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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자Lee May 16. 2020

양푼이 첵스초코

나의 소울푸드는 시리얼이 아니다

번역하다가 출출하다니까 남편이 갖다 준

양푼이 첵스초코..

어릴 때 아몬드 후레이크 를 정말 많이 먹었다. 엄마가 미용실을 하셔서 유치원이나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간식을 준비해 주는 어른이 없었다. 오빠와 나는 쉽게 찾아 먹을 수 있는 시리얼을 항상 먹었고, 마지막 남은 달달한 우유까지 홀짝 들이마셨다. 나름 영양가 있는 '아몬드' 때문인지 다른 시리얼을 사주셨던 기억은 거의 없고, 어쨌든 우리 남매는 탄수화물과 당분의 도움으로 쑥쑥 자랐다.

20대가 되어서도 시리얼 입맛은 변하지 않았다. 영국에서 단체 생활을 할 때는 새벽에 혼자서 조용히, 천천히, 더 많 시리얼을 먹기 위해 눈 뜨자마자 부엌으로 향했다. 그런데 시리얼을 그렇게 많이 먹어도 조금만 일하고 나면 금방 허기졌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식빵에 누텔라를 잔뜩 발라 먹었다). 혼자 자취방에 살 때 (요리에 전혀 관심도 소질도 없던) 나는 출출할 때 먹으려고 사둔 시리얼 300g 한 봉지를 하루 만에 다 먹은 적도 있다. 그때 주로 샀던 건 '스페셜k' 라든지 '라이트up' 이라고 하는 다이어트용 시리얼이었다ㅋ 그냥 탄수화물이랑 설탕이었지만..

30대가 되어 임신했을 땐, 태아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으로 현미후레이크 같은 곡물 그림이 잔뜩 그려진 시리얼을 아침에 자주 먹었다. 당시 대장균 그래놀라 사건 때문에 갑자기 심란했는데 다행히 아이들은 건강하다.

지금은 주로 미국에서 물 건너온 포슬포슬한 오트밀을 우유에 불려먹고, 아이들 취향(이자 내 입맛에 딱인) 첵스초코를 항상 구비해 둔다.

한국인인 나는 밥을 먹고 자랐지만, 젖니가 날 때부터 먹은 밥은 지금껏 그대로인데 반해 시리얼의 변천 과정은 내가 살아온 역사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그럼 나의 '소울푸드' 는 시리얼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항상 먹어오긴 했지만 없어도 그만인 식품이라.. #떡볶이라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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