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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이시트콤 Nov 13. 2019

글에는 진심이 오롯이 묻어난다

영혼 없는 글을 쓰지 않기 위해 시작하는 브런치

  글에는 참 신기한 힘이 있다. 내가 정성을 들여서 쓰면 그 정성은 상대방에 전달되고, 내가 대충 쓰면 그 대충이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글이 화려하고, 글씨가 예뻐도 대충 쓴 글을 전하면, 상대방도 그 것을 오롯이 느낀다.


  대학교 때 사귀었던 여자친구는 내가 써 준 편지들을 좋아했다. 내가 편지를 써준 날은 이런 이런 내 마음이 느껴져서 좋다고 항상 이야기해줬다. 하지만 가끔 마음이 담기지 않은 상태에서 의무적으로 써준 편지들에는 아무 말이 없었다. 꽤 그럴싸하게 포장한 말들이었음에도 알맹이가 없음은 느껴졌던 모양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대방이 정말 마음을 담아서 쓴 편지는 화려하지 않아도, 많은 표현을 하지 않아도 그 진심이 와닿는다.

반면, 마음이 담기지 않은 편지는 사랑한다, 결혼하고 싶다와 같은 갖은 애정표현을 더해도 그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군대에 있을 때는 내가 좋아하던 선임이 전역을 할 때마다 편지를 남기곤 했다. '당신과 함께 했을 때, 이런 면 때문에 난 행복했다. 당신의 이런 좋은 점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당신을 빛나게 해줄 것이다. 이후에도 우리 좋은 친구로 지내자' 뭐 이런 편지를 써서 호주머니에 몰래 넣어놓았다. 그 한 통의 편지의 힘은 굉장했다. 그들은 그 한 통의 편지로 2년간의 군생활에 보람을 느꼈다. 전역 후에 나를 만나러 면회를 오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내게 꾸준히 연락을 해온다.


  점차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생기는 긍정적인 관계의 변화를 보며 글의 힘을 믿게 되었다.

비대면으로 전달되는 매체이지만 면대면 이상으로 내 진심을 제대로 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매체. 지금와서 유추해보면, 마음이 담긴 편지는 수많은 말들 중 상대방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말을 가장 예쁜 형태로 담기 때문에

글 곳곳에 이해와 배려가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글을 좋아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충분히 생각하고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면대면은 내 진심이 왜곡되기 너무 쉽다. 때로는 너무 흥이나서, 당황해서, 화가나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다르게 전달되는 경우들이 있다. 말을 뱉어 놓고 차분히 돌이켜보며 후회를 하기도 한다. 나는 생각 정리가 느린 편이라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때로는 감정을 다 빼고 이성적으로 생각할 시간이, 때로는 감정을 한가득 담아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면대면보다 글로 내 생각을 전하는 것이 편할 때가 많다.


  광고기획을 업으로 삼게되어 이제는 글을 '잘' 써야 할 이유도 생겼다. 광고제작에 관여하는 모든 파트너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AE로써 간단명료한 글을 잘 써야 하며 크리에이티브를 내는 크리에이터로써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도 잘 써야 한다. 그래서 나의 글에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첫번째는 가장 명확하고 쉬운 글을 쓰는 AE가 되는 것.


  AE로써 클라이언트, 매체팀, 아트팀, 촬영팀, 인사팀 등 많은 파트너들과 문서와 메일을 주고 받아야하는데, 내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정리가 잘 안되는 스타일이라 글이 길고, 맥락이 잘 안 짚인다. 입사 초 선배가 내게 했던 말이다.


"테디, 우리는 기획자에요.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에는 기획 의도가 담겨 있어야 해요. 우리가 쓴 글들을 보고 그 사람들은 움직일텐데 우리가 헷갈리면 안되잖아요."


평소 존경하던 선배의 피드백이었기에 뇌리에 더 쎄게 박혔다. 내 업무에 피드백 하나를 주더라도 메모장에 적어놓고 30분을 고민하던 선배였다. 그 후로 나는 짧은 메일을 보낼 때도 메모장을 켜놓고 내 의도가 한 눈에 들어올 때까지 하루에도 몇 십번씩 글을 다듬는다. 팀장님이 워싱 없이 커뮤니케이션을 온전히 맡기시는 것을 보면 꽤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


두 번째는 사람냄새나는 글을 쓰는 크리에이터가 되는 것이다.


  톱스타가 나오지 않아도, 비쥬얼이 화려하지 않아도 나레이션만으로 마음을 후벼파는 광고들이 있다.

가령, KCC의 엄마의 빈방이나 리복의 나는 독하다와 같은 광고들. 억지로 감동을 주려하지 않으며, 애써 웃음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공감을 이끌어내며, 그 위에 시대상을 반영하여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내가 쓴 카피가 브랜드의 단순 세일즈를 넘어 브랜드가 소비자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를 담고 있었으면 좋겠다.


  글을 쓰다 보니 왜 광고산업에 탈모인들이 많은지 알 것 같다. 이성을 담당하는 좌뇌와 창의력를 담당하는 우뇌 모두가 끊임없이 돌아가야 하니.. 머리가 남아나지 않을 것 같긴 하다. 여튼, 편식하지 않고 끊임없이 컨텐츠를 섭취하고, 끊임없이 똥을 싸보는 것. 그 것이 내가 원하는 좋은 글을 쓰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그러다 보면 황금 똥을 싸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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