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담 Aug 13. 2023

20평 집으로 이사 온 지 1년

2022년 8월 26일 계약금 200만 원을 보냈다.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20평 집을 계약했다.

집을 급하게 팔고 이사 갈 집을 구하러 다녔는데 주변에 전세, 월세가 너무 비싸고 매물도 없었다.

맞은편의 아파트 단지에 25평 전세가가 3억 원이었다. 

비싸다. 

대출을 알아보니 대출금리가 너무 높았다.

학교 주변에서 구하고 싶었는데 가격을 생각하니 학교와 멀어졌다.


버스로 한 정거장, 두 정거장, 거리가 조금씩 멀어졌고 작은 평수가 모여있는 오래된 아파트까지 왔다.

20평 복도식이었다. 

좋은 점은 탑층에 도배장판이 깨끗했다. 

그리고 예전엔 이 동네가 살기 좋은 곳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긴 한데 새로운 아파트 단지들이 생겨나면서 새 동네로 젊은 사람들은 이동했다. 주변에 버스정류장 가깝고 이디야커피숍, 맥도널드, 파리바게트, 편의점 등 걸어서 다 이동 가능했다. 커피숍이 가까이 있어서 너무 좋았다. 20평 공간이 답답할 때면 한두 시간 커피숍에서 놀다가 오면 답답함이 풀리는 것 같았다.



화요일마다 작은 시장이 열리는데 과일들을 싸게 팔고 있다고 길 건너 아파트에 사는 퇴사한 언니가 이야기해 줬다. 현금만 거래가 가능한 아침 과일시장은 길가에 아침시간에 잠깐 서는 장이였다. 언니가 아침에 카톡을 했다. 과일 사러 나와~ 지갑에 만원을 꺼내 들고나갔는데 언니는 모자를 눌러쓰고 키우고 있는 강아지와 함께 나와 있었다. 사과가 상품은 아니나 맛이 좋고 양이 많았다. 한 봉지 사들고 왔다. 언니는 퇴사하고 다른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 24살이었는데 그 언니는 지금의 내 나이쯤이었을 것이다. 언니라고 부르기에 조금 낯설었으나 지금은 너무 자연스럽게 언니~라고 부른다. 내 나이도 이제 서른아홉이다.




나는 짐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29평에 살면서 짐이 조금씩 불어나고 여기저기에 조금씩 뒀던 물건들이 20평으로 이사 오면서 거실에 물건들이 다 모였다.


나의 오래된 피아노는 베란다에 놓였다. 피아노를 거실로 들이겠다고 했는데.. 이삿짐 아저씨들이 놓을 자리가 없다고 잘 사용하지 않으면 베란다에 두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꾸겨 넣어서 들어올 수가 없으니 바깥에 뒀다. 하지만 햇볕이 들고 비가 오는 날이면 피아노가 상할 것 같아서 나는 불안했다.

지금은 피아노 뒤로 암막커튼을 치고 피아노 뒤쪽 창문은 열리지 않게 고정해 뒀다. 암막커튼을 셀프로 하면서 진땀을 흘렸다. 키가 닿지 않아서 피아노를 밟고 올라섰는데 커튼이 주르륵 빠질 땐 울고 싶었다.



피아노 암막커튼설치

3인용 작은 소파는 거실 한쪽에 붙였는데 거실의 반을 차지했다. 티브이는 몇 달 전에 고장이 나서 큰 티브이로 바꿨는데 이 집에 오니 부피가 너무 컸다. 한쪽 벽면을 까맣게 차지한 티브이는 티비장 없이 바닥에 놓인 채로 사용하고 있다. 방은 두 갠데 안방에 큰 침대, 아이침대를 넣고 화장대를 넣었다. 방문이 닫히질 않았다. 작은방에는 옷장과 옷장에 들어가지 못한 옷, 책을 줄여서 왔는데도 책장 두 개 가득 꽂혀있는 책, 그리고 앵무새집. 그 방은 물건방이 되었고 내가 들어가면 사방이 물건들로 뒤덮여있었다. 들어가고 싶지 않은 방이었다. 베란다는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것들이 놓였다.








이사 오고 1년 동안 짐을 계속해서 비우고 있다

당근마켓 중고판매

짐을 비우면서 작은 즐거움이 생겼는데 비우면 공간이 생겼고 조금씩 생기는 돈은 저축했다.

당근마켓을 주로 이용했다. 

그리고 헌 옷수거 업체도 이용했다. 알라딘서점도.

내가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다른 이에게 필요한 것들이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시디플레이어는 키가 큰 젊잖게 생긴 할아버지가 갖고 가셨다.

작은 식탁은 드림했는데 중년의 부부가 와서 갖고 갔다. 둘이 사용하기 적당한 크기였으나 좌식식탁을 펴놓고 먹는 날이 많아서 공간을 비우기 위해서 드림했다.

아이 침대도 중년의 부부가 와서 가지고 갔는데.. 아이한테 침대가 필요하니 이사올 때 갖고 왔으나 안방에 공간만 차지했고 짐들이 쌓여서 처분했다.

계속 사모았던 인형들은... 한 푸대, 두 포대 따로 마켓에 올렸는데 여자분들이 와서 갖고 갔다.

입지 않던 옷, 구두도 필요한 분들이 갖고 갔다.



1년 동안 나에게는 조금 변화가 있었다.

이사 오고 여기를 내 공간으로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짐을 비우고. 

치우고.

편하게 쉴 공간으로. 

내 집 같이 살아보려고 정을 붙이고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넓은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방 한 칸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살면서 계속 주변을 찾아보고 있으나 다시 조금씩 오르는 집 값에 대출 금리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올초부터 정신과에 다니고 있다.

진작 갔어야 했다.. 숨이 안 쉬어지고 죽을 것 같다는 공포를 느끼고 나는 병원에 갔다.

운전하다가 과호흡이 나서 회사까지 오는 길 동안 너무 무서웠다. 자다가 숨이 안 쉬어져서 2번 깼을 때 이러다가 죽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회사에 가만히 앉아있다가도 숨이 턱턱 막혀서 갑갑했다.

집에 오면 슬픈 생각에 웅크리고 누워있었다.

이런 증상들이 심해졌을 때 나는 병원에 갔다.

병원에 가보니 아픈 사람이 많았다. 

겉은 다 멀쩡해 보이는데  1시간 이상 대기하며 진료를 받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군인아저씨들도 줄지어서 왔었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차례를 기다렸다. 그 병원은 얼마 전에 가보니 직원이 더 늘었다. 접수와 계산을 같이 했었는데 접수대와 계산하는 곳이 분리되었다. 환자들은 더 늘어난 것 같다. 병원에 다니고 나는 많이 좋아졌다.




폭풍 같은 1년이 지나고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아주 조금 생긴 것 같다. 


우리집 앵무새..조이

이사오고 짝꿍을 잃어서.. 많이 힘들었을것이다.. 작은방에 넣었뒀는데 짐을 줄이고 비우고.. 거실로 옮겨서 같이 적응중이다.


..

브런치에서 온 알림 열어봤다. 요즘 관심사. 느끼는 감정. 생각이 어떻냐는 알림이 주기적으로 와도.. 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1년동안 정신이 없었다. 아직도 남아있지만.. 종종 브런치타임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싶다 :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