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시대에 '전화를 하는 사이'란 친분이 있는 관계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과거 언젠가부터 본인의 성대를 일하게 하지 않고도, 전자기기의 표면을 가볍게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타인과 원활한 소통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젠 전화를 거는 자체가 시대를 역행하는 일 같기도 하다. 연락수단에 대한 상대방의 기호, 즉 그쪽에서 선호하는 게 전화인지 문자인지를 몰라 멈칫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어느 날, 02로 시작하는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왔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 번호 앞자리가 우리 동네 유선번호길래 나와 관계있는 곳, 예를 들면 아파트 관리실 같은 데서 온 게 아닐까 싶어 나는 초록버튼을 눌렀다.
"저 이○○에요"
우리 엄마보다 몇 살 아래이신 선배님이었다. 십여 년 전에 같이 일했고, 그해 동료들은 유난히 관계가 좋았고, 해가 지나서도 사적 모임이 꾸준히 이어졌고, 구성원들의 나이차는 무의미했다. 나는 그녀와 꽤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선배님은 내 근황을 물으셨고 다른 동료들에 대해서도 말씀하시다가 마지막엔 뜬금없이 데이트앱 얘기를 꺼내셨다. 그게 오늘의 용건이었다. 본인의 지인 중 어떤 이가 그렇게 결혼을 바라고 바라다 앱에서 여자를 만나 몇 달만에 결혼을 했단다. 그의 '성공' 스토리를 듣자마자 내게 꼭 알려주고 싶으셨다고. 직장에서 만난 사이치고는 심적으로 가까운 편이니 그 정도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셔도 되는데, 아무래도 사생활이라 조심히 운을 떼신 듯하다.
"내가 정확히 물어봐서 알려줄 테니까 꼭 가입해요. 알았죠?"
며칠이 지났는데도 그녀에게 아직 연락이 없는 것으로 보아 계속 바쁘시거나 답을 못 찾았거나 아니면 잊어버리신 것 같다. 만약 한 번도 진심이 오간 적 없는 누군가가 뜬금없이 내게 이런 얘기를 꺼냈다면 불쾌했겠지만 그 정도일로 신뢰를 잃을 사이는 아니었다. 나에 대한 애정으로 손수 전화기 버튼을 누르는 수고까지 하셨지만, 몇십 분의 통화 끝에 내게 남은 건 '나를 아직 모르시네..'뿐이었다.
마트에 진열된 물건들도 고유의 상품명이 있다. 이름이란 이토록 복잡한 세상에서 나를 단어 하나로 표현해주는 엄청난 상징물로, 정체성 발현의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아이 이름을 짓는 부모의 신중함을 보라. 작명소를 찾는 수고까지 참 갸륵하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Call me by your name' 의 대사를 차용해 나의 바람 한 가지를 전할까 한다, 문학적 요소를 완전히 제거한 건조한 톤으로.
콜 미 바이 '마이' 네임(Call me by my name).
제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세요. 제 아이덴티티거든요. 저도 제 잣대를 상대에게 함부로 겨누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