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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방이 Mar 02. 2024

D-28 저, 음식물 쓰레기 먹어봤어요

한달동안 바싹 강해지기로 한 나의 이야기

내 밑바닥을 마주한다는 것

자꾸 밟히는 그림자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밑바닥을 마주하곤 인생의 쓰디쓴 시기를 마주할 때가 온다. 밑바닥이란 건 나의 일부일까, 나의 전부일까. 실제로 밑바닥을 마주할 때는 그것이 마치 나의 전부 같다. 내게는 이런 쓰레기 같은 모습밖에 없다는 허무함과 무능력감이 온 마음을 뒤덮게 된다. 하지만 마음이 괜찮아질 때 다시 생각한다. 생각보다 나에겐 장점도 많고 쓸만한 인간이란 것을. 그래서 밑바닥을 그림자라고 비유하여 생각해 봤다. 어둡고 칙칙한 그림자. 떨어지려고 발버둥 쳐도 놀리듯이 나를 따라 움직이는 흑색의 나. 우린 그러한 밑바닥을 마주했을 때, 과연 그걸 떨어뜨리려 애써야 할까?

  예술을 하고 싶다며 대구에서 올라온 지 7년 차가 되었다. 아직 젊고 어리고 약한 나는, 한때 생활에 쪼들리며 살아가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커피 한 잔 마시며 노트북을 두들길 상황은 되지만 여전히 카페도 고민하며 4500원짜리 아메리카노가 아닌 19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파는 곳으로 선택한다. 생활에 쪼들리면 치졸한 후회를 한다. '아, 저번 달에 먹었던 얼큰 순대 국밥... 왜 내가 반공기를 남겼을까!'


  그때 난 돈은 없고 배는 고프고 일은 없었다. 단기알바를 하며 주마다 버티고 있었는데, 방학기간 때문인지 갑자기 일자리가 뚝 끊겼던 것이다. 돈 나갈 때가 왜 이리도 많은 지 꿈이고 뭐고 고향으로 잠시 피난 가고 싶었다. 고향 갈 돈도 없다. 이제 나 혼자 잘 클 수 있다고 떵떵거리던 어머니에게 전화하면 내게 실망할까 두려워 말하지 못했다. 그날따라 유독 배가 너무 고팠다. 하루 굶는다고 해결되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서 하얗게 텅 빈 냉장고를 살펴보다, 냉동실에 얼려둔 음식물 쓰레기가 있었다. 그 순간, 내가 처음 든 생각은 결코 스스로가 불쌍하거나 수치스러움 따위가 아니었다. 내가 먹을 걸 찾았다는 것에 기특했달까. 다행히도 그 쓰레기는 2주 전쯤 친구들이 놀러 왔다가 남기고 간 떡볶이었고, 다른 음식물과 섞진 않았다. 단무지와 단무지국물과 튀김과 먹다 남은 주먹밥과 떡볶이 정도 적절히 섞여있었다. 7분간 전자레인지는 열심히 내 요리를 데웠고, 웃기게도 집안에는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지더라. 그렇게 나는 초간단 냉동요리를 맛있게 먹었다. 허겁지겁 다 먹고 보니 배도 든든히 불러왔다. 한 시간, 두 시간 즘 지나자 더부룩한 속이 서서히 소화활동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방 안에 홀로 생각에 잠긴 그때의 나는 아무 신음소리 내지 않고 눈물을 흘렸다. 처음에는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고, 점점 불쌍하다는 생각으로 나를 쓰다듬더니, 이런 내게 위로는 독이라며 화가 났다. 그렇게 점점 스스로에 대한 환멸감이 목구멍을 간지럽히더니 그 순간부터 변기통이 뚫리듯 소리 내어 펑펑 울었다.

  나는 이 날 나의 아주 어두운 밑바닥을 마주한 것이다. 그림자는 내 모습과 너무 닮아있어서, 이렇게 눈물이 앞을 가리는 날에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나는 내 불안한 미래와 어두운 모습만을 보고 구석으로 숨게 된다. 아무도 내 그림자가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지 않길 바란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감추고 싶어 진다. 그렇게 나는 내 그림자에게 분을 칠하고 립스틱을 바르고 웃게 한다. 실제로 검은 그림자에게 화장을 시키면 소름 끼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소름 끼칠 정도로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게 된다.


  한참을 지난 뒤에야 비로소 조심스럽게 깨달을 수 있다. 내 모습은 이게 전부가 아닌데! 그리고 누구나 단점 하나쯤, 그림자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텐데 이 청춘의 시기를 약한 마음으로 웅크리고 싶지 않다고! 그 깨달음은 말이 쉽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특별한 순간에 찾아오는 생각도 아니다. 그저 내가 더 좋은 사람, 좋은 인생, 행복감을 느끼고 싶은 작은 의지 하나, 작은 불씨 하나 켜졌을 때 떠올릴 수 있었다.

  꿈도 목표도 사랑도 돈도 생활도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잘 되는 일이 없는 나에게 남은 작은 희망이던 나의 장점은, 무슨 일이든 열심히 임하는 태도였다. 늘 열심히 하고, 집요하게 작업하던 나를 좋아해 주는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가족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렇게 집요하게 집중하는 내 모습이 거울 보듯 선명히 떠올랐다. 그래서 그 희망을 다시 잡기로 생각했다. 그 밖에 내가 당시에 떠올리지 못한 장점들도 더 있었지만, 나는 오로지 그 작고 작은 희망을 꼬옥 품어보았다.

  지금의 상황이 결과라고 본다면 나는 그림자에 코를 박고 쳐다보기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를 끈질기게 과정으로 보려고 노력한다면 다시 살아갈 의지가 생기는 것 같다. 아직 그렇게 휙 휙 전환하기에 나는 너무 약한 존재이지만, 이번 기회에 내가 강해질 수 있는 마음들이 잘 생겨나면 좋겠다. 나의 그림자를 마주했다고 해서 내 어둠에 잠식되지 않기를.



  D-28 강해지기 위한, 새로운 도전 하루에 하나씩. 그 3번째 도전은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내 옆에서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던, 늘 나와 웃고 떠들던, 나의 어떤 모습이든 함께 어울렸던 그 시절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한 명은 못 본 지 10년은 훌쩍 넘어버린 초등학교 절친이다. 내가 경상북도 성주군에 살 때 매일 손 잡고 운동장에서 술래잡기를 하던. 다른 한 명도 10년 넘게 못 본 중학교 절친이다. 성주 살 때 전학 가기 전, 그 친구 주도하에 촛불 이벤트는 눈물의 이별이 되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늘 쉬는 시간마다 찾아와 내게 망고젤리를 먹여주고 한바탕 수다 떨던 대구 친구. 그리고 현재 내게 가장 든든한 서울에서 만난 친구. 네 명의 친구에게 보이스피싱이 아니라며 인증샷을 찍어서 주소를 얻어냈다. 다행이 그 주소로 나쁜 짓을 하진 않았어 친구들아. 우편봉투에 선생님이 된 친구, 간호사가 된 친구, 배우가 된 친구, 성우가 된 친구. 이렇게 너무 다양한 네 명의 역대 절친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나니 내 인생에 대한 감사함이 커졌다. 슬퍼하고 외로워하기에는 당당하게 내 옆을 채워주었던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여전히 내 옆에는 늘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되었다.

  마음이 강해지기 위해서 앞으로 어떤 노력들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내가 마음이 강해졌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의 도전은 내 온몸을 따뜻하게 데웠다. 워밍업과 준비운동은 늘 중요하니깐! 내가 '나'이기에, 나만의 인생이기에 참 다행인 오늘의 도전이었다.



From. 윤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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