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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휘 Jul 10. 2020

아스팔트의 뜨거움을 느끼다

첫 대도시, 팜플로나

산티아고 순례길 3일 차, 다시 팜플로나로.


오늘은 수비리에서 팜플로나에 왔다. 팜플로나에서 버스를 타고 생장에 갔는데, 생장부터 걸어서 또 팜플로나로 온 것이다. 인간이란 얼마나 비효율적인가에 대한 회의가 살짝 들었다.     -2019.06.30 일기


일기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팜플로나에서 생장까지 버스 타고 2시간. 생장부터 팜플로나까지 걸어서 3일. 이 과정을 통해 다시 팜플로나에 오니 감회가 남달랐다. 살짝 현타가 오기도 했다. 인간이란..^^


여하튼 팜플로나는 순례길에서 맞이한 첫 대도시였다. 중국인 마트에서 라면을 사 먹을 수 있는 첫 도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팜플로나에서 2박을 머물기도 한다. 나도 고민했으나, 1박만 하고 떠나기로 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무조건 서울이 좋다며 노래를 불렀었는데, 이상하게 순례길에서는 대도시가 마음에 안 들었다. 소똥 냄새가 나던 시골 마을에 더 정이 갔다.


팜플로나에 갔을 때는 6월 30일, 유명한 축제인 '소몰이 축제' 일주일 전이었다. 나중에 들으니 이때는 알베르게고 숙소고 뭐고 다 마비된다더라. 그래서 축제 기간에는 버스를 타고 이 구간을 패스하거나, 전 마을에서 자거나 해야 한다고 들었다. 나랑 같이 생장 출발했던 언니 일행은 소몰이 축제를 보고 싶다며, 걷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팜플로나로 돌아와 축제를 보고, 다시 버스를 타고 가서 걷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순례길 풍경
도시 팜플로나와 확실히 대비된다

수비리에서 팜플로나로 가는 길은 (처음에만) 쉬웠다. 사실 아침에는 계획했던 것들이 모두 틀어졌다. 첫 마을인 '라라소냐'에 가서 아침과 커피를 마시려고 했는데, 그 마을의 유일한 바가 문을 닫은 거다. 다음 마을까지는 거리가 꽤 됐다. 괜스레 배가 더 꼬르륵거리고 커피가 더더욱 먹고 싶어 졌다. 흑흑..


Closed라고 적혀있는 바 앞에서 절망하고 있으니까, 웬 스페인 아저씨가 다가왔다. "왜 거기서 울상이야?" "바가 문을 닫았는데 배고파요;;" "그럼 이거라도 먹을래?" 그는 친절하게도 바나나와 요거트를 내밀었다. 개이득. 그라시아스!를 두 번 정도 외치고, 아침을 얻어먹었다.


바나나와 요플레를 먹고 2시간 정도 걷다 보니 금방 소화가 됐다. 또 배고파짐. 나무 밑에서 쉬고 있었는데, 한국인 아주머니들을 만났다. 생장에서 마주쳤던, 엄청 잘 걸으시던 분들이었다. 아주머니들은 나를 따라 나무 밑에 앉으시더나, 나한테 주먹밥(!)이랑 삶은 계란을 권해주셨다. 약 4일 동안 빵이랑 맛없는 고기만 먹다가 차진 밥을 먹으니까 진짜... 너무 행복했다. "감사합니다. 너무 맛있어요...ㅠㅠ 주먹밥 너무 맛있어요.." 하고 먹었다. 진짜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이런 풍경들이 그립다

생각해보니 늘 그랬다. 하루 25km씩 걸으려면 체력+정신력이 필요한데, 체력은 꽝이었다. 대신 매일 정신력으로 버텼는데, 그 힘은 바로 사람들에게서 얻었다. 순례길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서 말이다. 배고프면 먹을 것을 줬고(이렇게 말하니까 거지 같다;;ㅋㅋㅋㅋㅋ) 외로우면 말을 걸어줬고 기꺼이 스틱 한쪽을 빌려주고. 정말 가슴 따뜻한 곳이다.


혼자 걸었으면 아마 중도포기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들이 있었기에 계속 걸을 수 있었다. 여기서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지만, 고마운 사람을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봐도 20명이 넘는다. 참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팜플로나 도시 초입

다시 팜플로나 얘기로 돌아오자. 순례길을 걸으면서 지나가는 첫 대도시라 설렜다. 알베르게도 일부러 중국인 마트와 가까운 곳을 골랐다. '가서 라면부터 조져야지 이히히' 이런 생각을 하면서 즐겁게 걸었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는 건 스페인의 강렬한 태양이 뜨겁게 달궈놓은 아스팔트였다. 발에 열이 쉽게 차올랐다. 벤치에 앉아서 신발을 벗어 열을 빼도 세 걸음만 걸으면 다시 뜨거워졌다. 고-통 그 자체.


아스팔트 길만 6km 정도 걸은 것 같다. 도시 입구에 들어가니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문명(?)이다.. 버스 탈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농담 아니고 진심이었다. 그 정도로 바닥이 뜨거웠다. 누가 봐도 순례자인데 버스를 타는 것도 웃겨서 버스 정류장을 뒤로하고 다시 걸었다.


중국 마트. 진짜 진짜 행복했다

알베르게 도착 후, 발이 아픈 것도 잊은 채 바로 중국 마트로 냅다 달렸다. 빛 그 자체였다. 라면, 고추장, 김치... 순례길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한국 음식이었다. 라면을 사서 소중하게 보관했다. 다시 알베르게에 가서 샤워를 한 후 상쾌한 마음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진짜...... 진짜....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라면 하나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있을까. 순례길에 가면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소중해진다. 라면 조아.


저녁은 라볶이

라면을 먹고 일기를 쓰고 낮잠을 자다가, 저녁에는 라볶이를 해 먹었다. 순례길에서의 첫 요리였다. 한국에서 사 먹는 라볶이와는 비교가 안 되지만, 저 순간만큼은 세계 최강 라볶이 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는 한식파다. 어디를 가도 밥이나 매운 음식 없으면 못 산다.


이후에도 알베르게에서 여러 번 요리를 했는데, 조심스럽게 해야 했다. 한국 사람들이 공용 부엌을 점령한다는 비판이 순례길 오픈 채팅방에서 나오기도 했고, 내가 봐도 좀 너무하다 싶은 분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간단한 파스타나 샐러드와 달리, 한국 음식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다 같이 쓰는 냄비, 후라이팬 등을 다 써버리거나 냄비밥을 하고 설거지를 제대로 안 한다거나 등. 같은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워지는 일들도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부엌에 없는 3-4시쯤 미리 밥을 해놓고 저녁 시간에 간단하게 데워 먹거나, 간단한 요리만 해 먹었다. 특히 라면 먹을 때는 진짜 조심해야 한다. 라면 냄새가 이렇게 맵다는 것을 순례길에서 깨달았다. 외국인들이 싫어할 만하다.. 부엌에 창문이 있음, 사람이 없음. 이 두 조건을 갖출 때만 끓여 먹길.


순례길에서는 자신이 한국을 대표할 수도 있다는 걸 까먹지 않았음 좋겠다.


헤밍웨이가 사랑한 카페

팜플로나에 가면 꼭 가봐야 하는 카페가 있다. 바로 카페 이루냐. 헤밍웨이의 단골 카페로 알려져 있다. 그는 팜플로나를 배경으로 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이 카페를 '편안한 카페'라고 표현했다. 해가 질 때쯤 방문해 카페콘레체를 한 잔 했다. 편안한 카페.. 라기보다는, 웅장한 카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테리어와 분위기가 고급졌다. 초라한 순례자 행색을 하고 간 게 부끄러울 정도로.


밤의 팜플로나. 사진이 흔들렸다;;

팜플로나에서의 하루는 이렇게 끝이 났다. 이 날,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아스팔트는 뜨겁다'였다. 난 원래 시골보다 도시를 좋아하는데, 순례길에서만큼은 시골이 더 좋다는 것을 느꼈다. 얼른 흙냄새를 맡으며 걷고 싶다. 배낭에 라면도 3-4개 두둑이 챙겼다.


혹시 다음에 또 순례길을 가게 된다면, 팜플로나 출발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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