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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방이 Mar 01. 2024

D-29 술 없인 못살아

하루에 하나, 새로운 도전, 술?

네가 있는 곳에 나도 함께 갈게_에일리 노래 中

음주를 사랑하던 전남친


  작년에 이별했다던 나의 전남친은 술을 아주 좋아했다. 2년을 사귀면서 거의 매일, 적어도 일주일에 3~4번은 즐겼던 것 같다. 혼자도 자주 마시고, 친구들과도, 나와도 자주 마셨다. 나는 술을 딱히 좋아하진 않던 사람이었다. 심지어 파릇파릇한 대학교 신입생일 때, 그 활발하다던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고서도 술자리를 1년에 5번도 가지지 않았던 것으로 통계할 수 있겠다. 웃기게도 그런 내가 술친녀가 되었다. (*술친녀 = 술에 x친 여자) 이렇게 표현하고 나니 수치스럽지만, 사실이다.

  남자친구가 술을 좋아하는 모습에 나는 그 사람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이 있었나보다. 그렇게 욕심 부리지 않았어도 잘 맞는 부분이 꽤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랑에 눈이 멀었다. 전남친과 데이트를 할 때, 술이 빠진 적이 10일은 될까. 어머나 세상에, 이렇게 곱씹어보니 거의 연애하는 내내 사랑에 취했다기 보다는 진짜로 취해있었다고 볼 수 있었겠군.


  그렇게 나는 술이 없으면 안되게끔 신체가 세팅되었다. 힘든 일이 있어서 술을 찾고, 기쁜 일이 있어서 술을 찾고, 기념할 일이 있어서 술을 찾고, 심심하다며 술을 찾는 술도 못 마시면서 그런 청춘을 보내게 되었다. 심지어 다이어트 해야한다면서 빈 속에 알코올을 들이키기도 했을 정도다. 알코올 중독이었구나, 나. 술을 즐길줄 아는 사람이 된 그 시작은 전남친의 영향이 맞지만 그 모든 선택들은 당연히 나의 몫이었다. 결국 누굴 탓해서는 아니 된다. (라고 글 쓰면서 탓하고 싶은 감정을 겨우 겨우 억눌렀던 작가 윤방이)

  건강이 악화되어 이곳 저곳 나의 세포들이 내게 욕을 퍼붓고서야 결심했다. 술을 줄이기로. 작년에 술자리를 줄이면서 나는 깨끗한 하루의 일상을 참 오랜만에 겪는 해가 되었다. 그치만 마음은 한동안 좋지 못했다. 여전히 음주를 사랑하던 나의 전남친은 술자리가 비교적 터무니없이 많았기에, 약하고 어린 나는 그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음이 찌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예 금주를 하진 못했다. 술자리는 재밌고, 힘들 때마다 자꾸 떠오르는 취한 느낌을 완전히 없애지 못했기에. 음주에 관한 문제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최근에 긴급하게 깨달은 가장 큰 문제가 있더라. 바로 나약해진다는 것. 취기가 올라오면서 지인들에게 약해져 입방정을 떨게 되고, 다음 날 일어나면 어제 술 먹은 핑계로 하루를 알차게는 커녕 당연히 쉬어줘야 한다는 생각 뿐이고. 술자리를 조금 줄여서는 이 끔찍한 나태함에서 빠져나올리가 없음을 깨달았다.




새로운 도전, 하루에 한 개 씩

D-29 강한 사람 되기 프로젝트


  어제는 (D-30)홀로 전시회를 갔고, 오늘은 (D-29)혼술을 택했다. 술 줄이는 걸 택할 줄 알았더냐! 허허허! 농담이다.

  오늘 도전한 게 혼술은 맞다. 집에서 와인 한 잔만 마셨다. 나는 술의 맛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술에 취하는 걸 완벽히 좋아하지도 않더라, 최근에는. 마음만 약해지는 취한 내 모습이 특히나 요즘은 더 싫다. 그렇게 약해지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들고, 정도 잔뜩 주고... 요즘의 나의 취지와는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무얼까? 그래, 나는 시간을 채우고 싶은 것이다. 공허함을 달래주는 나의 여백을 술로 잠시 시끌벅적하게 채우고 싶은 것이다.


Youtube_윤방이

Instagram_@uuunbang


  그래서 혼술을 하면서, 다짐했다. 마실 거면 이렇게 혼자 조금만 찌끄려! 왜냐하면 술자리에 가서 한 잔을 마시면 그 뒤로 술~술~ 폭주해버린다는 것을 잘 아니깐.

  매일 새로운 도전을 한 개씩 하면서, 강한 사람이 되자고 마음 먹은 지 오늘로 2일차다. 오늘 혼술하기 전에 카페에서 일명 '윤방이의 영감 노트'를 펼치고선 어떤 도전들을 할 지 적어보았다. 그런데 어머나, 덜컥 겁이 나는 게 아니겠어. '내가 이걸 도전한다고? 할 수 있겠어...?' '아 괜히 유투브고 뭐고 난리친걸까?' '일주일에 한 개씩도 도전하지 않는 내가, 매일 30일동안 한다고?'



  그렇게 심장이 쪼그라든 채로 15년 째 못 고친 입술 뜯기 버릇을 실행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곤 떠올랐다. '아... 술 먹고 싶다..." 와, 어떻게 이틀만에 이렇게 나약하게 작아져서는, 한다는 생각이 고작 누구라도 불러서 당장의 적막을 깨고 싶다는 마음인걸까. 몇 초, 몇 초 사이에 휙 휙 나는 스스로에 대한 애틋함과 환멸감을 느꼈다.

  그래서 멍청한 짓 하지 말고, 혼자 조용히 집에 가길 택했고, 가던 길에 우연히 내 손에는 와인이 생겼다. 혼자 따지도 못하는 코르크를 40분동안 끙끙대며 아무도 없는 내 방 안에 웃음 소리가 가득했다. 나 혼자 이렇게 잘 노는 아이인줄은 몰랐구나. 그렇게 어렵게 코르크를 열고 한국인 10명 중 10명은 알 법한 명언이 번뜩였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이뤄낼 수 있어!" 그리곤 기뻤다. 코르크 별거 아닌 것 하나, 혼자 포기하지 않고 따낸 것에 기뻤다. 사람들을 불러서 잔뜩 취해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은 오늘이 기뻤다. 몇 시간 전 카페에서 도전 목록을 쓰다 죽상이 된 내가, 단순한 행동에 혼자 웃고 있는 모습이 기뻤다. 그리고 와인 한 잔으론 취하지 않는 몸이 되었지만, 기분은 상기된 채 나는 생각에 잠시 잠겼다. '내일 무슨 도전을 해볼까나?!'



  

  아직 나를 단 몇 문장으로는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나를 찾아가고 있는, 나를 알아가고 있는, 원하는 인생을 꿈꾸고 있는, 나의 청춘 2024년. 나는 생각이 많다. ADHD를 잠시 의심해볼 정도로 이 생각 저 생각이 머릿속을 마구 휘젓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단순하고 쿨한 사람들을 무진장 좋아하고 동경한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 친언니. 나보다 7살 많은 그녀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단순하고 쿨할까 싶을 정도로 간단명료하다. 그래서 주변에 친구가 엄청나게 많더라. 성격이 너무 좋으니깐 한번 만난 인연일지라도 그녀를 쉽게 놓아주지 않으려 한다. 그녀와 가족이어서 행운이다.

  그런데 몇십년을 살아온 방식이 온 몸에 베여있기에 내가 달라지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을 땐 이미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우리 언니와 나는 서로가 서로를 신기하게 바라본다. 어쩜 이렇게 다를 수 있냐고. 언니의 수많은 점이 좋지만, 그 중에서도 늘 유머를 잃지 않기에 생기는 특유의 긍정적인 모습이 가장 닮고 싶다. 장난이 지나칠 때도 있지만(?) 그 지나친 모습조차 언니의 성격을 부럽게 한다.


  그런 나도 이제 많이 성장했지만, 오늘같이 겁이 덜컥 나버린 날에는 단순해지기 쉽지 않은 날이었을테다. 분명 생각이 많아져서 집에 혼자 앉아 멍 때리고 있어야 할텐데, 와인병 따내겠다며 혼자 히히덕거리며 역도선수 소리를 내고 있지 않은가. 이런 내 모습을 인지한 뒤, 또 그걸 인지한 게 웃겨서 히히덕댄다. 진지함과 걱정 속에 휘말리지 않고, 나는 나의 단순한 행복에 빠진채로 자연스럽게 '내일의 도전(D-챌리지)'를 생각하고 있더라. 이런 내가 좋았다. 간만에 내가 '나'로 태어나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참 그런 생각을 자주 하던 시기가 있곤 했는데, 어쨋든 오랜만에 미소가 자욱해졌달까.


  우리는 매일 매일 억지로 도전과 새로움으로 가득하게 살 수는 없다. 억지로 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곤욕이고 지옥일테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 스스로에게 일주일, 아니 한 달에 몇 번의 이벤트를 부여하는가?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때야, 손 쓰지 않아도 이벤트는 쉽게 찾아온다. 운동회, 백일장, 소풍, 걸스카우트, 수학여행, 수련회 등. 그러나 이제는 나의 인생에서 내가 이벤트를 부여해야한다. 회사, 단체, 친구, 지인, 가족, 연인 말고 나만의 이벤트를 스스로에게 부여해주는 사람이 되길. 그리고는 '다음주는 뭐 하지..!'라는 설레이는 생각에 더 자주 미소 짓는 삶을 사시길.  



From. 윤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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