전화를 못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기에, 전화를 건 목적은 팀장님과 대화를 원하는 것이기에 긍정적으로 물어보는 사람은 전화를 건 목적 자체에 충실하게 팀장님이 계시냐고 물어봤을 것이다. 반면 부정적으로 물어본 사람은 팀장님에게 전화를 했지만 팀장님이 전화를 받지 않았기에 팀장님 안 계시냐라고 물어봤을 것이다.


부정적으로 물어본 사람 자체가 부정적인 사람은 아닐 것이며, 긍정적으로 물어본 사람이 매사에 긍정적일 리는 없다. 다만 부정적 의문문에는 부정적 대답이 나갈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팀장님 안 계십니까?”라는 물음에는 “안 계십니다”라는 대답이,“팀장님 계십니까?”라는 물음에는 “회의를 하러 가셨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더 나아가, “팀장님 안 계십니까?”라는 물음에 “안 계십니다”라는 대답을 했더니, “그럼 어디 갔습니까?”라는 추가 질문이 돌아오게 된다.  “언제 옵니까?”라는 플러스알파의 질문과 함께 말이다. 물론 마음의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 바쁘지 않은 상황에서 “팀장님 안 계십니까?”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추가 질문이 돌아오기 전에 “이러저러해서 안 계시고 오후에 돌아오실 예정입니다”라고 대답을 할 수도 있겠지만, 바쁜 가운데, 여유가 없는 가운데 “안 계십니까?”라는 질문에는 “안 계십니다”라고만 대답하면 그만인 것이다. 어디 갔냐, 언제 오냐라는 추가 질문은 귀찮게만 느껴지기 마련이다.


“팀장님 계십니까?”라는 질문에 “안 계십니다”라고만 대답을 하는 경우도 물론 있다. 그러나 상대방은 팀장님이 전화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팀장님이 지금 당장 자리에 없다는 점 정도는 인식을 하고 있으므로 지금 당장 팀장님이 자리에 있냐 없냐라는 차원을 넘어, 팀장님의 행방을 물어보기 위해 “팀장님 계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진 것일 가능성이 많다. 그렇기에 질문의 의도가 어느 정도 느껴지므로 대답도 계시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자연스럽게 설명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매사에 적극적으로 부정적인 사람은 “팀장님 계십니까?”라는 질문에 “계시면 내가 받았겠니?”라고 응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부정적인 사람이 부정적으로만 물어보고 부정적으로만 대답을 하지는 않는다. 또한 긍정적인 사람이 긍정적으로만 물어보고 긍정적으로만 대답을 하지도 않는다. 긍정적 물음이냐, 부정적 물음이냐는 물어보는 사람 그 자체만의 성향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의 반응을 어떻게 예상하느냐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긍정적인 대답을 듣고 싶다면 긍정적으로 질문을, 부정적인 대답을 듣고 싶다면 부정적인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팀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팀장님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팀장님이 부재중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알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대답을 듣기 위해서 “팀장님 계신가요”라고 물어보는 게 조금 버거운 경우가 있다. 매사에 적극적으로 긍정적인 사람이 아닌 경우에 말이다. 그렇다면 부정적 질문을 통해서 긍정적 대답을 끌어낼 수는 없을까. 나 같은 경우는 “팀장님이 안 계신가 봅니다?”라고 물어본다. 팀장님이 전화를 안 받았기에 안 계실 확률이 99%에 달한다라는 건 자명하다. 그렇기에 내가 팀장님이 안 계시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라는 점을 상대방에게 주지시키는 것과 동시에,

왜 안 계시는지 궁금하다라는 질문을 내포하여 물어본 것이다. 이럴 경우 대부분 상대방은 “이러저러해서 안 계십니다”라는 대답을 하게 된다.


“팀장님 안 계십니까?”와 “팀장님이 안 계신가 봅니다?”라는 질문. 같은 의미의 질문인 거 같은데, 듣는 사람이 느끼는 바는 조금 다르다는 걸 느낀다. 없다라는 부정적 의미를 없는 사실이 맞느냐라는 긍정적 질문으로 순화하였기 때문이다. 정확한 의미 전달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반응을 긍정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표현의 차이 정도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긍정적으로 물어보는 사람에게 부정적으로 대답하는 경우도 있고, 부정적으로 물어보는 사람에게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질문이냐보다는 사실 어떤 질문이었느냐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상대방의 반응에 의해 추후 결과에 의해 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표현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반응이 다르다면,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긍정적으로 표현해보면 어떨까. 말 한마디가 천냥 빚 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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