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좀 제발 놔두시오
판데믹 이후로 집에서 밥을 해먹는 일이 잦아졌고 이제는 꽤 훌륭하게 집밥을 만들고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음식까지 뚝딱 만들어내곤 하는 내가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변화를 불만없이 받아들이게 된 건 다 유튜브 덕이다. 사진과 글만으로 이루어져 뭔가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 블로그에서 벗어나 이제는 생생한 영상으로 정보를 얻을수 있으니 훨씬 사실적이고 정확도가 높다고 볼수 있다. 특히 요리, 운동, DIY, 자동차나 전자제품리뷰 등 사진만으로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분야를 유튜브는 착실히 파고 들었고 심지어 방송에서 다루기 곤란한 다소 개인적인 의견, TV에서 다루지 못하는 애매한 주제(음주 등)들도 개인방송이라는 개념의 유튜브는 허용이 되므로 이제는 거의 모든 것을 유튜브가 다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실제로 유튜브로 새로운 걸 배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는 백종원 유튜브를 즐겨본다. 내가 지금껏 요리하면서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가 아마 '백종원'일 것이다. 요리를 쉽게, 동시에 맛있게 하는 방법을 설파하므로 요리에 흥미가 없어도 따라하기 어렵지 않고 한국사람들이 즐겨 먹을만한 아이템들은 거의 그의 유튜브에 있다고 보면 된다. 방송 초반에 설탕과다사용으로 논란도 있었지만 김치찌개도 미역국도 앞에 백종원을 붙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라해보는 신뢰의 아이콘다. 그는 더이상 소유진의 아내가 아닌, 한국 요식업계의 큰 인물로 요식업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정에서 쉽게 음식을 즐길수 있도록 '요리'라는 다소 거창해보이는 장벽을 허물고 간단하게 맛을 내는 기발한 방법들을 소개함으로써 여자들은 물론 남자들도 요리를 하게 만들었다는 점은 누구도 이의가 없을것이다.
사실 백종원의 유튜브 구독자는 어마어마해서 굳이 구독자를 늘리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소재 다양화를 위해 최근에는 혼자 사는 자취생을 위한 집종원, 지방 곳곳의 재래시장에 숨어있는 맛집들을 보러 다니는 '님아 그 시장을 가오'등 새로운 컨셉의 유튜브를 시작했고 이미 지방의 재래시장 3-4군데를 들른것 같다. 접근 자체가 신선하기도 하고 교통이 조금 불편할수 있지만 맛을 찾아가는 여행자에게 좋은 정보고 식당 사장님께도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될수 있으니 여러모로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사실 맛집 프로그램도 점점 진화해서 처음에는 요리를 심사하는 프로그램으로 시작, 사람들이 제법 알만한 4대 천황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보다 더 작은 골목골목에 작지만 숨겨진 맛집들을 소개하더니 나중에는 장사가 잘 안되는 식당을 컨설팅을 통해 변화시켜주는 프로그램까지 다양하게 변화해 왔고 그 속에 백종원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과정속에서 맛집이 더이상 맛집이 아니게 되는 부작용도 일어나는데 한두명이 소규모로 운영하거나 부부, 가족단위로 꾸려가는 식당이 맛집프로그램에 소개되고 일반인, 유튜버 할것 없이 몰려가고 응대할수 있는 숫자보다 많은 손님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다보니 서비스 질도 저하되어 음식 맛도 떨어지게 되면서 원래 오던 단골들도 잃고 새로운 고객들도 잃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게 된다. 게다가 악질 유튜버들이 식당에서 갑질을 하거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비방하거나 악플을 다는 등 차라리 유명해지지 않는게 좋을뻔 한 상황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차라리 큰 관심을 받지 않았다면 그냥 그렇게 가늘고 길게 갈수 있었을텐데 원했든 원치 않았든 방송이나 미디어에 노출된 것이 오히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격이 되어 버렸다.
얼마 전 백종원의 유튜브는 지명도 생소한 경북 군위에서 연탄불에 생선구이와 닭고기를 부위별로 구워서 파는 식당에 가게 되는데 사장님은 백종원과의 대화에서 자식들이 직장에 다니고 본인은 하루 종일 연탄불 앞에서 굽다보면 건강도 해치게 될까 봐 힘닿는데까지 하다가 그만하려고 한다는 얘길 쿨하게 했다. 얘길 들어보면 식당도 오래 하셨고 자식들도 장성해서 그런가 더이상 식당에 큰 미련도 없어 보였고 굳이 이 먼 곳까지 오지말라는 패기(?)까지 보여주셨으나 방송 후에 손님들이 몰려올것이 자명해 보였다. 백종원이 맛난다고 하는걸 보면 맛집인가 본데 과연 손님이 문밖까지 줄서서 기다리는 장면을 사장님은 원하실까? 돈이 싫은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더이상 발바닥에 땀나도록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일하게 하는게 과연 순기능인가.
방금 쌓여있는 유튜브 알림을 확인해보니 백종원 방문 후 군위시장 식당사장님의 바쁜 일상이 업데이트 되었는데 전국 각지에서 온 손님들로 정신없는 상황임에도 사장님 부부는 묵묵히 연탄불 앞에서 닭고기와 생선을 굽고 계신다. 매출도 늘고 즐겁겠지만 유튜브 출연 후 너무 바빠서 눈뜨면 아침이고 다시 눈뜨면 다음 날 아침이라는 사장님의 인터뷰를 다시 곱씹어본다. 주변사람들과 일체 교류하지 않고 철저하게 은둔자로 살아가는 파트리크 쥐스킨트 소설의 주인공 좀머씨가 떨어지는 우박을 맞으면 걸어가는 중에 그가 걱정되어 우산을 주려는 주변 사람들의 호의마저 거부하며 '나를 좀 제발 놔두시오' 라고 했던 말이 공감가는 이유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