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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Mar 19. 2023

봄이 쏟아지고 있다

각자의 봄을 피우는 존재들

담벼락에 쇠창살이 뾰족뾰족 솟아 있다. 창살 끝은  화살촉처럼 날카롭고 창살과 창살사이에는 동그라미 문양과 하트모양의 장식도 되어 있다. 방범의 목적으로 세웠을 텐데 그냥 지나치지 않고 미적 감각을 발휘해 놓았다.      

일반 가정 주택인데 굴뚝이 있는 집이 많다. 문만 열려 있으면 들어가 보고 싶다. 아파트에 살다 보니 다른 집과 똑같은 구조가 심심하다. 아파트는 내부 인테리어나 가구등으로 다른 집과 차별화가 생긴다. 방의 배치나 주방, 욕실의 위치는 변하지 않고 모두 똑같다. 주택은 땅의 형태에 맞게 오밀조밀 들어 있는 건물이 흥미를 당긴다. 경사가 진 곳에 집을 지을 때와 평지에 집을 짓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한정된 대지에 맞추어 필요한 요건들을 집어넣는다. 창틀모양도 다르고 방문의 형태도 다르다. 어느 집은 나무로 창틀이 되어있고 유리도 불투명인 집도 있다. 아파트는 동일한 회사에서 찍어 나온 새시로 이루어져 있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조금의 변화가 있긴 하지만 거기서 거기다. 주택을 허물기 전에 대문을 통해 마당을 밟고 마루에 올라서 방문을 열어보고 싶다. 나의 바람은 대문에 굳게 걸린 쇠사슬로 인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재개발 지역으로 발표가 난 후에도 몇 번이나 시행사가 바뀌기를 반복하는 지역이다. 건물은 거의 비어 있고 어쩌다 한 집 정도 살고 있는 흔적이 보인다. 흔적이라야 빨랫줄에 널린 옷가지들, 마당에 있는 세간살이들, 에어컨 실외기가 가장 강력한 표시이다. 빈집은 잡초가 대문부터 점령하고 있고 마당에 있는 오래된 자목련은 봄이 왔다고 활짝 피어 꽃송이들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다. 주변 환경이 변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십 년 동안 해 왔던 꽃 피우기를 해내고 있다. 황폐해 보이는 곳에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분홍 빛 동백이 담장너머를 기웃거리고 덤불처럼 보이는 곳에서 진노랑 개나리가 피고 있다. 긴 겨울을 통과하며 보이지 않지만 저희들끼리 수군수군, 뽀시락 댔을 거라 생각하니 기특하고 어여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꼭 눈에 보이는 성과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꽃을 바라보며 관심을 쏟고 살뜰히 보살펴주던 사람이 떠난 후에도 혼자서 제 할 일을 묵묵히 해 내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을 느낀다. 어제와 같은 오늘은 없다. 째깍째깍 초시계가 지나는 순간은 모두 새로운 순간이다.      

잠시 그림을 그리는 동안 오가는 사람은 없고 머리 위에서 온갖 새소리가 들린다. 시끄러울 정도로 자기 목소리를 내며 날아다닌다. 꼬리가 없는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간다. 골목 안에 봄이 가득하다. 저마다의 봄이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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