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가 알려주는 '몇 년 전 오늘'을 볼 때마다 놀랍고 새롭다. 20대 초반부터 끄적거려 온 독서 기록 노트가 아주 오래전의 나를 내 눈앞에 가져다 놓을 때 나는 이미 한국에서 한참 떨어진 나라의 어느 집 작은방의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다. 불을 끄고 책상 등을 켜면 아무도 없어 그제야 평온했던 그 시절, 20대 초반의 어린 유학생은 그 시간만 마음 놓고 울고, 마음 놓고 읽었다.
혼자 잘 해내야 하고, 뭐든 이겨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굴리고 굴려 커져 버린 외로움 덩어리 앞으로 자주 휘청거렸던 그때, 나는 자발적으로 유학을 선택한 나를 미워했고, 그렇기 때문에 남 탓도 할 수 없었다. 부끄러움을 무릎쓰고서라도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도 여러 차례, 그렇다고 그 누구에게도 감히 털어놓고 싶지 않았던 나의 이야기.
어려움 속에서도 꽃은 핀다고 했던가. 건드리기만 하면 터져버릴 것 같았던 그 시간 속에서 오랫동안 한국어를 그리워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녹아내렸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한인 카페를 기웃거리다가 한국 책이 있다는 도서관을 찾아 바로 달려갔던 그날, 로마의 콜로세움 같았던 그곳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어디선가 보았던 시멘트 틈에서 겨우 자라나는 민들레의 모습이 막 떠올랐던 그때, 한국을 떠나와서 처음으로 아무리 낯설어도 버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밥 먹듯이 찾아갔던 도서관에서 니체를 만나의 인생의 많은 문제를 '거리를 두고 바라보아야 함'을 알았고, 이어령 선생님이 실천한 끝없는 배움의 태도에 항상 깨어 있자고 다짐했다. 공지영, 신경숙 작가의 소설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읽고 울면서 나와 그, 우리를 배웠다.
그 시기의 관심과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기록을 보고 있으면 순수하고 겁이 많았던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르고, 고단함이 읽힐 땐 안쓰러워 울컥한다. 온몸에 긴장이 가득했던 그때 그 시절이 간절히 그리워 몇 년 전 그저께, 몇 년 전의 한 달 전으로 돌아가 그때의 나를, 그때의 글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