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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Mar 30. 2020

맡기든가, 직접 하든가

회사에서 주최하는 음악회를 준비하게 되었다. 가수도 초청을 하였고, 연주자들도 초청을 하여 무대를 다채롭게 구성하였다. 빈자리가 없을 만큼 관객석도 꽉 차서 음악회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고생해준 출연자분들과 다과를 나누며 감사하다고, 너무 좋은 무대였다고 칭찬과 격려가 오가는 도중 내 눈과 귀를 의심하게 하는 상황이 발생되고야 말았다. 늘 나의 좋은 글감이 되어 주시는 대상인 윗분께서  직업 가수분에게 어드바이스를 하는 보고도 믿지 못할 장면이 내 눈 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졌다. “그 노래는 말이야, 이렇게 불렀어야 돼”, “곡의 구성을 좀 다르게 했었어야 돼” 등의 훈계인지 덕담인지 충고인지 모를 말들을 뱉어내고 계셨다. 그분께 혹시 회사 입사하기 전에 가수 활동을 하신 적이 있으셨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내가 알기로 그분은 30년 전에 회사에 입사해서 줄곧 같은 일을 하고 계시는 분이었다. 듣는 가수분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을 꾹 참지 않았을까? “그렇게 잘하시면 직접 노래하시지 그러셨어요?”


일을 함에 있어 자주 일어나는 갈등의 원인은 바로 “어설픈 훈장질”이 아닐까. 회사일이든 친목을 도모하는 일이든 어떠한 일이든지 담당자, 주무가 있기 마련이다. 역할에 따라서, 혹은 업무분장에 따라서 스스로 주도권을 가지고 일을 추진해나가는 사람이 있다. 왜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 일에 있어서 다른 사람보다 조금 낫거나, 혹은 조직에서 그 일을 하게끔 맡겨졌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생기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볼 일이 생기거나 하면 조언을 구해야 할 때가 물론 있다. 그러나 의견을 들을 상황이 아니고, 조언을 구해야 할 때도 아닌데 비자발적으로 조언을 넘어선 충고와 지시가 내려진다면 불편한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30년간 회사에서 근무한 회사원이 직업 가수에게 “노래”에 대해 조언을 하는 일은 도대체 왜 벌어져야 하는지 의문일 수밖에 없고, 불편한 상황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담당자는 아니지만, 담당자가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도움을 주고 싶어서 선한 마음으로 조언을 해주고 싶은 경우는 당연히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담당자가 모든 일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은 이상 추진하고자 하는 일에 있어서 상급자의 검토를 받는 일 또한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 본격적으로 갈등이 유발되는 상황은 그런 사람, 그런 상황이 아닌데 마치 타인이 얘기하는 대로 하라고 명령과 지시조의 말을 듣게 되는 순간이다. 안 그래도 바쁘고 고민이 많은 상황에서 나만큼 고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간섭”하는 상황을 좋아하는 사람은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다. 조언이 아니라 간섭이다. 조언은 달갑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간섭은, 어설픈 훈장질은 사양하고 싶은 게 모두의 마음이다.


담당자가 하는 일이 정말 본인이 더 잘 알고, 본인이 더 하고 싶은 일이라면 직접 하면 된다. 맡은 역할을 바꾸고, 업무분장을 변경하는 등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다. 그런데 내가 직접 하기는 싫고, 다른 사람이 하는 일에 간섭은 하고 싶고. 그게 문제 아니겠는가. 입으로는 누가 못하겠는가. 고민과 생각 없이 어설프게 훈수 두는 일이 무엇이 도움이 되고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둘 중 하나만 하는 게 도움이 된다. 맡기든가, 직접 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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