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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팅 해봤어요?

by 도담


10월의 긴 연휴가 끝났다.

내일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커피바리스타를 꿈꾸며 산 나의 작은 커피머신과 그라인더는 연휴 동안 오전 오후 내도록 쓰였다.

오늘 아침엔 와인잔에 우유 반보다 조금 더 넣고 어제 만들어 둔 얼음을 넣고 에스프레소 투 샷을 넣고 카페라테를 만들었다. 아직 맛이 밍밍하다. 유튜브에서는 맛있는 커피맛을 내기 위해선 저울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것만 있으면 더 맛있는 라떼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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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둘 둘째를 임신한 나의 친구, 나는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말속에 따뜻함이 있고 진정성이 있는 대학 동기다. 그 친구는 항상 공부를 하고 있었다.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지금도 임용공부를 할지 심리학 공부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지나고 나니 이십 대 때 힘들게 일했던 것들이 지금은 다 보상받고 있는 것 같다고 편안해졌다고 이야기했다.


나도 그래, 이십 대에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힘들었던 기억. 그래도 딸을 보며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 삼십 대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 그냥 일하고 집에 와서 아이보고. 그때 돈공부를 시작했지. 사십 대가 되니 안정 적여졌어. 집도 생기고 직장에서도 그전보다 편안해지고 딸도 건강하게 컸어. 근데 내가 병이 생겼네. 마음의 병..


친구가 추천해 준 '페인팅 그림 그리기'를 구입했다.

나는 사춘기 열여섯 살 딸과 시간을 보내고 잘 지내기 위해서 방법을 찾고 있다.

같이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딸을 불러다가 그림을 골랐다.

덕분에 연휴 동안 식탁 테이블에서 같이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열심히 했다.

나도 딸도.

근데 이거 쉽지 않다.

촘촘하게 색을 칠해야 되는데 나의 크고 작은 붓은 그 선들을 넘어섰다.

오늘은 여기 까지만 해야겠다 하고 붓을 놨다.

다음날도 조금 붓칠하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조금씩 칠하기 시작한 것들은 거의 다 완성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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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물감 색깔의 종류는 39가지.

많이 쓰이는 물감은 하늘색.

파랑, 하늘빛 나는 색깔은 6가지.

다른 색깔을 칠하기 위해 붓에 묻은 물감들을 씻어낸다. 물에 잘 씻겨지지 않았다.

연하게 칠하니 그림에 적힌 물감번호가 보여서 덧칠하고 또 덧칠했다.

색칠을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서 칸을 조금 넘어서도 넘어선 것 같지 않게 칠했다.

그리고 실수해도 그 위에 다시 칠할 수 있었다.

친구에게 연락했다. '이거 쉽지 않아, 이만큼 하는데도 진도가 안 나가.'

친구는 '해바라기 그림'을 같이 구입했는데 완성했고 마지막 코팅제만 남았다고 이야기하며 내가 색깔이 많은 어려운 것을 고른 것 같다고 천천히 해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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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격은 빠르게 결정하고 진행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림은 조금만 천천히. 천천히. 하라고 멈추게 했다.

자세히 보면 색깔이 진하게 칠해진 곳, 연한 곳, 번호가 보이는 곳이 보였다.

멀리서 보면 그럭저럭 썩 괜찮아 보였다.

저 부분은 한번 더 칠해야겠다, 저기는 다시 칠해서 선을 맞춰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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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파라솔 가운데 색칠을 하고 파라솔 아래에 앉아있는 남자 옷을 색칠하고

군데군데 빠진 곳을 채우면 완성된다.

완성되면 꽤 멋진 그림이 될 것 같다.

이사 가는 집에 거실에 걸어둬야지.

나는 내년 1월 또다시 이사 간다.

4년 전 구입한 나의 집. 4년의 전세가 종료되고 내가 입주한다.

최고가에 구입해서 브런치에 글을 썼다가 혼이 많이 났던 나의 두 번째 집.

나는 그 사이 첫 집을 매도하고 전세와 월세를 3번이나 옮겼다.

너무 다행이고 감사하게도 4년 전보다 집 값이 올랐다.

달라진 건 없다. 나는 여전히 같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17년째다.

딸도 학교를 잘 다니고 있고 내년엔 고등학교 1학년이 된다.

큰 가방을 메고 첫 등교하던 뒷모습이 생각나는데 고등학교 입학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는 딸을 보니 무사히 지나온 시간에 감사한다. 사춘기의 바람이 내 딸에게도 와서 한 달 동안 나는 학교에 출퇴근시켜주기도 했다.

다 지나가겠지.


그림이 완성돼서 멋지게 거실에 걸리겠지.

내 인생도 완성을 향해서 채워지는 거겠지.

잘될 거야.

지금 시간들이 그냥 지나는 게 아니고

나중에 다 보상받더라는 친구의 말처럼.

천천히 완성해 보자


그림도. 내 인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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