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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모스 Jan 15. 2020

발표만 하면 목소리가 떨리는 사람들에게

그래 나다 나

며칠 전 글쓰기 합평에서 글을 낭독할 일이 있었다. 나는 나름 글을 소리 내 읽는 데 자신이 있는 편이다. 학생 때 집중이 안돼서 글을 소리 내 읽어 버릇했는데 가끔은 그 긴 글을 한 번도 틀리지 않으면서도 글의 흐름과 뉘앙스까지 살려 읽는 나의 재능에 소름이 돋기도 했다. 정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타고나게 취약한 게 있으니, 발성이다. 내 나약하고 하찮은 발성.


강사님의 부탁에 자신 있게 글을 낭독하기 시작한 나는 글의 초중반 정도부터 수상한 떨림을 감지했다. 어? 이게 뭐라고 떨려? 하는 생각을 하자마자 심장이 본격적으로 세차게 뛰었다. 심장이 나댄다는 말을 그럴 때 쓰나 보다. 아는 사람만 알 텐데, 사람들 중엔 심장이 뛰면 목소리도 같이 널뛰는 사람이 있다. 그게 나다. 나는 염소처럼 목소리를 가늘게 떨며 글을 읽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는 꼭 염소의 메에에- 하는 효과음이 들어가지 않나. 내 목소리를 녹음해다가 당장 그 효과음으로 써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피티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단 스무 명도 안 되는 사람들 앞에서 글 한 바닥 읽는 게 이렇게 떨릴 일인가? 하지만 너무 떨렸다. 목소리가 제정신을 못 차렸다.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 나는 아나운서다, 아니다 그렇게 잘 읽을 필요도 없다, 사실은 다들 내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거다- 등의 심신안정을 위한 다양한 생각을 해봤으나 먹히지 않았다. 심지어는 강사님께 목소리가 떨려서 못 읽겠다고 솔직히 밝히고 중도하차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오 지금 생각해도 그 생각은 최악이다. 아무튼 글을 어떻게 다 읽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사실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났다. 발표를 싫어하는 이유다. 앞에 나가서 발표를 하면 자연스레 목소리가 떨렸는데, 우리 학교의 착한 학우들은 그런 나를 안심시키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발표를 들어줬다. 미소까지 지어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 따스한 눈빛을 받을 때면 뭐랄까... 모르긴 몰라도 내가 지금 확실히 불쌍해 보인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나는 거의 울고 싶을 때쯤 발표를 끝마치곤 했다.  


발표를 하면 염소가 되는 것, 사실 나만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흔한 일도 아니다. 수년간의 관찰로 판단한 결과 열에 셋 정도가 염소가 된다. 대부분은 떨어도 그게 목소리가 떨리는 형태로 나타나지 않고, 적은 경우로 아예 떨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래서 염소러들을 만날 때마다 반갑다. 긴장하면 목이 메어 오는 것, 다잡으려면 다잡을수록 떨리다 못해 우는 소리가 나는 거 그거 제가 알아요, 마음으로 악수를 건넨다.


하지만 확실히 하고 싶은 게 있다. 자동차의 백미러에 보면 -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 - 는 말이 적혀 있지 않나. 그것처럼 염소러들은 보기보다는, 그렇게까지 떨고 있진 않다. 설명하자면 염소 목소리는 떨림의 최고치에 이르러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냥 긴장하면 기본값으로 염소가 된다. 그러니까 그렇게 ‘저 사람 어지간히 떨리나보다’하는 생각으로 안쓰럽게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흑.


염소러들에게도 전할 말이 있다. 어떻게 해야 떨지 않을 수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나도 많이 고민해봤다. 백방 수소문해봤자 웅변학원 같은 정보만 나오는 걸 보면, 산뜻한 해결책은 딱히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방법이라면 방법이 될 수 있는 게 하나 있긴 하다. 어디서 봤는데 떠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언제까지고 떨 수는 없다고 한다. 떨다가도 어느 정도 지나면 몸이 알아서 안정이 된다고. 그러니 떨지 말자는 생각을 하는 것보단 빨리 떨고 끝내자, 는 생각을 하는 게 좋을 수도 있다. 말해놓고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힘내자 염소러.





- 이 글을 쓰고도 수치스러워서 저장만 해뒀었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그 수업에서 글을 읽을 일이 생겼다. 그런데 처음보다 훨씬 덜 떨리고 나중에는 그다지 안 떨리는 게 아닌가! 떠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믿는 게 도움이 됐나 싶다. 한시적인 극복을 기념해 풍악을 울리며 글을 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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