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생과 여행 갈 결심이 서도록 해준 회사에게 감사합니다 -
「 6월 6일 ~ 6월 7일, 숙소 예약 확정. 이제 절대 무르면 안돼 」
4월부터 6월까지의 나는 폭발 직전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회사를 잘못 만나도 너무 잘못 만났다. 좋게 말하면 둥글둥글하고 나쁘게 말하면 둔한 내가 죽고싶을 만큼 괴로워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왠만하면 가족들한테 내 속 이야기나 일 이야기는 안 하는데, 전화를 붙잡고 동생에게 이 회사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열변을 토해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동생은 회사에서 질질 끌지 않게 여행 날짜를 잡고, 바다라도 보러 가는 게 좋다는 답변을 내놨다.
십여년 간 일을 하면서 내가 여행을 간 경험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주변에 동료 작가들은 일을 그만두면 부리나케 해외로, 국내로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말이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 내가 집 근처도 돌아다니기 싫어할 정도로 어마무시한 po집순이wer이라는 점
- 왠만하면 어떠한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때문에, 굳이 힐링여행을 하며 해소할 필요가 없다는 점
- 좋은 자리가 생기면 곧바로 투입해서라도 일을 하며 좋은 경력을 쌓고 싶었던 왕욕심쟁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이 회사에 하루라도 더 있으면 죽을 것 같았다. 내가 걱정됐는지 주변 사람들이 매일매일 살아있느냐고 연락을 해올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힘들 땐 = 여행 이라는 답변이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스위치가 눌려서 (그 뒤에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퇴사를 하고 여행을 가겠노라 결정했다.
두 살 터울의 동생과는 참 지지고 볶으면서 자랐다. 어릴 땐 서로의 영역을 침범해서, 안 치워서, 짜증나서 등등 사소한 이유들 때문에 치고 박았다. 그러던 중에 나는 대학 졸업 후 자그마한 외주 제작사에서 방송작가 일을 시작하면서, 점점 얼굴 볼 새가 없어졌다. 동생은 동생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내느라 바빴다. 그리고 2년 후엔 내가 어쩌다 독립을 하면서 처음으로 떨어져 살게 됐다. 그로부터 동생에게 시시때때로 연락이 온 것은 오년 후 즈음이었다.
나는 원래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거나 자주 연락을 하는 타입이 아니었고, 그건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아파서 방에서 뒹굴거나 병원을 간 적도 있었지만 부모님에게도 이야기하진 않았다. 본가에서 자취를 하는 곳까지 오려면 제법 먼 거리기도 했고, 부모님의 시간을 뺏기게 되니까. 무엇보다도 큰 딸내미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어떻게든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 시절의 나는 방송 경력을 쌓으려고 아둥바둥 살고 있었다. 몇 날 며칠밤을 새고 있을 때, 선배에게 호되게 혼났을 때, 막대한 양의 원고를 쓰느라 지쳐있을 때. 그런 때마다 종종 동생은 카톡으로 연락을 해오곤 했다. 대화 내용은 다양했다. 본인이 키우는 고양이 자랑(대화 내용의 8할), 직장 고민,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등.
우리는 사이가 그렇게까진 좋지 않은 친구처럼 때때로 대화를 나눴고,
함께 살 때보다 훨씬 친해졌다.
우리 사이는 더더욱 발전해서 둘이 술을 먹기도 했고, 동생이 본인 집에 나를 초대해서 밥을 먹기도 했다. 그리고 한쪽이 지나치게 힘이 드니 여행을 가자라는 말까지 나오는 사이가 됐다. 어쩐지 조금 친한 친구가 생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동생과 함께 가기로 한 여행지는 강릉이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맛집을 잘 아는 친구에게 이곳저곳을 추천받아서 리스트도 만들었다. 그렇게 동생이 운전해주는 차에 올라타서, 우리는 강릉으로 떠났다. 비록 나는 다다음 날까지 넘겨야 할 원고가 있어서 차 안에서, 호텔 안에서도 노트북을 붙잡고 일을 하곤 했지만 말이다. 우리는 서먹해서 할 이야기가 없을 줄 알았는데, 좋아하는 노래, 재밌었던 유튜브 영상, 최근 근황 등에 대해 이야길 하며 도로 위를 달렸다.
강릉에 도착해서는 중앙시장에 들러서 맛있기로 소문난 먹거리들을 샀다. 중간에 발견한 맛있어 보이는 빵집에 가자고 졸라도 동생은 순순히 따라와줬다. 예전 같았으면 웨이팅이 싫다고 서로 짜증부터 냈을 것이다. 우리는 바다뷰가 보이는 고층 호텔에 숙소를 잡았다. 몇 년간 떨어져 있어서 몰랐는데, 우리 자매는 둘 다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해서 방에서 보이는 바다뷰를 수십컷이나 담았다. 호텔 바로 앞 바다에 가서도 수십 장씩 사진을 찍었다. 또 내가 맛있는 밥 냄새를 맡은 것 마냥 호텔 내부에 있는 오락실로 스르르 들어가자, 동생도 호기심을 보이며 따라왔다. 우리는 거기서 승부욕을 불태우며 신기록 깨기에 매진했다. 또 게임하는 서로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강릉 현지인들이 간다는 맛집을 추천받아 갔어야 했는데 우리는 그럴 기력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호캉스를 온 것처럼 룸서비스를 시켜서 맥주랑 즐겼다. 명물이라는 장칼국수도 맛집을 찾아놨지만 시간도 없고 피곤해서 그냥 호텔 1층에서 먹었고, 유명한 카페에도 들렀는데 사람이 많으니 근처 카페에 가서 비슷한 커피를 마시는 걸로 대신했다. 기존에 세웠던 여행 일정 리스트를 깡그리 무시하는 격이었지만 누구 하나 불만을 표하지 않았고, 만족스러워했다.
만약 독립하기 전이었다면 단 둘이 여행은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는 서로의 목소리만 들어도 짜증을 내던 시기였으니까. 하지만 동생도 나도, 그때보다 더 자랐다. 이해심, 표현 방식 등 모든 것이 전부 다. 또 동생은 먼 지역까지 운전을 할 수 있을 만큼, 그리고 나는 이것저것 즐기는데에 돈을 척척 낼 수 있을 만큼 말이다.
30여년 만에, 그리고 오랜 시간 떨어져 있어서 안 사실이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비슷하고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