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우성 Apr 19. 2020

#9. 취업 전선에 뛰어들다

취업준비생 신분으로 회사와 줄다리기를 하면 생기는 일

 대학 졸업을 위해 필요한 시험이 있었다. 바로 토익(TOEIC) 시험이다. 당시 졸업 토익 점수는 750점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너무 안일했었다. 대학교 4학년 때 학점 관리 및 금융연구 동아리 활동, 총학생회 활동 등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흰 눈이 펑펑 쏟아지던 겨울날, 졸업을 두 달 앞둔 나에게 대학 동기 중 한 명이 졸업용 토익 시험을 쳤냐고 물었다. 나는 당당하게 곧 치면 된다고 답했고 실제로 바로 시험에 등록했다.

 

 "600점?"


 예상치 못한 점수였다. 온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 기분 나쁜 조바심도 들었다. 고등학교 때도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언어였고, 제일 싫어하는 과목은 영어였다. 즉, 영어에 별 관심이 없었다. 영어는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 원어민도 만나면서 많은 자극을 받지 않으면 굉장히 감을 잡기 어려운 과목이 영어다. 이때까지도 딱히 영어를 왜 배워야 하는지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졸업은 해야만 했다. 매 년 수십 명의 선배들이 졸업 토익을 못 넘겨서 한 학기 가량의 세월을 무심히 흘러 보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부산 남포동에 있는 유명한 영어학원에 등록했고 미친 듯이 토익 공부에 매진했다. 결과적으로는 단 몇 점 차이로 부들부들 떨면서 턱걸이로 졸업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왜 그리도 용감했을까?


 사실 이유 있는 자신감이었는데, 2학년 때 이미 취업을 완료? 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재계 10위권 그룹이었던 S그룹 장학생에 뽑혔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세계 해운 시장은 호황이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으로 인한 리먼브라더스 파산의 여파가 몰아닥친 후였지만, 최저점을 찍고 반등 중이었다. S그룹은 유럽의 크루즈 조선소까지 인수하면서 초대형 럭셔리 크루즈 시장에도 진출했다. 


 저녁 10시쯤 TV 메인 광고에 "이것은 특급호텔이다? 아니다. 거대한 도시다? 아니다. S그룹이 만든 크루즈의 자부심이다!"라는 광고가 상영됐고, 서울역 내 전 LED 광고판은 S그룹의 크루즈선 광고로 도배되었다. 기업의 회장인 인터뷰에서 외쳤다. "S그룹은 신입 사원이 CEO도 될 수 있는 회사입니다! 연공서열 따위는 없습니다. 오직 능력으로 평가합니다." 신입 사원도 CEO를 꿈꿀 수 있는 회사라는 말의 달콤한 향기에 나는 도취되어갔다.


 장학생이 되면 4학년 기성회비 약 180만 원을 면제받고 졸업 후 최우선 채용이 약속된다. 하지만 그 장학 증서에는 정상 졸업을 하면!이라는 문구가 내포되어 있었다.


 2학년 때 가고 싶었던 대기업에 취업 확정 통보를 받은 나는 우쭐했었다. 4학년 때 그 힘든 총학생회에 뛰어든 것도 취업 부담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모든 게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2년 만에 모든 상황은 바뀌었다. S그룹은 무리한 확장으로 계열사가 갈기갈기 찢어지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고, 회사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 보였다. 나는 동요했다. 첫 취업한 회사에서 군대 대신에 3년 이상을 일해야 군 면제가 되므로 회사의 지속성은 나에게 무척이나 중요했다. 


 밤새 고민 끝에 그 당시 H그룹에 속해있던 H회사에 지원했고 운 좋게 합격했다. S그룹 측에는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장학금을 모두 뱉어내겠다는 초강수를 두었다. 이때 나는 대기업의 돌아가는 시스템에 대해 무지했고, 결국은 사단이 났다.


 분명 H회사에 지원하기 전에 S그룹의 장학생인 것을 밝히고 지원했다. H회사 측 인사 담당자는 인재만 온다면 그런 것은 상관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S그룹 측에서 장학생을 데려가는 것에 대해 심한 불쾌감을 표현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H회사 오리엔테이션 참석을 위해 준비하고 있던 내게 전화가 왔다. 


 "죄송하지만, H그룹에서는 당신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S그룹로 돌아가셔야 할 듯합니다."

 

 나는 급하게 S그룹에 전화를 걸었다. 뚜뚜~ 연결음이 울리는 그 짧은 몇 초가 영겁의 시간 같이 느껴졌다.


 "죄송하지만, 굉장히 불쾌합니다. 회사가 어렵다고 회사를 버리시면 됩니까? 합격을 고려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겨울 등줄기에 땀이 흥건했다. 맞다. 감히 취업 준비생 따위가 회사를 상대로 줄다리기를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당장 중견 또는 중소 해운 회사를 알아봐야 할 판이었다. 종국에는 싹싹 빌어서 입사할 수 있었다. 인생의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는데, 개인(특히 취준생)은 회사의 부속품 중 하나에 불과했다는 사실과 회사가 절대 갑이고 나는 절대 을이라는 사실이다. 특히나 신입사원 따위에 깊은 애정의 눈길을 줄 것이라는 착각은 금물이다. 첫 사회생활에 발이 닿기 전에 심하게 데어버린 화끈한 화상 자국을 안고, 나는 사회라는 거친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가버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8. 공부 안 하면 저 형처럼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