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팔일. 호주 박물관
회랑. 유럽 중세의 종교 건물에서 안뜰의 가장자리에 있는, 콜로네이드 또는 아케이드가 둘러 있는 복도를 말한다. 이 회랑이라는 공간을 방문한 적은 아직 없다. 유럽 고궁에 가면 걸어볼 수 있을까, 하고 상상만 할 뿐이다. 그렇지만 회랑을 걷는다면 이런 기분이겠지, 라는 걸 이 호주 박물관에서 느껴볼 수 있었다. G층 전시관을 나오자 머리 위에서부터 인공적인 조명과 다르게 환한 자연광이 쏟아져 왔기 때문이다.
호주 박물관에서 가장 오래된 전시관이 바로 그 유사 회랑이었다. G층부터 3층까지 크게 연결된 이 전시관은 위로 탁 트여 있어 개방감이 가득했다. 각 층의 색깔도 G층에 네이비와 브라운, 1층에 크림, 2층에 흰색으로 칠해져 있어 시각적으로 편안한 느낌을 줬다.
그리고 이 전시관 공중에 들린 순록 뼈를 보고 있자면 가끔 깜짝깜짝 놀랐다. 몇 바퀴를 휘휘 돌고 있는데 가끔 뼈밖에 남지 않은 큼지막한 무언가가 시야에 보이니... 다시 봐도 궁금하다. 대체 왜 하필 순록을 하필 저 커다란 전시관에 하필 공중에?
오래된 전시관인 만큼 계단도 옛스러운 디자인이었는데 서양 중세 영화에서 보던 계단 같은 느낌이었다. 반 바퀴 빙 돌아 만들어져 있는 나무 계단. 그리고 그 위에 깔린 부드러운 카펫을 걸으면 이 전시관에 깃든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G층을 모두 구경하고 2층으로 가면 이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공룡 전시관이 나타난다. 공룡 뼈 구경. 아마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 하는 경험인 것 같았다. 이 호주 박물관이 이 공룡 전시관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하는데 어릴 때 공룡을 좋아했던 어른들도 추억이 몽글몽글 돋게 만드는 듯하다.
그 중에서 가장 놀랐던 어떤 초식 공룡의 뼈다. 그 옆에 있는 육식 공룡보다 더 커서 놀랐는데, 내가 알기로 육식 공룡보다 컸던 초식 동물은 브라키오사우르스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공룡의 이름이 모두 학명이라 이름이 길고 발음하기도 어려워서 외우진 못했다. 하지만 두 발로 서는 초식 공룡 중에서도 육식 공룡보다 컸던 게 있다는 걸 배운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2층을 돌아다니면 전체적으로 휑한 통로에 이런 육식 동물 모형이 있었다. 내 키와 비슷했던 공룡 모형이 없던 구경이어서 더 반가웠던 공룡이라 무언가 인증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괜히 무리수를 둬봤다. 사람이 한 명이라도 지나갔다면 하지 않았겠지.
1층을 왜 소개하지 않았느냐. 재미없었다. 알라와 박물관을 다니면 다닐수록 우리는 박물관에 머물러있던 시간이 점점 짧아졌는데, 우리는 그걸 눈치채고서 교양 쌓기는 충분히 한 것 같다고 자체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3주에 박물관 3개 방문이면 충분히 교양을 쌓았다.
아무튼 얼렁뚱땅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 꼭대기 층까지 간 우리는 아쉽게도 그곳에서 저녁을 먹지 못했다. 내심 호주 가게나 기관들이 얼마나 영업을 빨리 마치는지 알 수 있었다(아니면 그 반대일지도?). 아직 박물관 개관 시간은 1시간이 넘게 남아있었는데 레스토랑은 이미 영업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우리는 바로 내려가기보다는 높은 곳에서 하이드 공원을 쭉 둘러보기로 했다. 하이드 공원 밑 부분부터 쭉 시선을 올려 세인트 메리 대성당을 바라보자 그 앞에 무언가 새로 생긴 걸 발견했다.
바로 아이스링크장이었다. 호주가 겨울이긴 했나 보다. 코트만 입고 다녀도 괜찮을 날씨여도 아이스링크장을 운영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우리는 다음날 널럴한 스케쥴에 이 아이스링크장을 넣기로 하고 호주 박물관에서 교양 쌓기 투어를 마무리했다. 호주 박물관 규모가 매우 커서 거의 하루를 모두 투자해 돌아본 우리는 지친 다리를 이끌고 그새 꺼진 배를 두드리며 저녁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호주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호주에서 그렇게 많이 봤던 초밥집이 있다는 걸 알아낸 알라와 나는 그곳을 저녁 식당으로 정했다.
과연 호주의 초밥과 한국의 초밥은 비슷할까? 초밥집으로 향하는 우리의 유일한 기대이자 걱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