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이 되었다. 엄마 없는 삶.
엄마가 없는 집으로 9년째 귀가(歸家)하고 있다. 엄마가 없어도 집은 집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기분은 달랐다. 엄마가 있는 집에 돌아가는 길은 몸과 마음의 짐을 벗어던지러 가는 길이었는데, 엄마가 없는 집으로 귀가하는 건 또 하나의 짐을 짊어지러 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오늘도 또 하나의 짐을 짊어지러 가는 기분으로 귀가(歸家)한다.
난 엄마와 그렇게 각별한 사이가 아니었고,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도 여러 번이었지만, 그래도 엄마는 엄마여서, 나는 아직도 위급한 순간엔 "엄마야!"를 외친다.
지금 엄마를 다시 만난다면, 반갑고 기쁜 마음에 5분 정도 서로 할 말 한 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불편해질 그런 엄마지만, 그래도 엄마는 엄마여서, 나는 아직도 결정적인 순간엔 "엄마!"를 찾는다.
오랜만에 강릉에 다녀왔다.
딱히 엄마가 보고 싶은 건 아니었다. 우리 엄마는 살아있을 때도 칼같이 단호한 사람이었지만, 죽어서도 칼 같은 사람이었다. 9년 동안 단 한 번도 내 꿈에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베개 밑을 뒤져봐라, 50만 원이 나올 것이다'라고 말해주고 가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사람 꿈에 가는 길에 잠깐 들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아니, 50만 원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엄마는, 그저 '잘 있니? 엄마 없이 잘 살고 있니?'라는 식의 그윽한 눈빛이라도 한 번 던져주고 가는 법이 없는 단호한 엄마였다.
엄마는 파랑색을 좋아했다.(참고 <엄마가 좋아했던 것을 좋아하는 기분>) 진파랑의 바다를 좋아했던 엄마. 나랑 아빠랑 주문진으로, 속초로 맛있는 걸 찾아 먹고 다닐 때, 혼자 강릉 모래 바닥에 철푸덕 앉아 몇 시간이고 바다를 바라보던 엄마였다. 바다 앞에서 뭐했냐고 물어보면 엄마는 "바람 쑀지"라고 했다. 무슨 바람을 그렇게 몇 시간씩 쐬냐고 하면 엄마는 "바닷바람이 얼마나 좋았는데."라고 했다. 그 바닷바람을 쐬고 싶었다. 엄마가 좋아했던 바닷바람.
지난 9년 동안 엄마의 날에 늘 강릉을 찾았던 건 아니었다. 집착하듯 이 바다를 고집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홉 번의 엄마의 날을 보내는 동안 산에 가기도 했고 그냥 한 끼 맛있는 밥을 먹기도 했다. 중요한 건 그날을 기억하는 것이었지, 장소가 문제는 아니었다. 그냥 "안녕, 엄마"라고 한 마디 할 수 있는 곳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이번엔 강릉을 고집했다. 꼭 강릉이어야 했다. 이 강릉은 나만의 강릉이 아니므로. 엄마의 강릉이므로.
최근 한 사람을 만나고 있다. 선뜻 강릉에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나에게 강릉이 어떤 곳인지 설명한다고 설명했지만, 충분히 알아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바다가 보고 싶다는 나의 옆에 있어주겠다고 했다.
지난 시간, 어떤 사람을 만나도 그들은 언제든 헤어질 사람이었다.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헤어질 사람. 그게 싫어서 연애가 싫었다. 연애의 뻔한 단계들이 싫었고, 거기에 소비되는 나의 에너지와 감정들이 아까웠다. 어차피 헤어질 거였으니까. 사랑한다는 그 흔한 말도 하지 않았다. 입에 발린 말이라도, 빈말이라도 한 번 하면 안 되냐고 하는 사람 앞에서, 나는 '그런 빈 말'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이 나의 연애에 대해 물어볼 때면 나는 시큰둥했다. 친구들은 "아니, 결혼 안 할 거야?"라고 다시 묻다가 언젠가부터는 나의 연애에 대해 묻지 않았다. "요즘 연애해?" "남자 친구는 어떤 사람이야?" "언제 어떻게 만났어?" 같은 흔한 질문들도 하지 않았다. 그냥 요즘 내가 누굴 만난다고 하면 "응, 그렇구나" 했다.
이 사람은 계속 있을 사람이었다. 이상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다. 처음부터 그냥 왠지 같이 있는 게 당연한 느낌이었다. '처음'이 주는 설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그냥 같이 있는 느낌이 더 강했다. 헤어짐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이었다.
같이 있는 시간은 평온하지만은 않았다. 우린 참 달라서 여기저기에서 계속 부딪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부딪히고 있다.) 그런데 '대체 이게 뭐라고'하는 데서 계속 부딪치면서도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답답함과 피곤함에 하루에도 몇 번씩 울면서도 "아, 됐어, 그만하자"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속상함과 서운함이 난무하는 대화였지만, 아무튼 대화의 마무리는 "그래도 옆에 있어" 그리고 "잘해보고 싶어"였다.
강릉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사람에게. 이 바다를, 아빠의 바다였고(참고 <바람과 별과, 바다와 노래>) 엄마의 바다였던, 우리의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더 나아가, 이 바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 사람을.
바다는 여전했다. 크고 깊은 물. 짙푸르고 검푸른데 울렁이며 빛나는 물. 두 눈으로 한가득 바다를 담고 있다 보면 이 엄청난 바다가 목구멍으로 들어와 내 몸속에 넘실댔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바다의 일부분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잠시 바다가 되었다. 그래, 이 바다였다.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엄마는 잠시 바다의 일부분이 되었을 것이다. 엄마의 바다였다.
바람도 여전했다. 차가운 듯 차지 않은, 거센 듯 거세지 않은 이 바람. 따뜻하진 않아도 내 모든 걸 내맡겨도 될 것 같은 그런 바람. 큰 숨으로 바닷 공기를 들이마시면 어느새 바다 냄새가 내 온몸을 휘감았다. 이때의 감정은 포근함은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무사함이다. 마음이 그냥 툭 내려놓아지는, 다행감 같은. 이 바람에 둘러싸여 있다 보면 주르륵 눈물이 난다. 알 수 없는 눈물이다. 슬퍼서도 아니고 감동적이어서도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담담함이다. 몸의 긴장감이 툭 놓아지는, 안도감 같은.
이 바다, 이 바람이다. 엄마가 하염없이 쐬던 바닷바람. 나는 속삭이며 말했다. "안녕, 엄마."
그 크고 깊은 물 앞에서, 짙푸르고 검푸른데 울렁이며 빛나는 물 앞에서 나는 조용히 엄마를 생각했다. 모래사장에 철푸덕 앉아 잠시나마 바다가 되었던 엄마는, 이제 정말 바다가 되어 나를 안도하게 했다. 나는 바다 앞에서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나를 툭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온 말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한마디 말이 스르륵 흘러나왔다. "잘 부탁해요, 엄마."
엄마는 엄마인가 보다. 끝끝내 친해지지 못한 엄마인데, 이런 순간에 엄마가 생각나는 걸 보면. 나는 요즘 자꾸 엄마가 생각난다. 지금 엄마가 살아있었다면 나에게 어떤 모진 말을 했을까. 아마 내가 예상한 욕과 예상하지 못한 욕들이 뒤엉켜 나를 삼키고 있겠지.
이 사람을 엄마에게 보여주면 엄마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런 여자애 데리고 살려면 어떨지 모르겠네요. 엄마한테 하는 거랑은 달라야 할 텐데. 그래도 지 아빠랑은 죽고 못살았어요. 그대한테도 그래야 할 텐데. 그보다 더 잘하겠죠 물론. 근데 얘가 말이죠, 지가 좋은 건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 또 싫어해서, 지 편한 대로만 하려고 할 텐데... 그거 비위 맞추려면 보통 고생이 아닐 거예요. 미안해요. 이거 한번 고쳐보려고 했는데 잘 안됐네요. 그래도 천성이 나쁜 애는 아니에요. 내가 돌보지 못한 많은 부분을 하나님이 많이 돌봐주셨거든요. 암튼 잘 부탁해요. 나중에 만나게 되면 거하게 밥상이라도 차려줄게요.'
이러려나.
아이고 엄마,
혹시라도 그 사람 꿈에 나타나려거든, (그래도 그러진 않겠지만) 내 욕하지 말아요. 괜히 이러쿵저러쿵 길게 말하지 말아요. 별로 도움 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 같아요. 그냥 '그대가 고생이 많네요'하는 그윽한 눈빛 한번 주고 지나가요. 50만 원 어디 묻어뒀는지나 말해주면 좋고.
그러니까, 잘 부탁해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