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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Jan 16. 2020

바쁘냐고 물어봤을 때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동료가 바쁘냐고 물어볼 때가 있다.
말을 붙이기 위한 인사치레일 수도 있고, 내 상황을 누군가로부터 전해 듣고 걱정되는 마음에 물어본 것일 수도 있으며,
바빠 보이지 않는데 왜 바쁜 척을 하고 있냐는 핀잔일 수도 있다.

어쨌든 물어봤으니 대답을 해야 된다.
바쁘다고 할 수도 있고, 바빠서 죽겠다고 할 수도 있으며, 혹은 바쁘지 않다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1. 바쁘다고, 혹은 바빠서 죽겠다고 대답을 해 보았다.
무슨 일이 많아서 바쁘냐고 다시 물어볼 수도 있고, 안 바쁘면서 왜 바쁘냐고 하냐고 핀잔을 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1-1. 무슨 일이 많아서 바쁘냐고 물어봤을 때, 이러저러한 일로 바쁘다고 설명을 했다.

1-1-1. 다행히 상황설명이 잘 되어서 내가 진짜 바쁜 상황임을 이해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 상대방은 측은한 마음을 가졌으며, 걱정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상대방이 실질적으로 나의 바쁨을 해결해주기는 어려웠다.
그 결과, 나는 바쁘다는 사실을 인지시킬 수 있었을지는 모르나, 안 그래도 바쁜데 상황 설명하느라 더 바빠졌고
상대방 또한 바쁜 사람 붙잡고 상황설명을 시키게 되어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1-1-2. 상황설명이 잘 안되어 내가 바쁜 상황임을 이해시킬 수 없었다.
이에 상대방은 무슨 일인지도 잘 모르겠고, 괜스레 내가 바쁜 척만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내가 바쁘다는 사실을 인지시킬 수 없어 나는 답답해졌고, 상대방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상대방 역시 답답해졌다.
나도 싫어졌고, 상대방 역시 불편해졌다.

1-2. 안 바쁘면서 왜 바쁘냐고 핀잔을 들어서, 내가 왜 바쁜지 설명을 했다.

1-2-1. 다행히 나의 설명이 효과가 이써, 상대방은 나의 상황을 이해해주지 못했다고 미안해했다.
그 결과 나는 상황설명은 되었을지 모르나, 안 그래도 바쁜데 상황설명까지 하느라 더 바빠졌고, 상대방 역시 핀잔을 준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나는 상황 설명하느라 더 바빠졌고, 상대방도 불편해졌다.

1-2-2. 나의 상황에 대해 설명을 했으나 상대방을 전혀 이해시킬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바쁜데 상황 설명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였고, 심지어 상대방은 이해도 하지 못해 엄살떨지 말라는 더욱더 강도 높은 핀잔을 주었다.
나도 싫어졌고, 상대방은 핀잔에 더욱 열을 올리게 되었다.

2. 바쁘지 않다라고 대답을 해 보았다.
진짜 안 바쁘냐고 다시 물어볼 수도 있고, 바쁘지 않다고 대답했기에 안 바쁘구나라고 인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2-1. 진짜 안 바쁘냐고 다시 물어봤을 때,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정말 안 바쁘다고 대답하고 굳이 상황설명은 하지 않았다.

2- 1-1. 최근 우리 부서의 업무에 대해 들었기 때문에 상대방은 내가 바쁠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러저러한 일을 하고 있다고 최근 들었으며, 바쁠 거라고 생각이 든다고 말을 들었다.
굳이 내가 상황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상대방은 나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여 바쁠 것 같다며 위로를 해 주었다.
어차피 나의 일을 상대방이 도와줄 수는 없긴 하지만, 별다른 노력 없이 위로를 받는 소기의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2-2-2. 바쁘지 않다고 다시 대답을 하자 상대방은 의아해하며 바쁘지 않다라고 하니 그럼 진짜 안 바쁜가 보네라고 하였다.
상황 설명하는데 드는 시간은 아낄 수 있었고, 상대방 역시 나에게 말을 건 것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나도, 상대방도 크게 손해 볼 것도 없었고, 불편할 일도 없었다.

2-2. 내가 안 바쁘다고 대답을 했기에 상대방은 바로 본론을 이어갔다.

2-2-1. 나의 상황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고, 상대방도 나에게 말을 건 이유에 대해 바로 얘기할 수 있었기에
나도, 상대방도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사실 내 상황을 설명하고픈 마음이 없진 않았으나, 내 상황을 설명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말을 걸었던 이유가 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바쁘다고 말해봤자 나와 상대방의 상황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고, 해야 할 일을 안 할 수도 없었으며,
상대방이 나에게 하려고 했던 부탁, 요청, 질문 등을 안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나 절약했으니 그걸로 다행이다.

2-2-2. 사실 바쁜데 또 상대방이 나에게 부탁을 하는 게 부담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상대방 둘 다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보다 차라리 나만 마음이 불편한 게 나을 것 같았다.
알아줄지 영영 모를지 모르겠으나, 나는 상대방이 나에게 부탁을 하는 것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배려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 어차피 바쁜 세상 모두가 힘든 것보다 한 명이라도 덜 힘든 게 낫겠다 싶다.

바쁘다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도 대답해보고 저렇게도 대답해보았다.
여러 가지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바쁘다고 대답한들 내 일을 상대방이 도와주기는 힘들 것이며,
바쁘지 않다라고 대답한들 바쁜 상황이 안 바빠지지도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나의 “바쁘다” 혹은 “바쁘지 않다”라는 말 한마디로 인해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즉 뭐라고 대답하든 사실 내가 바쁘다는 건 자명한 사실인 것이다.
그럴 바에, 어차피 바쁠 바에, 바쁜 사람이 바쁜 게 낫고, 안 바쁜 사람까지 바쁜 사람 때문에 불편해지는 상황은 안 만드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바쁘다라고 대답하자, 상대방이 이해를 하든 이해를 못하든 나도, 상대방도 불편해졌다.
바쁘지 않다라고 대답하자, 상대방이 오히려 나를 이해해 주거나, 이해해주지 못하더라도 최소 상대방은 덜 불편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기에 나의 대답에 따라 상대방은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결국 내가 가장 마음이 편했던 경우는 “바쁘지 않다”라고 대답을 했을 때이다.
최소 상대방은 불편하지 않게 만들었으며, 혹은 설명을 하지 않았음에도 나를 위로해주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바쁘다고 열심히 설명하고 설득해서 상대방이 나를 위로하게 만드는 것과,
내가 아무 말하지 않았음에도 상대방이 나를 위로하는 상황은 “위로받는다”라는 결과에서는 동일할 수 있겠으나, 느낌이 전혀 다르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말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내 상황을 알아주고 나를 위로해주는 상황. 모두가 바라는 상황이 아니겠는가.
이에 사실 내가 가장 바라는 바는 2-1-1의 상황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안 바쁘다고 말했더니 진짜 안 바쁜 줄 아는 상황이 벌어졌더라도
바쁘다라고 말하고 열심히 상황을 설명하는 것보다는 덜 번거롭고 마음이 덜 불편했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바쁘냐고 물어봤을 때 나는 안 바쁘다라고 대답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안 바쁘다라고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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