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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Apr 06. 2020

이름 좀 얘기해주시면 안 될까요.

“감사합니다. 상생협력부 이종건입니다”.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하는 말이다. 이름을 말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상대방이 나와 통화하기 위해 전화를 했을 경우, 당신은 지금 전화를 제대로 걸었습니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하고 싶은데 나한테 한 것이라면 당신은 지금 전화를 잘못 걸었습니다라고 알려주기 위함이다. 물론 입사 후 전화받는 법에 대해 교육을 받을 때에도 그렇게 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배우기도 했다. 앞에 “감사합니다”를 붙이는 것은 말을 시작하기 위한 상투적인 표현이고. (전화를 끊을 때도 “감사합니다”라고 하고 끊는다. 이는 서로 간에 할 말 끝난 거 같으니 이제 통화를 끝냅시다라는 의미로.)


회사에서 전화통화를 통해 업무를 진행하는 일이 굉장히 많다. 일을 진행함에 있어 가장 정확하고 오해가 없는 방법은 직접 만나서 차근차근히, 자세히 일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이겠지만, 수많은 사람을 정해진 시간에 만나서 모든 일을 진행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시시콜콜한, 때로는 중차대한 문제까지도 전화를 통해서 협의를 하고 서로 간의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업무시간에 전화를 걸고 받는 일은 일상화되어 있으며, 이렇게 일상화되어 있는 과정 중 처음 전화를 받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사람마다의 차이가 드러난다.


전화를 받고 본인을 소개하는 멘트가 바로 그 차이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상투어+소속+성명+직위”형, “상투어+소속+성명”형(나의 경우), “소속”형 등등 수많은 케이스로 각자의 개성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나만이 가진 특성과 개성을 강조하고 드러내는 것은 요즘 같은 시대에 있어서는 흠이 아니라 장려할 만한 일이다. 모두가 동일한 사고를 가져야 하고, 튀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미덕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말이다. 개성을 드러내서 좋은 분야가 있고,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될법한 분야가 있다. 회사 전화를 받을 때 받은 사람 본인의 이름을 얘기하고 안하고의 문제는 개성의 영역이라기보다는 기본 예의의 영역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목소리”라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뚜렷한 개성을 모두가 가지고 있다. 그런데 친하고 익숙한 사람이 아닌 이상 전화상으로 목소리만 듣고 이 사람이 내가 통화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 맞는지는 곧바로 판별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전화를 건 입장에서는  통화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 맞는지 아닌지 한번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곤란한 일도 아니다. 누구누구씨 맞냐고 한마디만 물어보면 된다. 그런데 번거로운 일이다. 불필요한 일일 수 있다. 또한 내가 당신 목소리만 듣고서는 당신이 맞는지 아닌지 확신이 안 선다라고 실토하는 일일 수 있다. 차라리 다른 사람이었으면 다행이다. 당사자에게 당사자가 맞냐고 물어보는 일은 썩 즐거운 일은 아니다. 전화를 받는 사람도 어떨 때는 서운한 일일 수도 있다. 내 목소리를 너는 모르는 구나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큰 생각 없이, 큰 감정의 소모 없이 이름 얘기해주고 다음 대화를 진행해나갈 것이다. 그런데 내가 누구인지 미리 말했으면 혹시 모를, 100번의 1번에 있을까 말까 한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심지어 부서, 이름 모조리 생략하고 회사 이름만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마치 루이 14세 같다. “짐이 곧 국가다”. “내가 바로 회사다”.(*주체적으로 일을 하고 싶다는 글(상사가 원하는 것, ’20.2.17)에서는 내가 회사를 대표하는 존재이고 싶다라고 글을 썼었지만, 이 경우는 소위 결이 좀 다른 의미이다. 내가 회사를 대표할 만큼 주체적이고 자존감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는 심리에서 발현된 말이 아닌, 그냥 내 이름을 말하기 귀찮아서 그렇게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통상 전화통화를 할 때면 전화를 건 쪽이 아니라 받은 쪽에서 말을 시작하기 마련이다. “여보세요” 이든 “통신보안”이든 “감사합니다”든 말이다. 그렇기에 시작에 대한 주도권은 받는 쪽이 가지기 마련인데 주도권을 가진 쪽에서 자신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다면 전화를 건 사람, “시작”이라는 주도권을 가지지 못한 쪽에서는 조금 멈칫하게 되고 머뭇거리게 된다. 전화를 제대로 한 것이 맞는지, 내가 전화를 잘못한 건 아닌지 하는 등등 잠시 잠깐의 머뭇거림 말이다.


이름을 얘기 안 한다고 해서 예의가 없는 사람이라고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각자의 생각과 각자의 개성이 있을 수 있다. 개인의 자유와 생각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그 이면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생각들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전화받을 때 이름을 얘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크나큰 문제가 발생하거나 일이 그릇되지는 않겠지만, 이름을 얘기하는 것이 서로 간에 훨씬 편안하고 무리 없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한 번쯤은 생각해볼 만한 문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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