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한 Aug 02. 2023

이혼 가정에서 자란 28살 청년의 삶 5

꽤 크고 나서는 아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일이 없어졌었다. 더 이상 가족신문 만들기 숙제도 없었고, 엄마 아빠의 직업과 나이를 조사하는 설문도 꽤나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생이 되어 만난 친구들은 아빠에 대한 얘기는 일절 없는 내게 아빠에 대해 묻는 친구가 없었다. 아빠의 부재에 대한 서러움이

무뎌졌다고 해야 할까


스무 살, 주량을 몰라 주는 대로 다 마시던 시절 어느 새벽에 친한 친구 S에게 전화가 왔다. 오열을 하는 그녀는 내게 왜 우리는 아빠가 없냐며 하소연을 했다. 글쎄 나는 술에 취해도 아빠 생각은 안 나던데 넌 아빠 없는 게 그렇게 서러웠냐고 물었다. 너와 나는 아빠의 존재 유무로 인해 변하는 건 없다고, 없는 아빠의 빈자리에 슬퍼하기보다 아빠 없이도 잘 자란 너를 보라고 말해주었다. 전화를 끊고 아빠를 조금 생각한 뒤 잠에 들었다.


부모님이 이혼 후 3년 뒤, 내 나이 7살 때는 아주 오랜만에 본 아빠를 보고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그 당시 아빠는 내게 그저 낯선 성인 남자였다. 엄마는 아빠를 만나기 전 준비하는 내내 표정이 없던 양반이 나의 어색한 인사 한 마디에 “아빠한테 안녕하세요가 뭐야~“ 라며 소리 내어 통쾌하게 웃었다. 날 조금 기특하게 여기는 뉘앙스였다. 머쓱했지만 그 당시의 나는 아빠에게 어떻게 인사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사실 지금도 알지 못한다. 아주 오랜만에 본 아빠에게 존댓말을 해야 할지, 반말을 해야 할지, 안녕하냐고 물어야 하는지, 어떻게 지냈냐고 물어야 하는지, 그동안 뭐 하면서 살았냐고, 행복하냐고, 담배는 끊었냐고, 만나는 사람은 있냐고 어떻게 물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이혼 가정에서 자란 28살 청년의 삶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