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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Dec 25. 2023

불청객

말간 날

사람 손을 탄 고양이가 왔다

큰 눈을 깜빡이며

윤기 나는 털뭉치에 산만한 덩치로

집 앞에서 울었다     


흐린 날

문전박대를 멈추고 배고픔을 달래주었다

한 번도 반긴 적이 없는데

무얼 믿고 찾아오는 건지     

넌 한 번도 숨지를 않는구나


비 온 날

작은 고양이가 근처에서 엉엉 울었다

먼저 온 수고양이의 외동딸쯤 되려나

며칠은 남인 척 멀찍이 다니더니

둘의 걸음은 차츰 줄어갔다     


눈 온 날

집주인의 헛기침 소리가 인사인 줄 알았던지

열린 문 옆 가지런히 놓인 신발 위에 차분히 두 발을 걸치고 누웠다

딸의 발자국은 곧 마당 위에 남겨졌다

둘의 얼굴엔 같은 무늬가 나 있었다   

  

바람이 분 날

아무 말 없이 눈으로만 서로의 존재를 느꼈지만

수염을 활짝 세우고 꼬리를 늘어뜨린 털 짐승에게

사람은 품을 내어 주었다

밥을 나누면 식구라던가

     

해가 쨍쨍한 날

더 이상 밤의 차가움만을 헤매지 않아도 돼

뽀얀 빛으로 샤워도 하렴

멀었던 심장은 이렇게 가까워지나 봐

보고 또 보고     


한 날 한 날

이왕 이렇게 된 거,

삶의 직조에 우리 한 올씩은 즐거움이 되자

낯선 이를 받아들이기

이것도 인연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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