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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Jan 18. 2020

또 휴가야??

다른 부서에서 동료를 찾는 전화가 왔다. 동료가 휴가를 내고 회사에 출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대신 받았다. 동료가 휴가 중이라고 말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걘 또 휴가야?”였다. 예전에도 휴가 중일 때 전화를 한 적이 있었나?라는 의문이 듦과 동시에 휴가를 내는 일은 잘못한 일인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개인 사정을 살펴야 하는 일이 많다.  집을 옮겨야 하는 문제,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을 가야 하는 문제, 아이가 어려서 자주 아파 병원을 데려가야 하는 문제, 부모님 건강이 좋지 못해 보살펴야 하는 문제 등등. 그래서 유난히 휴가를 써야 할 생황이 있고, 또 그러한 사정이 유난히 많아 자주 휴가를 내는 사람이 있다. 조직생활을 함에 있어 조직에 피해를 끼치면 물론 안 되겠지만, 공산주의 사회도 아니고 개인보다 전체를 무조건 우선시해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회사생활을 열심히 함과 동시에 개인의 삶도 돌봐야 하고 존중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워라밸이라는 말이 왜 생겼겠는가.


아무튼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 개인에게 주어진 휴가를 조직생활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활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 차원을 떠나 어찌 보면 당연하게까지 여겨질 수 있는 부분이다. 개인의 삶이 안정되었을 때, 회사 업무에 집중을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걘 또 휴가야?”라는 반응은 왜 나와야 되는 것일까. 분명히 긍정적인 반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첫 번째로 지금 내가 확인해야 할 일이 있는데 확인해줄 수 있는 동료가 없어서 내 업무에 차질이 생길 것 같다라는 측면이다. 내가 필요할 때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지금 나는 놀랍고 기분이 좋지 않다라는 감정의 발현이리라. 다행히 다른 동료가 해당 건에 대해 알고 있거나 응대가 가능하다면 다행이겠으나, 최소한의 인원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야만 하는 회사에서 한 가지 업무를 두 세 사람에게 맡기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대부분 담당자가 없으면 응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해는 간다. 당장 확인해야 하고 처리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당혹감에서 뱉어버린 말이라는 점을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다. 그런데 찝찝하다. 기분이 묘하다. “오늘 휴가야?” 정도로만 답변이 왔으면 이렇게 찝찝하진 않다. “또” 휴가야라는 말은 아무리 곱씹어보아도 긍정적인 반응은 아닌 거 같다.


더욱더 중요한 두 번째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언제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저번에 찾았을 때도 휴가를 냈다고 들었었는데 이번에 또 휴가를 냈다는 사실에 이해가 가지 않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는 측면이다. 반응을 더욱더 업그레이드시키는 사람도 있다. “걔는 또 휴가야? 맨날 휴가야?”. “맨날 휴가를 낼 리가 있습니까. 1년이 365일인데 그럼 365일 휴가를 내고 있다고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라고 대답하고픈 반응이다. 개인의 사정이 있기에, 휴가를 낸 당사자 입장에서는 휴가 중에 발생할 일을 최대한으로 예상해서 무리가 가지 않게 마무리해놓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돌발적인 요청사항이 생기는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개인 사정이 있는 것도, 휴가를 낸 것도, 본인을 찾는 전화를 받지 못한 것도 전혀 문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정적인 반응이 나와야 하는 것일까. 이 정도 되면 상대방이 일처리를 하지 못해서라기보다는 그냥 동료가 휴가를 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지금 맘에 안 든다라고 생각될 수밖에 없다.


그럼 상대방은 뭐가 그렇게 맘에 안 드는 것일까. 동료가 휴가를 냈다는 사실에 마음에 너무나도 큰 상처를 받아 속상한 마음에 “또 휴가야?”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혹은 동료가 휴가를 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분노를 이기지 못해 “또 휴가야?”라는 말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화를 참을 수 없어서 그렇게 말을 한 것일까. 그 마음속을 조금 들여다본다면 그런 이유는 아닐 것임을 깨닫게 된다. 동료가 휴가를 갔다는 그 사실 자체가 아니라, 나는 여기서 이렇게 일하고 있는데 동료가 휴가를 냈다는 사실. 그게 바로 빈정거림의 진정한 이유가 아닐까. 한 단계 더 나아가, 나도 휴가를 쓰고 싶지만 못 쓰고 있는데 동료가 휴가를 썼다는 사실이 빈정거림의 진정한 이유가 아닐까.


누군가가 그렇게 얘기하더라.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고.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면 공평한 것 같은데, 혹은 너도 휴가를 쓰고 나도 휴가를 쓰면 공평한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배 아픈 것이다. 동료가 휴가를 내서 회사에 없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는 내가 휴가를 쓰지 못했다는 사실에 배가 아파지고 마음에 배배꼬임이 발생하고 마는 것이다. 상대방의 상황에서 발생한 문제인 것 같지만, 사실 내 상황에서 발생한 문제인 것이다.


정직해져야겠다. 내가 이루지 못한 상황을 상대방이 이루었다고 비난할 일도 아니고 마음 상해할 일이 아니다. 내가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면 된다. “걘 또 휴가야?”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나도 휴가를 내면 된다. 아무 죄 없는 상대방에 대한 비난보다는, 내 상황을 좀 더 개선해보려는 노력이 나에게는 훨씬 더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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