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IMF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면서 발생한 비정규직의 과도 양산으로 우리는 새로운 양극화를 맞이했다. 바로 비정규직 근로자와 정규직 근로자와의 차별이다.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과 인력 관리의 유연함을 위해 희생되는 비정규직의 구분은 단순히 업무 특성을 구분 지어 놓은 게 아니라 삶의 안정성과 어쩌면 근로 의욕 및 개개인의 행복 영역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비정규직 근로자 사업장 중 가장 열약한 곳이 바로 소기업 또는 가게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생과 기업의 인턴들이다. 이들은 사회 최약자 중 하나다.
나는 대학교 시절에 정말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다. 20살이 되면서 내 인생은 스스로 건사해보자는 당찬 포부로 최소한의 용돈만 받으며 학교 생활을 꾸려나갔다. 다행인 것은 대학교 특성상 친목 도모를 위한 술값과 데이트 비용 정도를 제외하면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상하차, 전단지 배포, 학원 원생 유치, 콜센터 상담원, 과외, 합숙 노가다, 치킨집 서빙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다. 과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1주일 ~ 3달 사이의 단기로만 진행했는데, 학기 중에는 부산에서 생활하고, 방학이 오면 서울 본가에서 생활하다 보니 장기 아르바이트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어쨌든 단기 아르바이트는 다양한 사회 경험을 해보는 데 최적이었다. 왜냐하면 아르바이트 생에게 요구하는 것 대부분은 단순했고, 몇 달씩 익혀야 할 것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굉장히 전문성을 요하는 아르바이트도 분명 존재한다.)
"최상과 최악의 아르바이트를 꼽는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최상의 아르바이트는 개인 과외다. 시간당 페이가 좋았고, 과외 시간을 내가 정할 수 있어서 편했다. 가장 큰 장점은 흔히 말하는 갑과 을의 위치가 뒤집힌다는 것이다. 분명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을 받는 을의 입장에 서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을 가진 자는 당연히 갑이 되고 그 아래에서 임금을 받는 자는 을이된다.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과외에서는 그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수도꼭지에서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이 손맛에 따라 번갈아 쏟아지듯이 갑과 을의 위치가 애매했다. 특히나 교육열이 높은 대한민국에서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을, 병이 되더라도 전혀 상관없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덕분에 계절을 거스르는 알맞은 온도와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을 씹어대며 돈을 벌었다.
과외를 제외한 아르바이트는 곤욕이었다. 그중에 최악을 뽑으라면 당연 콜센터 상담이다. 사실 지방에 내려가 1주일간 하루 10만 원씩 받으며 했던 합숙 노가다가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찢어진 근육 위에는 파스라도 붙일 수 있었지만, 찢어진 마음에는 어떠한 연고도 바를 수 없었다.
작은 통신사였는데 주로 통신사 3사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할인 쿠폰 등을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판매하는 일을 했다. 누가 이런 걸 가입하나 했는데, 있더라... 나는 처음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서 많이 놀랐는데, 내 이름 석자가 실적표 중앙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단기 아르바이트생인데 말이다. 결론적으로 매일매일 실적 압박을 받으면서 정규 직원들과 똑같이 일했다. 하지만 임금은 최저시급을 받았다. 회사는 저임금으로 고효율을 짜내려고 안달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달만에 회사 내 최대 실적을 냈다. 딱히 실력이 뛰어나다 보다는, 남들이 하루에 200통을 걸 때 500통 정도를 걸었던 게 비결이면 비결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도 500통 정도씩은 거는 줄 알았었다. 부장님은 나를 따로 부르더니 특채 입사도 권하였다. 나는 정중히 거절하고 대신에 35만 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을 보너스로 받았다.
이 일을 오래 할 수 없었다. 방학이 끝나버린 것도 있었지만, 내 정신이 견뎌내질 못했다. 하루에 500통을 걸면 그중 200통 정도는 온갖 욕설과 폭언의 향연이었다. 0000~9999까지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서 다짜고짜 자기 내 상품을 사라는 사람을 많은 사람들은 존중할리 없었다. 그저 사기꾼이거나 개인 정보를 빼돌려 연락을 한 악덕 업체 직원일 뿐이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욕을 집중적으로 귀에 때려 박은 적은 없었다. 왜 선배들이 전화를 극도로 적게 걸면서 시간만 때웠는지 알 것 같았다. 목캔디도 수시로 물고 있었는데, 하루 종일 말만 하다 보면 목이 찢어질 것 같이 불타오른다. 자기 딴에는 심심해서 농담 따먹으며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럴 때면 무척 난감하다. 끊으려고 하면, 갑자기 상품에 관심을 표하다가도 다시 깊게 설명을 좀 드리려고 하면 인생 한탄을 한다. 도돌이표다. 대한민국을 외로움 공화국이라고 불러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치킨집 서빙도 두 달 정도 했다. 취객 상대, 더러운 테이블 치우기, 진상 손님 응대 등 고된 시간이었다. 하지만 야식으로 먹는 치킨 몇 조각에 모든 스트레스는 풀리곤 했다. 2달 간의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A4 용지에 가게가 번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모조리 적어서 사장님께 드렸다. 아르바이트 생을 위한 어떠한 복지가 필요한지, 조명 위치는 어떻게 조정하면 좋을지? 등등이다. 일하면서 겪은 생각과 장사 관련 책 몇 권을 읽으면서 배운 전문 지식을 종합하여 진심으로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적어드렸다. 사장님은 언제든 치킨을 먹으러 오라고 하셨고, 나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후에도 꽤 여러 번 친구를 대동하여 치킨을 뜯고 두둑한 서비스 안주를 챙겨 먹었다.
일본에서 한때 프리터족이 유행했다. 이들은 아르바이트 등 단기 일자리로 삶을 살아가는 청년들을 뜻하는데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이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니 아르바이트만 하게 된다고 말하는데, 그만큼 아르바이트는 더 낳은 삶의 열쇠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강력히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느낀 바로는 그렇지 않다.
아르바이트 만으로 발전하고 성공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단, 남들처럼 시간만 태우는 아르바이트는 삶의 진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험에서 나온 몇 가지 팁을 말해보자면, 먼저 사장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대부분 아르바이트생은 시급만 받아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왜 시급을 올릴 생각을 못할까? 사장은 절대 악덥 업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잉태한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자본가다. 정말 괜찮은 직원이 있다면 시급을 두 배를 줘도 잡고 싶은 마음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게가 번창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끊임 없이 발굴하고 사장과 공유한다면 어느 순간 당신의 통장은 겨울날 계란빵처럼 서서히 부풀어 오를것이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팁은 당신의 1시간을 최저 시급에 맞추지 말라! 는 말이다. 보통 시급이 10,000원 이면, 10,000원 정도의 노동력만 제공하려고 한다. 더 제공하는 게 배아픈 게다. 이는 회사에서도 적용되는데, 월급이 200만 원 이니까 200만 원이라는 숫자에 자신의 한계치를 정하고 그어 버리는 우를 자주 범한다.
그럼 1시간 이상을 일하라는 말일까? 아니다. 1시간의 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 가령 똑같은 1시간 동안 전단지를 돌릴 때 시간 당 페이를 받지 않고, 계약 성사 건 당 페이를 받게되면 어떨까? 이때는 우리가 하는 것에 비해 시급이 2배가 되기도 하고 3배가 되기도 한다. 물론, 1시간 동안 아무 페이도 못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 없이 시간 당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일에 도전해야 하지 않을까?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전단지 아르바이트 경험이 많은데 그중 하루는 영어 학원 전단지를 초등학교 입학식 날 교문 앞에서 나눠주고 있었다. 최저 시급을 약속했는데 나는 아르바이트 시작 전에 다른 방식으로 돈을 받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원생 한 명을 데려오면 1만 원 을 받는 조건이다. 대신 시급은 받지 않기로 했다. 이런 방식으로 바꾸다 보니 한 분 한분 정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나눠주면 그냥 받고 지나쳐 갈 뿐이다. 그 자리에서 적어도 전화라도 걸어서 문의라도 하게 만들어야 했다.
일면식 없는 5명의 아르바이트생들과 다른 학원에서 나온 경쟁업체 아르바이트생들이 모여들어 교문 앞은 복잡 복잡했다. 귀엽게 생긴 남자아이가 어머니 손을 붙잡고 교문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싱긋 웃으며 간단한 학원 소개와 앞으로 연결 시대에서의 영어의 중요성 등을 설명하며 전단지를 나눠줬다.
"어머니 여기 전단지에 적힌 번호로 오늘 중으로 연락 주시면 많은 혜택이 있습니다. 꼭 오늘 중으로 연락 주세요! 제 이름 말씀하시면 됩니다!"
갈색 코트를 입은 어머니는 짧게 "알겠다."라고 답하면서 전단지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뒤뚱뒤뚱 걷고 있는 아들을 향해 말했다. 마치 내가 들으라는 듯이 조금은 큰 목소리로.
"아들, 너 공부 열심히 해야 돼. 공부 안 하면 저 형처럼 된다."
순간 머리가 띵했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은 생생하다. 나뿐만이 아니라 거기 모였던 모두의 얼굴이 매서운 3월의 바람 때문인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우리 서로는 의식한 듯 눈을 마주치지 않고 전단지를 계속 나눠주었다. 그런 말을 듣고 자라는 아이를 보니 안쓰러웠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온갖 멸시도 받고 욕도 먹어봤지만, 이처럼 고요하게 다가와 뒤통수를 꽝! 때리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3시간의 아르바이트 끝에 7만 원을 받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영어학원 원장님은 혹시 학원에서 장기로 아르바이트할 생각은 없냐고 물었고 나는 기회가 되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쓸쓸히 걸어 나왔다.
응당 사람을 볼 땐 겉모습이나 현재 처한 상황 및 환경 등 보이거나 사실이라고 믿는 고정관념으로 봐서는 안 된다. 남루해 보이더라도 그 사람에게도 꿈이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역경과 고난을 슬기롭게, 우직하게 헤쳐나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이 땅에서 일하는 모든 아르바이트 생과 비정규직 근로자 등 고용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이 작아 보인다면,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모로 누워서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크게 경계하고 반성해야 할 일이다.
'그날 아침, 공부를 안 하면 저 형처럼 된다는 얘기를 들었던 아이는 지금쯤 멋진 청년으로 살고 있을까?'