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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Nov 24. 2023

살지어다, 웃어보겠어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기

 불편한 새 구두를 신고 하루 종일 돌아다녔더니 결국 발에 물집 여러 개 생기고 말았다. 많이 걷게 될 줄 예상은 했었는데 간만에 외출한다고 멋 부리다 그렇게 됐다. 그것도 평소에 운동화만 신던 사람이 말이다. 실물로 본 적 없는 것들을 온라인에서 구매하지 않는 편인데 그 구두는 뭐에 홀렸는지 포털 팝업광고에서 보고 냉큼 사게 됐다. 이유는 나름 합리적이다. 내가 찾던 디자인이었고, 상품설명도 왠지 믿음이 갔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감동' 후기가 많았다. 내가 가끔 홈쇼핑을 보는 건 쇼호스트들의 언어구사력에 흥미를 느껴선데, 평범한 단추 하나를 놓고 온갖 미사여구를 엮어 수십 개의 문장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능력은 실로 경이롭다. 정신 차리고 보면 어느새 결제까지 끝나 있던 게 어디 한 두 번이던가. 그런데 이번 구두 사건은 쇼호스트들이 키보드로 돌격하여 나를 무참히 패배시킨 느낌이었다. 이렇게 나는 호구로서의 이력을 하나 더하게 되었다.

 새 구두 때문에 생겼던 물집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가라앉았다. 그리고 물집과 닿아 있던 발톱 두 개가 들려있다가 결국 빠져버리고 말았다. 살면서 발톱이 빠진 게 처음이었다. 통증은 없었다. 그런데 가만, 혹시 이거 기회 아냐? 그간 나는 발톱 속으로 난 사마귀 하나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썼던가. 치료에 치료를 거듭하다 포기했는데 왠지 이번만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큰맘 먹고 다시 새로운 병원을 찾은 나는 환호했다. 의사 선생님이 자신 있게 성공을 예상하셨기 때문이다. 치료는 몇 주 간격이었고, 장장 7개월의 대장정 끝에 나는 완치되었다. 호구에게 봄이 왔다!


 전화위복.


 안 돼도 이렇게 안 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예상과 기대에 벗어날 때가 있다. 2023년, 올해가 그랬다. 생전 들어본 적 없는 배관소음으로 -구축아파트의 난데없는 잡음이었음- 전세만료 1년을 앞두고 서둘러 이사를 했는데 이사한 새집에서는 생전 겪어본 적 없는 층간소음을 겪고 있다. 게다가 올해 배정된 근무 공간은 올초의 날림 공사 덕분인지 위층과 아래층을 한 공간인양 만들어주었다. 즉, 층간소음이 엄청다. 만병의 원인은 인간관계에서 오는바 나는 직장 내에서는 생전 당해본 적 없는 모독을 당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월급을 반만 받고 출근도 반만 하는 시간선택제를 할 걸 그랬다. 어차피 추가로 버는 반은 병원비로 다 들어가는 모양새고 이 정도로 몸과 마음이 병든 이상 회복이 빠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 땐 신앙심으로 유명했던 나인데 하늘에서 재앙이 뚝뚝 떨어진 것만 같은 상황에 나는 '신은 없다' 확신하게 -물론 급박할 땐 그분을 찾지만- 됐을 만큼 상황은 일관되게 흐트러져갔다. 그래도 내게 가장 큰 위로가 되 말이 있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


 도대체 내년에 얼마나 잘 되려고 이렇게 밤이 까만 걸까. 스트레스는 나를 지배하여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병원진료를 고루 받게 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이 과정 인생 2막을 위한 개조시기라 여겨졌다.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건강한 80이 낫다는 생각이므로 나는 인생의 반환점에 거의 다다랗고 어린 날, 젊은 날의 많은 시행착오들 나의 이후 삶을 더 풍요롭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씨바- 더 올 테면 와봐라, 우리 정신과 선생님과 상담선생님이 나를 코치해주고 있으니까.


 자리에 걸맞지 않은 무능력과 무책임으로 공동체를 피폐하게 만드는 리더, 그 속의 무기력하고 나약해지는 개인들, 안정된 직업의 불안정한 속성, 그리고 에티켓이 결여된 이웃의 삶, 오늘의 미세먼지와 강추위까지 주변환경은 어느 것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러나 내가 그리도 좋아하는 햇살을 틈틈이 맛보았고 태양이 내게 따스히 내려쬐여 주면 '아, 행복하다'하고 저절로, 때론 의식적으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보면 나의 긍정성이 아직 건재함을 느낀다.

 나는 사표를 내고 나간 십 년 아래의 후배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내 하소연을 하기 위함이었는데,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과감한 선택을 한 그녀는 다른 종류의 불안을 맞이하고 있었 나는 그녀의 도전에 또 박수를 보냈다.

"잘 한 선택이야"

"과연 그럴까요?"

"잘한 거야 진짜"

"지나고 봐야 알죠"

 대화 중 언급되지 않은 '불안'이라는 단어가 그녀의 어조로부터 느껴졌다. 그러나 내 불변의 의견은, 그녀의 선택은 매우 옳았다는 것이다. 시대정신이 있고 말이 통하는 드문 동료가 내 일터에서 사라져 아쉽지만 어쩌면 편한 길 놔두고 개척자의 길을 나선 그녀의 삶은 이미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본다. 나는 여태껏 해보지 않았던 도전 하나를 내년에 해보려 한다. 고인 물이 싫다고 하면서도 변화가 쉽지 않은 건 기회비용을 따져서인데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나 신중히 어림잡은 수치는 실제와 간극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 믿고 가보련다. 오늘의 불면도 언젠가 새날의 광명으로 돌아올 것이다. 비록 그게 무엇일지 모를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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