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다큐멘터리 연출을 전공했고 평생 다큐만 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언론사 기자로 일하고 있네요.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사람 일이더군요.
이제 영화 <삽질> 제작에 참여한 24개월이란 시간을 글로 풀어보려 합니다.
총 3편의 짧은 글이지만 그간의 시간에 대한짧은 회고이기도 합니다. 자, 그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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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4일), 드디어 오마이뉴스의 첫 영화 <삽질>이 개봉했다. 지난 5월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 이후 6개월 만이다.
하늘이 유난히 푸르던 지난 5월, 나는 전주에서 올라오는 버스 편에서 전주국제영화제에서의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다. 부족한 인력으로 갖은 고생을 함께 하며 달려왔던 제작진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행복했던 전주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영화 <삽질>의 추억을 찬찬히 되짚어본다.
나는 영화 <삽질>의 연출B(주된 역할은 취재한 자료를 세밀히 영상 언어로 녹여 시각화하는 일,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럴듯해 보이겠다)를 맡았다.
처음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국책사업이었던 '4대강 사업'은 대체 무엇이냐는 의문에서 참여한 프로젝트.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이 영화의 감독이자 선배 기자인 김병기 감독과 함께 두 번의 사계절을 강에서 보냈다. 그렇게 조금씩 알아갔다.
[2017.11.1] 첫 만남
▲ 오마이뉴스와 4대강 독립군이 영화 <삽질>의 첫 기획 회의를 하고 있다. ⓒ 안정호
"이명박 정부의 한반도대운하부터 4대강 사업까지 우리가 끈질기게 쫓았던 전 과정을 영상으로 제작해 보기 위해 이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오마이뉴스 대전충남지부 사무실. 사각의 작은 책상 두 개를 이어붙여 둘러앉은 자리에서 꺼낸 김병기 감독의 첫 마디가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그 자리엔 '금강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생태보존국장, 이철재 에코큐레이터가 함께 했다. 정확히 2년 뒤인 지난 11월 1일 <삽질> VIP 시사인 '삽질데이'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처음 계획은 5분짜리 7편의 미니 다큐였다. 4대강을 지키기 위해 저항했던 사람들, 수조 원의 국민 세금을 들여 강을 훼손했던 당시 이명박 정권과 그 주변에서 호가호위했던 학자와 정치인들, 그리고 망가진 강에 대한 이야기를 편당 5분짜리 다큐에 담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고민에 고민이 이어졌고, 수정에 수정을 반복했다. 그렇게 각각 20분 내외의 5부작 미니 다큐 <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 >이 세상에 나왔다.
▲ 오마이뉴스 기획 5부작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 오프닝 화면 ⓒ 오마이뉴스
같은 해 11월의 금강은 매우 찼다. 가슴 장화를 신고 삽을 든 채 거침없이 강에 들어가 시커먼 펄을 떠주는 김종술 시민기자를 따라 들어간 금강은 거대한 보로 인해 물이 흐르지 않았다. 흐르지 못한 강에 생긴 펄 때문에 장화는 둘째치고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었다. 맨발로 겨우 몸만 빠져나온 강가에서 김종술 시민기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큰빗이끼벌레를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뜯어서 (입에) 넣었는데 시큼해요. 구역질이 나고. 그 느낌은 지금도 있어요. 계속 구역질이 나고 토하고. 그래서 세 번을 씹고 삼켰어요. 처음에는 이상이 없었죠. 한두 시간이 지나니까 몸이 가려워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몸을 긁었죠. 그리고서 두통이 밀려오기 시작하더라고요. 머리가 깨질 듯 아팠어요. 그래서 강변을 거의 막 떼굴떼굴 굴렀어요. 그리고 강변 물로 벅벅 씻었죠. 씻고 긁고 씻고 긁고 해도 죽겠더라고요. 그런데 그 기사가 송고된 후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게 뭐냐. 큰빗이끼벌레가 뭐냐."
▲ 김종술 시민기자가 큰빗이끼벌레를 들고 있다. ⓒ 안정호
▲ 4급수 지표종의 붉은 깔따구금강에서 발견된 4급수 지표종의 붉은 깔따구 ⓒ 김종술
그는 4대강 사업 이후 금강의 생태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했다. 특히 4대강 사업 준공부터 2016년까지 큰빗이끼벌레 같은 낯선 생명체부터 최악의 수질 4급수 지표종인 붉은깔따구까지 금강의 수질은 점차 최악으로 치달았다고 한다. 이런 변화는 낙동강도 예외는 아니었다.
첫 기획 회의 이후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생태보존국장을 두 번째로 만난 곳은 대구의 강정고령보 인근이었다. 강가의 물고기 사체를 손으로 들어 보여준 그는 4대강 사업이 1300만 영남인이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낙동강을 망치고 있다며 걱정했다.
"4대강 사업 이후 특히 여름에 심각한 녹조가 발생함으로 인해서 많은 시민이 강의 변화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여름에는 물론이고 강에 나가면 악취라든가, 녹조 때문에... (시민들이) 4대강 사업의 폐해를 눈으로 쉽게 목격을 하게 되죠.
한참 녹조가 필 때 (강가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강 아래쪽에서 몽글몽글 이렇게 (녹조가) 증식을 하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그걸 보면서) 굉장히 공포스러운 기분에 휩싸인 적도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마셔야 하는 강물, 강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었기 때문에 그 모습이 굉장히 끔찍했죠."
▲ 강정고령보 인근 강가에서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국장이 물고기 사체를 들고 나오고 있다. ⓒ 오마이뉴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국장이 낙동강에서 녹조물을 뜨고 있다. ⓒ 오마이뉴스
금강과 낙동강의 첫 촬영을 마치고 올라오는 차 안에서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기사로만 접했던 붉은깔따구와 녹조,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외치던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만으로는 다큐의 완성도를 높이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이 망가지면서 고통받은 이들이 있다면 그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 이들도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사무실로 복귀해 김병기 감독에게 결과물에 대해 보고한 뒤, 함께 제작 방향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4대강과 관련해 물어야 할지 고민하던 제작진들은 2017년 11월 당시 바레인 방문을 마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귀국 예정 기사를 접했다.
4대강 사업의 시작과 끝을 있게 한 사람을 찾아가 묻는 것이 다큐를 가장 쉽게 풀어낼 수 있는 해결방법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우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2017.11.15] MB, 그에게 던진 질문
▲ 김병기 감독이 인천국제공항 VIP 입국장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김병기 감독은 준비한 질문을 최종 체크했다. 김 감독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4대강 사업 관련 오랜 취재 과정이 녹아 있는 질문을 몇 번이고 되뇌는 그의 모습에서 약간의 긴장이 느껴졌다.
우리가 인천국제공항 VIP 입국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많은 취재진과 이 전 대통령의 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시위대 20여 명이 자리를 잡은 터라,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는 영화의 오프닝 장면으로 나오기도 한다.
나와 조연출이었던 안민식 기자는 현장에 도착해 김병기 감독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던질 질문 멘트와 예상 촬영 동선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공식적인 취재 현장에선 1~2명의 기자가 대표해서 질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야 취재 현장이 혼잡하지 않고 카메라 기자와 사진 기자들의 취재가 용이하다.
하지만 우리는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진행한 제작 회의에서 포토라인(신문·방송사의 기자들이 취재 편의를 위해 접근하지 않기로 합의한 사진 촬영지역)을 깨고 선배가 직접 질문을 하자고 협의를 했다. 우리가 반드시 들어야 할 말은 4대강 사업에 대한 이 전 대통령의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비행기가 도착했다는 주변 기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정색 중형차 한 대가 입국장 출입구에 바짝 붙어 대기했다. 그렇게 30분이 흘렀다. 마침내 사진기의 셔터 소리가 시작됐고 그토록 기다렸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얼굴을 드러냈다.
"4대강 사업, 사과하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경호원의 저지에 밀리고 밀리면서도 끝까지 질문을 던지던 김병기 감독의 목소리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이 전 대통령은 "날씨가 추운데 수고가 많다"라는 짧은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2019년 현재] <삽질>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 영화 <삽질> 포스터 ⓒ 엣나인필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그에 저항한 사람들.
영화 <삽질>은 4대강 사업 저항자들과 찬성자, 양쪽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작한다. 4대강 사업이 시작될 당시 나는 사회문제에 큰 관심이 없는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국민의 반대에도 '22조 2천억 원 규모의 초대형 국책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어떤 큰 문제를 야기할지 알지 못했다. 또 '불도저식 사업 진행으로 강이 망가져 간다'는 뉴스를 접하면서도 '강'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미처 생각하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30대가 된 나는 2년간 전국의 강을 돌면서, 그리고 4대강 사업 이후 남겨진 사람과 자연을 마주하면서 강이 주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물론 우리의 삶에 '강'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정의하긴 쉽지 않다. 30대 중반인 나에게 강이 당신 인생에서 무엇이냐 묻는다면 <삽질>의 제작 전엔 "어떤 의미도 없다"라고 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작을 마친 지금 다시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보충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기도 하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