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서..
귀한 얼굴들을 마주하다
올해 친정아버지께서 환갑을 맞으셨다. 막연한 기대를 품고 식사와 숙박을 예약하고 케이크와 선물도 미리 다 찜해놨건만, 하필 만남이 다가오던 그 주에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점점 범위를 좁혀오더니, 아니나 다를까 우리 아파트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결국에는 모든 행사가 취소됐고 생신 당일 날 카톡 가족 창에서 비대면 잔치가 열렸다.
아빠 축하해요, 너무 아쉬워요, 케이크랑 선물 고맙다, 선물 마음에 든다, 웬 용돈이냐. 이렇게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인사말들이 오간 뒤 창을 닫으려고 하는데, 갑작스레 엄마가 한 마디를 툭 던지셨다.
“너 유치원 때 개가 앞에서 어슬렁거린 일이 요즘 자꾸 생각나서 눈물이 난다. 가끔 미안해서 흑흑.”
엄마는 내가 유치원 다닐 때 미용 기술을 배우러 다니셨다. 하루는 아주 중요한 교육인가 시험 때문에 나를 등원 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보내야 했고, 선생님들이 출근도 하기 전에 유치원 앞뜰에 데려다 놓은 뒤 다른 분 차를 얻어타고 다시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 혼자 뜰 안에 있는데 문 앞에서 동네 누렁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는 게 아닌가. 하지만 엄마는 지각하면 안 되는 상황이라 차에서 내리지 못했고 걱정과 미안함에 눈물을 훔쳤다고 했다. 아이 키우면서 일하다 보면 그런 일도 생긴다고, 괜찮을 거라며 서로를 위로하던 다른 아주머니들의 눈가에도 이미 눈물이 번져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예전에도 그날 겁을 잔뜩 먹은 내 얼굴이 눈에 선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몇 번 있었다. 아이를 낳아서 길러보니, 엄마라는 존재가 자신의 아이를 얼마나 자세히 사랑하는지 알게 된다. 처음 젖을 물리던 순간,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부지런히도 쌕쌕거리던 조그만 콧방울. 걸음마를 배우다 혼자 첫발을 내디딜 때 휘둥그렇게 반짝이던 두 눈. 엄마 눈엔 자기 아이의 세모 입술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워 보이고, 초승달 같은 눈썹도 가장 특별해 보인다. 다른 사람은 모르는, 나만 아는 내 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간직하고 언제든 떠올린다.
그래서 그런지, 결혼 후 집을 세 번 옮겨 다니면서 버리지도 못하고 어디에 둘지 몰라 매번 고민했던 물건이 있었다. 다름 아닌 옛 친구 네댓 명의 어릴 적 증명사진이다. 학교 다닐 때는 학생증 사진을 찍거나 졸업 사진을 찍으면 친구들끼리 증명사진을 교환해서 다이어리나 책상에 붙여두곤 했는데, 어릴 적 증명사진을 받았다는 것은 이들과 내가 특별히 친밀하게 교류했다는 증거였다. 내 지갑에도 들어갔다가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흰 편지봉투 속에 고이 보관된 증명사진 속 얼굴들…
그냥 책상 서랍 한 편에 넣어두면 되지 뭐가 고민이냐고 혹자는 물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그중 하나는 옛 애인의 사진이고 또 하나는 나와 연락을 아예 끊어버린, 즉 어쩌다가 절교까지 해버린 옛 친구의 사진이라는 점이다. 나의 두 아들은 어찌나 궁금한 게 많은지, 몇 번이고 내 서랍들을 뒤지다 그 사진들을 꺼내와 내게 묻곤 했다. “엄마, 이건 누구 사진이야?”
그럼, 그냥 버리면 되지 않냐고?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내 아이가 첫 여권 사진을 찍던 날, 휑한 사진관에서 커다란 카메라를 앞에 두고 엄마 눈치를 보며 짓던 어색한 입꼬리를 기억하는 나는 모든 남의 집 자식이 얼마나 귀한지 잘 알기에 그 증명사진들을 차마 함부로 버릴 수가 없다. 스마트 폰 앨범 속 차고 넘치는 내 아이의 얼굴은 단 한 장도 지우기가 힘들고 확대까지 해가며 감상하는데, 남의 집 귀한 자식들 증명사진을 어떻게 쓰레기 더미와 섞을 수 있겠는가?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아무런 메시지도 쓰지 않고 이 사진을 우편 봉투에 넣어서 그네들 집으로 보낼까? 그 집 부모님들이 다시 갖고 싶을지도 모를 참 귀한 사진인데 말이지… 하지만 주소도 모를뿐더러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할 게 뻔해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본 누구누구가 주소를 알려준다면, 아무 인사말도 없이 달랑 사진만 넣어서 우편으로 보내줄 의향은 있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그것이 가장 깔끔한 처분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