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시작) 고작 26살이지만, 약한 내가 밉다 미워
(글을 모두 쓰고 보니 소제목이 마치 욕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
2024년의 해가 떠오르고 벌써 눈의 계절이 끝나가는 요즘, 표현욕구가 차올라 내 마음과 손가락 사이 사이가 가렵더라. 그래서 오늘부터 다시 나만의 글을 써보기 시작했다. 과연 한 바탕 글을 쓰고 나면 나는 이 가려움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작년에 이별의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꽤 오랫동안 마음 속 어둠이 커지느라 나는 내 마음의 바다에서 허덕였다. 인생의 모든 게 분홍빛이던 나는 회색빛 동태 눈깔이 되어 내가 좋아하던 글도 무엇들도 제정신으로 하지 못했다. (솔직하게 글을 쓴다는 것은 부끄럽군. 하하.)
작년 여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며칠동안 원룸 구석에 쳐박혀 펑펑 울었던 날이 있었다. 내가 대장 수술을 할 때 찾아오지도 않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그 분이, 내가 보고싶다고 말해도 먼저 보고싶다고 말하진 않는 그 분이, 대체 뭐가 그리도 사랑스러워서 매번 한바탕 눈물을 쏟아냈던 걸까. 지금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의 현재 사랑은 뭐라 생각하시는 지 너무나도 궁금하다. 스물 다섯이던 작년의 나는 '사랑'이 모든 일과 행동의 원동력이었다. 사랑 덕분에 힘이 치솟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쓰라린 이별을 겪고나니, 사랑은 분명 약인 척 하는 마약이라고 생각하더라. 처음에는 그 효능에 매료되어 나쁜 것인 줄 모르고 새로워하며 취하다가, 어느새 그것에 중독되어 나쁜 건 줄도 모르고 계속 연애로 얻게 되는 자극적인 효능만을 갈구하게 되는 아주 못된 마약.
스물 여섯인 올해의 나는 오랜 기간 끝에 드디어 사랑에 대해 차분해졌다. 사랑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마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게 말이 쉽지 드디어 오랜 기간 끝에 받아들이게 되었다. 작년에 헤어졌던 그분의 소식을 우연히 듣다가, 그분도 진심으로 힘들어 했다는 소리를 전해 들었다. 나는 상상도 못했다. 그 사람은 절대 나와 헤어지고 힘들어 하지 않을,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며 혼자 더 아파했었는데, 그 사람은 당연히 매정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알 수 있었다. '나는 정말 나만 생각하구나. 한참 멀었구나!'
어릴 때든 젊을 때든, 늘 성숙하려고 애쓰는 부류가 있다. 그게 나다. 성숙하려고 애쓰는 사람의 가장 강한 특징은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단순히 성숙하려고만 애쓰지 않는다. 때에 따라 숲을 볼 줄도 알고 나무도 볼 줄도 아는 지혜가 풍부한 사람이라, 자신의 노력을 언제 어디에 얼만큼 적절히 힘 써야 할 지 아는 분들 같다. 그런데 나같은 사람은 오로지 어린 애처럼 보이지 않기만을 위해 갖은 힘을 다 쓴다. 어릴 적부터 극심하게 소심했어서 늘 나의 표현을 자신감 있게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노력해 왔는데, 이뤄낸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 한참이나 멀었구나.
사랑하는 남자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게 성숙한 사랑이라며 이전 연애의 그분께 적극 실행했다. 서운한 것도 많고 질투도 나지만 그 사람처럼 쿨하고 싶어서 쿨한 척을 했다. 그렇게 곪다가 한번 씩 진지하고 조용하게 말을 꺼낸다. 그럼 그 사람은 왜 이제야 말했냐고, 안 좋은 마음이 더 커지기 전에 그때그때 말하라고 했다. 너무나 든든했다. 그래서 그때그때 가볍게 말하니, 말하는 횟수가 잦아지게 되었다. 그렇게 곧이곧대로 솔직하게 표현을 하는 내 모습이 어린 애같아 보여 싫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니깐 다시 혼자 곪더라. 이상한 쳇바퀴 속에 빠진 것이다. 이도 저도 원하는대로 풀리지 않던 나는 결국에 폭발해버렸다. 이렇게 바보같이 살고 싶어서 연애를 하기로 한 게 아니었는데!
헤어진 지 수개월이 지난 요즘은 그 사람 때문에 울지 않아서 다행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사람 말고 인생에 있어 다른 것 때문에 운다. 깨달았다. '아, 난 원래 이렇게 심장이 쪼맨한 사람이었구나!' 사랑 때문에 약해진 줄 알았던 난, 원래 내가 약한 사람이었단 걸 아주 뒤늦게 깨닫는다. 강하고 성숙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내가 오늘부터 발행하는 글은 당분간 '성장일기'즈음 될 것이다. 현재 유투브 숏츠와 릴스로 매일 새로운 도전 한 개씩 하겠다며 (D-30챌린지로) 강하고 단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콘텐츠를 진행하고 있다. (유투브_윤방이 채널) 26살 브런치 작가로서 '인생의 고급 정보'를 전달하진 못하는 능력이라 아쉽지만, 나의 솔직한 이야기와 비유들이 읽는 분의 마음에도 공감되고 인생의 심심함을 달래드리고 싶은 목표가 있다.
그래서 함께 소통하고 싶고, 그 소통이 단지 [글을 쓰는 사람]&[글을 읽는 사람]까지가 아니길 바란다. 나는 나의 글을 쓰고, 당신은 심심함을 달래고, 당신께서 마음 껏 내게 조언해주시면, 나는 뭐가 됐든 당신에게 배울 것이다. 혹여나 가르치거나 조언욕구나 위로욕구가 있으신 분들은 환영합니다. 토달지 않고 배우겠나이다.
당신은 가려운 등을 긁어줄 사람이 있습니까?
난 긴 글을 쓸 때 강박이 있었다. 긴 글은 나를 위해 쓰는 게 아니라 누가 읽어주길 바래서 쓰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긍정적이고 해피엔딩이며 교훈적이어야 한다는 나름 귀여운, 아니 바보같은 강박이다. 그래서 긴 글을 쓸 때면 양심에 찔렸다. 거짓말로 쓴 글은 아니었지만, 뭐랄까, 진짜 나는 긴 글 뒤 편에 쏘옥 숨은 느낌이었달까.
반대로 시를 쓸 때만큼은 굉장히 솔직하다. 누가 읽어주길 바래서 쓰는 것도 아니기에. (시를 배운 적이 없어 전문성은 극히 떨어진다.) 오로지 내가 느끼는 감정과 스토리에 매료되어, 오로지 나만을 위해 쓰기 때문에 마치 오타쿠처럼 내가 쓰는 시에 진심이고 애정한다. 하지만 시인이 꿈은 아니다. 웃기지만 내가 쓴 시로 대회에 수상한 것도 아니고, 시인으로 등단한 것도 아니면서 이미 나 스스로를 시인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어떤 교수님이 그러셨다. 꼭 뭐가 이뤄져야 작가가 아니라고. 자신이 글을 쓰면 작가인 거지, 결과물에 얽매이지 말라며.
그래도 운동장에서 공 한 번 차봤다고 축구선수라고 말하고 다니지 못하듯이, 꾸준히 오래 시를 써나가겠다는 진심어린 마음과 실천으로 시인이라고 말하고 다녀야겠다.
어릴 때 어머니에게 혹은 할머니에게 등 좀 긁어달라고 애원한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게 얼마나 편안하고 시원했던 지... 스물 여섯 살, 나는 아직 젊다. 누구들에겐 아주 어린 나이다. 그런데 벌써 누가 나를 대신 긁어줄 사람이 없다는 게 참 슬프다. 이 별거 아닌 투정이 외로움으로 변한다.
위로라는 것도 어느새 그렇게 된 것 같다. 누구도 나의 어디가 가려운 지 알지 못하고, 딱히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외롭고 슬픈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길 바란다. 그렇게 홀로 가려워하다 애꿎은 곳만 벅벅 긁더니 애꿎은 마음만 시뻘겋게 상처받곤 한다.
당신은 지금 위로를 받고 싶은 사람인가, 위로가 어려워진 사람인가? 위로를 받고 싶다면 당신의 가려운 부위를 정면으로 마주하시길. 그리고 누가 긁어줄 수 있는 지 찾아보시길.
위로가 어려워진 사람이라면 기억하시길. 손톱만치 작아도, 딱 그만큼의 단단함이라면 당신의 사람은 편안하고 시원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아침이 되어 새가 울고있더라
너무나 슬피 울어 물어보았다
" 짹짹 짹짹 짹짹 짹짹짹짹 "
대답은 " 짹 짹짹 짹째짹짹 "
당신은 새가 왜 슬픈지 알수 없다
당신은 누가 왜 슬픈지 진정 알까
사람들 서로 막 말해도 모두 알까
오늘이 힘든 널 누군가 알아 줄까
짹짹 거리는 새처럼 울부짓기만 하면 암만 착한 사람이라고 한들 알아들을 수가 없어 위로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의 글이든 유투브든, 누군가의 짹짹 울음 소리가 멎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