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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May 02. 2022

아빠에게


  아빠, 내가 결혼을 했어요.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꾼다는 결혼에 대한 환상이 있다지요. 눈부시도록 화려한 결혼식과 아름다운 웨딩드레스. 그곳에서 신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로 그날의 주인공이 되는 거겠죠. 


  공주가 되고 싶었던 친구들과 달리,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런 환상이 없었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모두가 한 번쯤 입어보고 싶다는 웨딩드레스도 나는 별로 원하지 않았어요. 이 이야기는 예전에도 아빠랑 한번 한 적이 있었죠. 


  나는 결혼식에 대한 로망도 없었어요. 그날의 주인공 같은 건 안되어도 괜찮았어요. 결혼이란, 원래, 좋은 사람 만나서 그 사람과 평생을 잘 살아보자는 약속을 하는 날이니까요. 

  친척들, 선배들, 친구들의 결혼식을 다니면서, 그리고 그들의 준비 과정을 지켜보면서 결혼식에 대한 나의 생각이 맞다는 생각을 더욱 했어요.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다들 너무나 힘들어했고 지치더라고요. 남부럽지 않은 결혼식을 하겠다고 무리해서 진행하다가 많은 문제가 일어나기도 하고요. 둘이 잘 살겠다고 하는 결혼인데, 이게 뭔가 싶었어요. 


  난 좋은 사람만 있으면 나머진 다 필요 없었어요. 그 사람과 꾸려갈 삶이 중요하지, 내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주인공이 되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이런 에피소드를 꿈꿨던 거예요. 좋은 사람과 둘이 장난치고 놀다가 갑자기 마음이 맞아 '오늘 결혼하자!' 하고 가까운 교회에 가서 결혼서약을 하고 결혼을 하는 꿈이요. 다녀와서는 아빠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죠. "아빠, 나 오늘 결혼했어요. 지금 그 사람과 결혼하고 돌아오는 길이예요."


  이 이야기를 아빠에게 했을 때, 아빠가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침묵하던 몇 초를 기억해요. 몇 초 후 아빠는 말했죠. "딸, 그래도, 최소한, 결혼하기 전에는 알려주겠니. '오늘 결혼했어요'라는 말보다는 '오늘 결혼하려고 합니다' 정도로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아빠의 몇 초의 침묵이 어떤 묵직함이었을지, 그리고 결혼하기 전에 알려달라고 한 이 작은 부탁이 어떤 아련함이었는지 그때 난 알지 못했어요. 


  그리고 아빠, 나는, 결국, 내 마음대로 일을 진행하고, 이제 아빠에게 이렇게 말해요. "아빠, 내가 결혼을 했어요." 





  좋은 사람을 만났어요. 내가 그토록 노래를 부르던 좋은 사람 말이에요.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어주고, 나 또한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게 하는 사람이에요. 많은 것들이 다르지만, 또 많은 것들이 같아요. 


  결혼식 없이 결혼하고 싶다는 나의 의견을 그 사람이 존중해줘서 결혼식 없는 결혼을 했어요. 주위 사람들의 "대체 왜 결혼식을 안 해?"라는 귀찮은 질문들을 다 겪어가며 결혼을 준비했어요. 우린 결혼의 날을 정해 그날을 기념하며 여행하고 웨딩촬영을 했어요.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사랑한다는 말을 했어요. 정말 우리끼리 단 둘이 한 결혼이었어요.


  다만 한 가지, 축복받고 싶었어요. 주위 사람들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요. 그래서 안내장을 만들었어요. 청첩장 아니고 결혼 안내장이요. 안내장에는 이렇게 적었어요. "하나님의 은혜로 평생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며 아름답게 살겠습니다. 축복해주세요."

  많은 분들이 축하하고 축복해주셨어요. 여행 가 있는 동안 카페 문을 닫아놓으면서 "결혼합니다. 축하해주세요"라고 붙여 놓았더니, 손님들도 계속 축하해주셨어요.


  축하받고 축복받는 그 모든 순간, 아빠가 떠올랐어요. 누구보다 아빠의 축복이 받고 싶었어요. 아빠가 해주는 축복기도가 너무나 받고 싶었어요. 그제야 지난 시간 아빠의 몇 초의 침묵과 결혼 전에는 알려달라고 한 작은 부탁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어요. 누구보다 간절히 나를 축복하고 싶었던 아빠. 


  나를 향한 아빠의 축복은 늘 발에 걸리적거리도록 흔했는데, 지금은 절실하고 절실하네요. 하늘의 영광과 평화, 천사들의 노래 같은 건 필요 없으니, 그냥 아빠의 한 마디가 듣고 싶어요. 긴 말 안 해도 되는데. 딱 여섯 글자면 되는데. "내 딸, 축복한다" 이거면 되는데. 

 





  4년이 되었네요. 

  아빠 없이 나 혼자, 나는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나 했는데 아빠 없이 4년을 지내고 있어요. 


  그동안 나는 내 맘대로 카페 사장이 되었고, 내 맘대로 결혼을 했어요. 

  내가 카페를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으면 아빠는 '그래, 열심히 해봐'라고 응원했을 것이고, 내가 이 사람과 결혼을 한다고 아빠에게 데려왔으면 누구보다 큰 축복으로 축복했을 텐데, 미리 말하지 못해서, 아빠의 의견을 구하지 못해서, 내 맘대로 해서 미안해요. 나는 늘 이렇게 내 맘대로네요. 


  내 맘대로인, 이런 나를 응원하고 사랑하는 나의 아빠.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저 높은 곳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겠죠. 나를 안쓰럽게 그리고 흐뭇하게 보고 있을 나의 아빠. 내 귀에 들리지는 않아도 가장 큰 소리로 끝없는 축복을 하고 있겠죠. 나는 아빠의 축복으로 오늘도 살아요. 


  보고 싶어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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