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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자Lee Apr 26. 2020

꿈은 다 알고 있다

그놈의 수학 문제집..

(잠잘 때 꾸는) 꿈은 참 신기하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꿈을 잘 꿨다. '잘'꾼다는 게 어떤 거냐면 자주도 꾸지만 꿈속 상황이 너무 선명해서 꿈꾸다 넘어지고 울고 웃고 잠꼬대하며 깬 적 많. 심지어 희한한 배경 속을 헤매다 낭떠러지에 이르면 '그냥 꿈이니까 뛰어내리자'라 생각하며 뛰어내리기도 하고, 진짜 설레고 행복한 상황이 다가오면 '아무래도 이거 꿈인 거 같은데.. 안 깨고 싶다'는 생각이 꿈속에서도 은연중에 든다. 이쯤 되면 자각몽(lucid dream) 중에 어느 정도 꿈을 통제하는 수준인데.. 참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하나 있다.


서른이 지나고 애들 키우며 수년간 반복되는 꿈이 하나 있는데, 너무 오 반복해서 꾸다 보니 꿈을 깨서도 몇 분 동안은 현실과 헷갈릴 지경이다.

 

무슨 꿈인고 하니, 다시 고등학교에 모여서 대입을 준비해야 하는 꿈이다. 생각지도 못한, 기억하지도 못했던 고교 동창들이 출연하고 다들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수능을 준비한다. 주로 성실했던 친구들이 등장한다. 난 분명 대학 졸업장이 있는 것 같은데.. 또다시 하라니 너무 답답하고 자신이 없다. 내면에 깔린 솔직한 심정은.. 다시 시험 쳐서 더 좋은 학교에 갈 자신이 없는 것이다. 나는 실력이 안되는데 운이 억세게 좋아 (별것도 없지만) 이 모든 것을 이뤄 놓은 것 같은 심리가 있는 것이다.


어제 읽은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싶습니다 에 '사기꾼 증후군' 에 대한 설명이 나왔는데, 그거랑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본다. 자신이 능력 이상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생각해서 언제 들통날까 걱정하는 심리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꿈에 항상 나오는 것이  '다 풀지 못한 수학 문제집'이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난 항상 문제집을 다 풀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똥줄이 탄다. 아마 고 1 때 수학의 정석에서 인수분해가 나오던 시점부터 수학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반쯤 포기했었는데.. 그게 알게 모르게 죄책감, 후회, 아쉬움 같은 형태로 아직 남아있나 보다. 거의 트라우마 수준이다. (재수할 때 수학 열심히 해서 다행히 수학 덕에 대학에 갔다)


하튼 내 깊은 심연에서 밤마다 꿈에 나와 나를 괴롭히는 존재가 번역도 아닌 '수학 문제집'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이 답답한 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제는 약 10년 전에 혼자 좋아했던 사람이 꿈에 나왔다 (갑분 짝사랑). 어찌나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내게서 멀어지던지ㅋㅋ 서글퍼서 눈물이 날만큼 생생했다. 오래 전 그때, 상대방이 날 봐주지 않을 때, 너무 한숨만 내쉬지 말고 나 자신의 감정을 잘 보듬어줄 걸 그랬다.

 

기억에서 다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관심도 없고 신경도 안 쓰는데 (사실이 그렇다)

내 감정이 지나온 흔적들을 꿈이 모두 다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참 신기하다. 그리고 그게 싫진 않다.


*사진은 꿈보다 더 꿈 같았던 지난 날들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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