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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자Lee Nov 10. 2020

마트에서 소화제를 배웠습니다

[나도, 에세이스트] 가작 셀프 공개

나는 소위 말하는 모태 신앙인으로 어렸을 적 지방 소도시에 있는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90년대 초 보수적인 개신교 목사님들은 설교 중에 “술 담배 하면 벌 받아요”라든지 “주일에 돈 쓰면 안 됩니다” 같은 말로 성도들을 움츠러들게 했었다. 성경에도 ‘술 취하는 것은 방탕한 행위’라 나온다고 배워서 그런지 어린 마음에 특히 술 취해서 얼굴이 붉어지거나 비틀거리는 어른들을 보면 굉장히 두렵고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우리 부모님은 교회 집사님이었다. 아빠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으셨기에 취해서 귀가하신 적이 손에 꼽기도 힘들 정도로 드물었지만, 아주 가끔 엄마와 작은 교자상을 펴놓고 마주 앉아 갈색 병맥주—오비라거 맥주였을 것이다—하나를 두 잔에 나눠 부으셨다. 안주로는 구운 오징어 한 마리를 찢어서 반질거리는 상아색 마요네즈에 찍어 드셨다. 오징어 좀 얻어먹으려고 옆에 붙어 앉아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모른 척 듣던 나는 마음 한켠으로 의문을 품었다. ‘우리 부모님은 왜 교회에 다니면서 술을 드실까?’

부모님, 특히 엄마는 서너 달에 한 번꼴로, 아주 가끔 검은 봉지에 맥주를 사와 오징어나 땅콩을 안주 삼아 아빠랑 나눠 마셨다. 명절에도 외갓집에 가면 교회를 다니지 않던 친척 어른들과 술을 한 잔씩 나눠 마시며 화투도 치고 떠들썩 얘기를 나누셨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사실 그런 엄마가 조금 못마땅해 물은 적이 있었다. “엄마는 왜 술을 마셔?”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이건 술이 아니라, 어른들 소화제야 소화제.”

어른들의 세계라는 것이 원래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만큼이나 이해 못 할 일 투성이니까. 나는 술에 관해 더 이상 묻지는 않았으나 다만 커서 절대로 술을 안 마셔야지, 하고 다짐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예배에서 그렇게 배웠고, 그게 올바른 길이라 믿었으며,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나름의 경계심과 불안감을 마음 한 편에 늘 품은 채로 성장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왜 좋고 나쁜지를 스스로 경험해보고 판단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재수를 해서 대학생이 되었는데, 첫 엠티를 갔더니 선배들이 바가지에 술을 따라 나눠주는 게 아닌가. 나는 선배들 면전에다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아요’라고 아주 재수 없게 말하고 그 길로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외곬 인생길은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가서도, 취업해서도 변하지 않았다. 웬걸, 보드카와 와인을 병 채로 마셔대는 서양인들 사이에서 맨정신으로 구경만 하다가 파티에 흥미를 잃었고, 여행사에 취업해서는 항공사 과장님들 옆에 앉아서 술도 따르고 술도 받아먹어야 한다길래 결국 또 ‘저는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안 마십니다’라고 선언한 뒤 약 3주 만에 회사를 나왔다.

그랬던 나는 엄마가 되었고,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두 아이를 젖 먹여 키웠다. 아이를 키우며 감정의 밑바닥과 꼭대기 모두에서 헤엄치며 허우적대다 보니 내가 딴 거는 잘 못 지키면서 술에만 유독 집착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죄책감이나 경계심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그러다 수유도 다 끝난 어느 여름날 대형 마트에 갔는데, 맥주 시음회에서 얼음 큐브 사이에 끼워 두었던 캔맥주를 플라스틱 소주 컵에 따라준다길래 무언가에 이끌리듯 갑자기 한잔 맛보고 싶어졌다. 참 시원해 보인다는 생각이 나를 시음대 앞으로 이끌었다.

빈속에 한잔 마시고 장을 보는 동안 이상하게 혈관이 흐물거리면서 심장이 동동 떠다니는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도 모호했고 약간 설레기도 했으며, 스트레스가 소화되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호기심에 시음한 마트 맥주는 주말마다 ‘세계 맥주 4캔 만원’이라는 마케팅으로 나를 유혹했다. 캔들의 디자인은 아름답고 다채로웠으며, 가격은 저렴했고, 나는 모호한 그 느낌이 자꾸 생각났다. 

왜 사람들이 ‘치맥치맥’ 하는지 서른셋이 돼서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이제 마트에 갈 때마다 꼭 필요한 리스트만 적어갔다가도, 남편에게 “4캔 만원인데 이 정도 사치는 할 수 있잖아?”라고 넌지시 말하며 끌리는 맥주 4캔을 카트에 사알짝 담아놓는 내가 낯설다. 남편과 반 잔씩 나눠마시자 아들이 물었다. “와 어른들은 좋겠다. 시원한 술도 마시고.” 그러자 내가 한 대답에 나도 놀라고 말았다.

이건 술이 아니라, 어른 소화제야 소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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