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간 날
사람 손을 탄 고양이가
윤기 나는 털뭉치에 산만한 덩치로
큰 눈을 깜빡이며
남의 집 앞에서 힘껏 울었다
흐린 날
가족은 문전박대를 멈추고 배고픔을 달래주었다
한 번도 반긴 적이 없는데 무얼 믿고 찾아오는 건지
넌 한 번도 숨지를 않는구나
비 온 날
작은 고양이가 근처에서 엉엉 울었다
먼저 온 수고양이의 외동딸쯤 되려나
며칠은 남인 척 멀찍이 다니더니
둘의 걸음은 차츰 줄어갔다
눈 온 날
집주인의 헛기침 소리가 인사인 줄 알았던지
열린 문 옆 가지런히 놓인 신발 위에 차분히 두 발을 걸치고 누웠다
딸의 발자국은 곧 마당 위에 남겨졌다
둘의 얼굴엔 같은 무늬가 있었다
바람이 분 날
수염을 활짝 세우고 꼬리를 늘어뜨린 털 짐승에게
사람은 마침내 품을 내어 주었다
밥을 나누면 식구라던가
해가 쨍쨍한 날
더 이상 밤의 차가움을 헤매지 않아도 돼
뽀얀 빛으로 샤워도 하렴
멀었던 심장은 이렇게 가까워지나 봐
보고 또 보고
한 날 한 날
이왕 이렇게 된 거
삶의 직조에 우리 한 올씩은 즐거움이 되자
낯선 이를 받아들이기
이것도 인연이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