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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방이 Feb 29. 2024


D-30 이별보다 사랑이 더 힘들었다

하루에 하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사랑했을 때


  나는 지난 9년간 연극 동아리, 연기학원, 연영과 대학교, 극단에서 연기와 연극을 배우고 수십번 정도의 공연을 경험해왔다. 그리고 지금은 사회에 발을 디딘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 배우다. 아니, 현재 작품을 하고 있지 않으니 배우지망생이라고 해야 옳겠다.

  연극을 할 때 여러가지 요소들이 중요하지만 오늘 난 '배우와 배우 사이의 거리'를 사랑과 연결하여 표현하고자 연극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무대라는 정해진 범위 내에서 내 몸뚱아리 하나로 장면의 상황과 맞게 움직인다는 것은 어려웠고, 여전히 늘 숙제다. 

  무대 위에 나 혼자, 한 명의 배우가 공간을 채워야 할 때도 있었지만 배우들이 굉장히 많은 장면도 있었다. 제일 많았을 때가 대학교 3학년 때 공연했던 <발칸동물원>이라는 연극이었는데, 무려 19명 정도의 배우가 무대 위에 모두 등장하여 연기를 해야했다. 좁은 무대에 사람들로 바글바글 거리는데, 관객들도 당황하지 않으려면 배우들 사이의 거리는 매우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으리라. 


  대학교 장면 연기 수업 때 일이었다. 연극의 한 장면을 두 명의 학생들끼리 팀을 이루어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연기를 시작했다. 상대방 배우의 눈과 움직임, 목소리에 의지하며 긴장감을 떨쳐내려 애썼다. 그리고 어느새 집중되더니 8분 가량의 연기를 끝마쳤고, 공책을 꺼내들고선 무슨 말씀을 해주실 지 기대되는 눈빛을 발사하며 교수님 앞에 섰다. 

  교수님께서 그러셨다. "너네는 지금 너네 편하게 무대를 썼어. 근데 이 장면에선 관객들한테 너희 관계의 불안함을 극대화시켜야 하거든?" 우리가 연기했던 움직임에 변화가 많이 없고, 고조되는 상황에 비해 두 배우의 거리가 너무 멀게 연기해서 들었던 코멘트였다. 이때부터 나는 연기 공부가 미친듯이 좋았다. 사랑에 빠지면 어려워도 겁 없이 뛰어들게 한다. 그게 연기(목표)든 사람이든.

  난 배우로서 관객의 눈을 경험하지 못한다.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기 때문에. 그렇지만 배우는 늘 관객이 바라보는 시각을 인지해야한다. 타당하고 좋은 동선을 선택해야하고, 장면마다 시시각각 바뀌는 분위기를 정열적으로 무대에서 채워야하니라. 그래서 연극 한 편을 작업하기 위해, 수많은 장면에서 배우와 배우 사이의 거리는 중요한 스킬 중 하나다. 배우끼리 너무 가까워서 관객에게 부담을 느낄 수도 있고, 긴박하고 고조되는 장면에서 배우가 무대를 채우지 못하고 구석에 위치해 있다면 집중력을 깨뜨리게 할 것이다.


  

  사랑. 작년에 이별했다던 그분과의 연애는 약 2년즘 가까이 만났다. 진심을 다 해 만났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SNS에 자랑하지 않더라도 여행가거나 놀 때마다 브이로그 영상을 만들기도 했었다. 그만큼 정성과 애정을 듬뿍 담아 사랑했었다. 그런데 그분과 연애를 하면서 고민이 참 많았다. 그전 몇 차례의 연애를 할 때에는 느끼지 못한 것들을. 바로 나의 '표현'에 대한 고민이었다. 1년 조금 넘게까지는 그저 자연스럽게 좋은 감정들을 잘 표현했는데, 그 이후부터는 (내가 하는 표현들을 그분은 내게 하지 않다보니) 멈칫거림이 잦았달까. 사람이 다른 걸 받아들이기엔 아직 너무 어리고 약했나보다. 나는 왜 이렇게 사랑받고 싶었을까.

  그래서 생각했다. 사랑도 연기만큼 너무 어렵고 의문 투성이라고. 사랑에 빠진 내가 그 사람에게 바짝 다가가면 부담이 되고, 부담이 될까 홀로 걱정해서 저만치 떨어지면 그것은 또 나만의 착각이었고. 

  연극은 몇개월을 연습하고 준비하면서 연출과 배우들끼리의 약속과 훈련으로 어느새 완결된 공연이 올라가는데, 순간순간 이뤄지는 사랑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100명의 사람의 성격이 100가지로 모두 다 다르듯, 연애를 무진장 많이 해본다고 해도 매번 새로운 인간을 마주할텐데. 그래서 나는 사랑이 꽤나 무서워졌었다. 놓치고싶지 않을 정도로 간절하게 좋아했어도, 나를 위해서, 사랑을 그만 멈추었다. 





  사랑보다 괜찮았던

 이별했을 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이별 이후, 난 사람 사이의 '선'을 집착했고 새로운 병이 시작 되었다. 더이상 누구에게 정을 준다는 것이 힘겨워지던 병. 그러다보니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피하게 되었고, 혼자 보내는 시간은 길어지는데 혼자놀기 단계는 왕초보 수준이었다. 

  나는 정이 많은 사람이다. 단체 생활을 정말 좋아한다. 늘 함께 팀이라며 하하호호 떠들고 북적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 즐거웠다. 그래서 연극을 참 좋아한다. 한두시간의 공연 그 순간을 위해서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을 옆에서 훔쳐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내가 한동안 무기력증이 심해진 것이다. 사실 그분과의 이별때문이 아니라는 걸 쉽게 깨닫곤 한다. 왜냐하면 나는 사랑했을 때가 더 힘들었던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별하고나니 모든 감정들이 사라진 건 아니더라도 새벽이 일출과 교대할 때 만큼 고요하고 잔잔해졌기에, 사랑했을 때가 더 더 아팠다. 그래, 그럼 뭐 때문에 그러는데?


  스물 여섯, 대학 졸업한 지 1년차, 2024년, 몇달전 연극도 한 차례 끝났고, 나 홀로 또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늘 새로운 시작은 설레이는 편이다. 그런데 어머나, 내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크게 나를 뒤덮는 것이 아닌가. 돈 없고 무능력하다고 한탄하고, 세차게 뛰고 싶은데 발목과 손목에 너무 무거운 돌덩어리들이 붙어있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혼자 집에서 운다. 배우지망생인 나는, 그 감정을 기억하고 싶다며 아이폰 카메라를 켜고 삼각대에 고정시켜서 대사를 읊어본다. 그럼 카메라 세팅 시간에 소모된 내 감정이 사라져서 아쉬워한다. 그렇게 이상한 감정 우물에 빠진 나.

  더이상 나를 이렇게 내팽겨칠 수 없는데.


  뜬금없는 2월의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알바 끝나고 홀로 전시회를 갔다. 혼자 전시회를 가는 편은 아니고 늘 전시회 감상하는 것을 취미로 두고 싶긴 했으나 극심한 계획형 J인 내가, 무려 '즉흥적'으로 혼자 놀아본 것이다. (크리스토프_그림 깨우기 전시) 

  요즘 계속 사람들을 피하고, 혹여나 만날 때면 억지로 행복한 척 웃는 내가 가면에서 벗어나 강해지고 싶었다. 그래 나는 강해지고 싶다. 더이상 사랑 때문에 맨날천날 울고 슬퍼하지 않는, 돈 없고 능력 없다고 한탄하며 구석에 숨지 않는, 친구들 앞에서 약해지지 않는, 지인들 앞에서 밝은 척만 하지 않는, 강한 마음으로 단련시키고 싶다.


  

  크리스토프는 작품에서 "모험을 이야기하지 않고, 이야기를 모험한다."고 그러더라. 

  그림 볼 줄 모르는 나는, 늘 이야기를 찾으려고 애쓰며 두 눈에 힘을 주곤 한다. 크리스토프 전시가 내 눈에 힘을 살짝 풀어주었던 것 같다. 

  그저 바라보다가 생겨나는 이야기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듯 하였다. 

  인생도, 의미/ 목표/ 꿈/ 사랑/ 연애/ 가족/ 성격/ 능력 등 찾아서 손에 쥐려고 애쓰지말고, 살아가다 생겨나는 이야기면 충분할텐데. 

  말이 쉽지, 늘 깨닫는 그 순간에만 쉽지!



  그래서 전시회를 보러 즉흥적으로 떠난 날부터 시작되었다. D-30챌린지. 윤방이. 아직 너무 여리고 약한 내가, 더이상 어둠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걸 멈추고 육지에 두 발 똑바로 서기로 마음 먹었다. 매일 매일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새로운 도전을 한 개씩 하겠다고. 현재 유투브(채널: 윤방이)와 인스타그램(@uuunbang)에서 업로드하며 그걸 발돋음 삼어서 꾸준히 하자고 밀어붙였다. 과연 내가 강해질 수 있을까? 시작이 반이라지만... 매일매일이 시작인 인생에서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을테지만, 나는 이미 나의 등을 육지로 밀어냄을 선택했다.



FROM. 윤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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